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사태로 촉발된 ‘신영철 대법관 ‘촛불’ 재판과정 개입 의혹’에 대한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지난 16일 그 결과를 내놨다. 조사단은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낸 것은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촛불 사건 집중 배당 의혹에 대해서도 “재판부 지정의 기준이 모호하고 일관되지 못한 점 등에 비춰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는 사법권의 독립성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뿐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조선일보였다. 여전히 조선일보는 사법부의 독립보다는 이념논쟁으로 이 사건을 정리하고 있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이념논쟁을 부추기는 꼴이다.

▲ 3월 17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조선일보는 17일자 3면 ‘대법원, 신영철 대법관 윤리위 회부’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원인을 두고 “고참 판사들은 노무현 정권 때 특정 정치성향이 짙은 판사들이 법원을 장악하면서, 사법부가 ‘코드화’한 것이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의 말을 빌려 “노무현 정권이 법관 서열을 파괴한다는 명분하에 특정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되고, 법정에서 스스럼없이 촛불시위를 옹호하는 일까지 생겼다”며 “인사문제뿐 아니라 사법정책까지 정권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뿐이랴. 같은 면 하단에서는 ‘정치성향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경향 바로잡아야’한다는 법조계의 반응이라고 떠들고 있다. 하창우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의 인터뷰를 통해 “일부 판사들이 특정한 세력을 형성하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기류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취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 징계에 대해 입 다문 조선일보가 특정 세력을 지목해 그들의 처벌을 요구한 셈이다.

사설 역시 그 논조를 강하게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국민은 이번 파동을 통해 대한민국 법원이 횡적으론 이념의 좌우로, 종적으론 세대 간 갈등으로 크게 찢겨 있고 사법부 안에 세계 어느 나라 사법부에도 없는 사조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신영철 대법관으로 시작된 사법부의 독립권문제를 ‘이념’, ‘세대’로 갈랐다. 또한 “재판의 기준이 될 그 법률에 대한 해석이 법관의 이념 성향에 따라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법관의 양심이 자리해야 할 곳에 법원 내 사조직의 일률적 법률 해석이 작용하고 있다면 국민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 어떤 성향의 판사가 이 재판을 맡게 되느냐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까지 토로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바라봐야할 지 모를 정도다.

생각해보면 조선일보의 이념논쟁은 이미 신영철 대법관 논란이 터졌을 때부터 시작됐다. 물론 오늘자 신문에서는 그 이름까지 밝히지 않고 ‘사조직’이라 표현했지만, 그 사조직에 대한 실체 역시 과거의 조선일보 기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신영철 대법관 이메일 논란이 불거진 지난 6일 조선일보는 “일부에선 노무현 정권 당시 요직에 임명된 인사들이 다수 배출한 판사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이번 사안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당시에도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말을 인용해 “젊은 좌파판사들이 법원이 지난 정권 때와 달라지는 데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라고 규정해버렸다. 당시부터 ‘좌파’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7일 8면을 통해서는 ‘진보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 연구회’ 관여했나’라고 진보성향의 우리법연구회라고 거론하고 있다.

▲ 3월 7일 조선일보 8면 기사
이러한 조선일보였기 때문에 조사단의 신영철 촛불재판 개입 논란에 대한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등장한 이념논쟁은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 사건을 이념이란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 조선일보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용훈 대법원장에 의해 신영철 대법관이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이후의 조선일보 보도가 어떻게 나올지도 짐작 가능하지는 않을까.

이제 조선일보의 타깃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조선일보의 시각에선 이용훈 대법원장은 좌파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역시 “보수진영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노무현 대통령의 ‘대못’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동안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조선일보의 이념논쟁에서 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신영철 대법관을 구하기 위한 구세주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 이메일과 관련해 “판사가 그 정도로 압박이라 해서야”라고 말했고,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인 7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조사단의 결과에 따라 신영철 대법관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했고 조선일보는 “현직 대법관이 대법원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경악’에 가까운 반응이다. 이에 반해 <경향신문>은 한 판사의 말을 인용해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할 대법관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라 했는데 사뭇 다른 반응이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 조갑제씨는 이용훈 대법원장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조갑제닷컴
이미 일각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의 ‘탄핵’에 대한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 듯 나오는 중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조사단의 결과를 “한국의 좌파세력들이 총궐기하여 신영철 대법관을 몰아세우더니 이용훈 대법원장의 영향을 받는 기관이 문제 될 것이 없는 신 대법관의 재판 지도행위를 재판관여 행위로 규정하여 징계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며 이용훈 대법원장의 탄핵을 주장했다.

이제는 조선일보가 받을 차례인가?

조사결과에 대해 당사자인 신영철 대법관은 입을 다물었고, 한나라당은 ‘사과’로 끝내려는 분위기다.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론을 무마시키려면 이제 “이용훈 대법원장이 ‘좌빨’이다” 정도의 논리가 나와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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