일부 공무원들의 수십억원대 복지예산 횡령 사건을 보면서 착잡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뒤늦게 전면적인 감사를 벌인다며 호들갑이지만, 이미 약자들의 가슴엔 깊은 생채기가 난 뒤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말은 너무 점잖다. 머슴에게 일을 대신하라고 했더니 주인 몰래 제 주머니 채우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불법이 뚜렷한 사례에 속한다. 불법까지는 아니면서도, 주인의 뜻과 무관하게 딴 궁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의 행태가 더 큰 문제다. 특히 ‘행정행위’를 가장한 경우는 얄밉기까지 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낙하산 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 광주광역시청사ⓒ광주광역시
요즘 광주시가 산하 공기업이나 출연기관 등의 수장에 대해 잇단 낙하산 인사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장과 관계 있는 퇴임 공직자나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자리를 꿰차는데, 업무와 무관해 보이는 인사가 갑자기 낙점되는 건 물론이고, 다른 공기업을 거쳐 왔던 인사에게 다시 새 의자를 마련해주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최근 빛고을노인복지타운 초대원장에 나 모씨를 임명했다. 그는 광주시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고위공직자 출신인데, 퇴임 후 경력이 화려하다. 시체육회 상임부회장, 생활체육협회장 등 줄곧 시와 관련 있는 단체를 맡아오다 칠순 넘은 고령에 노인복지타운 원장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개원한 교통문화연수원장 자리도 잡음이 인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 역시 올해 칠순이 넘은 전 광주시의회 의장 출신인 오 모씨를 임명했다. 운수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담당할 연수원장과 그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지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하산 인사, 또는 자기사람 심기는 이 뿐 아니다. 지난해 10월 광주시 환경시설공단 이사장에 전 도시공사 사장을 역임한 바 있던 정모(65)씨를 다시 앉힌 일이나, 같은 해 6월 광주발전연구원장에 전남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는 채모(62)씨를 낙점한 것도 의외였다.

그밖에도 중소기업센터 본부장과 광주도시공사사장에 이어 광주디자인센터원장과 광주테크노파크원장 등의 자리에도 박 시장과 시에서 함께 일했던 고위 공직자 출신이거나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렇게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이어지다보니, 지역정가에선 박 시장의 내년 지방선거 3선 도전을 위한 자기사람 심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낙하산 인사에 지역 언론계 출신 인사가 빠질 리 없었다. 다만, 운이 나빴는지 언론계 인사의 임명에는 진통을 겪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다음 달 개국 예정인 광주영어방송 사장마저 지역 신문사 사장 출신 인사를 앉히려했다. 하지만 재단 일부 이사진이 전문성을 이유로 발목을 잡았다. 당시 회의를 주재하던 박 시장은 의사봉 방망이를 깨뜨릴 정도로 화를 내며 사장 선임안건을 다음으로 미뤘다는 후문이다.

시민들은 시장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 일하라며 표를 줬다. 하지만 요즘 광주시에서 벌어지는 낙하산 인사 행태를 보면, 그 대리인은 주인들의 뜻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딴 궁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보인다.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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