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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회를 생떼와 두려움으로 찢어선 국민이 신뢰 못해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16일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논란에 대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볼 소지가 있었다”며 사건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위헌 여부를 따지지 말고 재판을 빨리 진행하라’고 독촉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낸 것은 재판의 진행에 개입했다고 볼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 “촛불시위 피고인을 보석 석방한 판사에게 보석 결정을 신중히 하라고 전화한 것은 재판의 내용에 개입했다고 볼 소지가 있었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조사단은 “법원장이 재판에 대해 구체적 지시를 하거나 특정한 방향이나 방법으로 직무를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관행적으로 인정돼오던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에도 ‘일선 판사들이 개입으로 느끼거나 판사들의 오해를 부르지 않아야 한다’는 선을 그어야 할 만큼 시대가 변했고 사법부도 변한 것이다. 그런 상황 인식과 함께 이제 진상조사단이란 거울에 비친 조선일보의 얼굴을 들여다봐야 할 차례이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 그런데 재판의 기준이 될 그 법률에 대한 해석이 법원장의 이념 성향에 따라 정권의 입맛대로 크게 흔들렸고, 법관의 양심이 자리해야 할 곳에 법원 내 권력 추종자의 일률적 법률 해석이 작용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 모호한 어떤 성향에 집착하여 법원장 말발이 왜 밑으로 안 먹히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언론이 이래서는 법과 법원과 재판과 판사가 바로 설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신영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미명(美名)의 그늘에 숨어 재판장 내의 일을 재판장 밖으로 끌어내는 충견의 역할을 맡았다. 그가, 진짜 판사였다면, 숨어서 e메일이나 보내고 들킨 후 변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직(職)을 관두고서라도 정권을 위해 당당히 나섰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기개도 없이 어떻게 법과 양심에만 의지해 재판의 독립을 지켜가려는 후배들을 욕보이려 하는가.
이명박 정권 불과 1년 만에 대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까지 맛이 갔다 할 만큼 정치권력은 사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그 정치권력과 성향을 같이하는 법원 내 수장이 친여 난립단체와 손을 잡고 사법권력을 좌지우지하던 게 바로 최근의 일이었다. 이번 파동의 막전막후(幕前幕後)에서 법원의 이런 아픈 현실을 실감하게 하는 사법권력 내부의 종속된 분위기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다.
지금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 보도로 인해 국민의 신뢰가 다시 한번 더 크게 흔들리는 곤경에 처하게 됐다.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지금 조선일보에 존경받는 선배 기자가 얼마나 되며 선배 기자들이 앞날 보편타당한 상식의 대들보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후배 기자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