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무원들의 수십억원대 복지예산 횡령 사건을 보면서 착잡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뒤늦게 전면적인 감사를 벌인다며 호들갑이지만, 이미 약자들의 가슴엔 깊은 생채기가 난 뒤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말은 너무 점잖다. 머슴에게 일을 대신하라고 했더니 주인 몰래 제 주머니 채우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불법이 뚜렷한 사례에 속한다. 불법까지는 아니면서도, 주인의 뜻과 무관하게 딴 궁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의 행태가 더 큰 문제다. 특히 ‘행정행위’를 가장한 경우는 얄밉기까지 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낙하산 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최근 빛고을노인복지타운 초대원장에 나 모씨를 임명했다. 그는 광주시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고위공직자 출신인데, 퇴임 후 경력이 화려하다. 시체육회 상임부회장, 생활체육협회장 등 줄곧 시와 관련 있는 단체를 맡아오다 칠순 넘은 고령에 노인복지타운 원장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개원한 교통문화연수원장 자리도 잡음이 인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 역시 올해 칠순이 넘은 전 광주시의회 의장 출신인 오 모씨를 임명했다. 운수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담당할 연수원장과 그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지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하산 인사, 또는 자기사람 심기는 이 뿐 아니다. 지난해 10월 광주시 환경시설공단 이사장에 전 도시공사 사장을 역임한 바 있던 정모(65)씨를 다시 앉힌 일이나, 같은 해 6월 광주발전연구원장에 전남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는 채모(62)씨를 낙점한 것도 의외였다.
그밖에도 중소기업센터 본부장과 광주도시공사사장에 이어 광주디자인센터원장과 광주테크노파크원장 등의 자리에도 박 시장과 시에서 함께 일했던 고위 공직자 출신이거나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렇게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이어지다보니, 지역정가에선 박 시장의 내년 지방선거 3선 도전을 위한 자기사람 심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낙하산 인사에 지역 언론계 출신 인사가 빠질 리 없었다. 다만, 운이 나빴는지 언론계 인사의 임명에는 진통을 겪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다음 달 개국 예정인 광주영어방송 사장마저 지역 신문사 사장 출신 인사를 앉히려했다. 하지만 재단 일부 이사진이 전문성을 이유로 발목을 잡았다. 당시 회의를 주재하던 박 시장은 의사봉 방망이를 깨뜨릴 정도로 화를 내며 사장 선임안건을 다음으로 미뤘다는 후문이다.
시민들은 시장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 일하라며 표를 줬다. 하지만 요즘 광주시에서 벌어지는 낙하산 인사 행태를 보면, 그 대리인은 주인들의 뜻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딴 궁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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