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정리했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은 재판 간섭으로 볼 소지가 있단다. 당장, 복잡해졌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신영철 대법관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대법관이 회부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신 대법관이 버티긴 힘들 것 같다. 일반적 관측으론 그렇다. 그렇다면, 신 대법관을 옹호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은? 미지수다. 모르겠다. 진상조사단도 ‘대법원장의 개입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 3월 16일자, 조선일보 데스크 칼럼
처음부터 그랬지만, 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사태가 꼬였다. 권력의 속성상 사용할 때는 아무 탈 없을 것 같고 전방위인 듯싶지만 막상, 한 치만 틀어져도 전체가 어긋나고, 아무리 철면피라도 두고두고 체면이 뜨거운 법이다. 우선, 청와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궁금하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표 하나 받는다고 끝날 일도 아니고, 쉽게 잊혀질 일도 아니다. 사법부는 국가를 이루는 근간 조직이다. 역사는 아마도 이번 일을 MB정권의 ‘실체’를 기록보다 먼저 드러냈던 ‘정황’적 사건이라고 적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번 사건에 ‘쿨’한 척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중동의 문제가 있다. 사실, 간단한 사건이었다. 누가 봐도 신 대법관이 행정 권력을 오남용한 사건이었다. 대법관이라고 하는 정치적 무게감이 있어서 예우해줬던 것인지 사실관계가 다 드러난 상황에서 조사하고 자시고도 뭣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조중동이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진상조사단을 압박했다. 결과를 ‘예정’된 대로 내놓으라는 겁박이었다. 전가의 보도인 ‘코드’를 들이댔다. 한마디로 옛날 기득권의 저항이란 것이었다. 그러곤 ‘진보적 성향의 젊은 판사들이 사법권을 흔든다’는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바꿔치려 했다. 엊그제에는 드디어 구체적으로 ‘우리법연구회’를 들먹이며 벌어진 ‘보혁대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투로 조사단의 턱 밑까지 펜 끝을 올렸다.

▲ 3월7일자, 동아일보 사설
그.럼.에.도.불.구.하.고 조사단은 재판 간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놀랐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는가 싶을 정도로 워낙, 상식에서 훌쩍 퇴행하던 나라 1년을 살다보니 이렇듯 조그만 상식의 회복도 충격적이다. 지난 11일 중앙일보에 ‘그래도 사법부를 믿고 싶다’는 제목의 논설위원 칼럼이 실렸을 때, 사실상 이번에도 상황은 이미 정리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촛불 이후 주요한 사회 현안, 이슈에서 조중동은 언제나 선제적이고 예측적이었다. 조중동이 ‘법치’를 강조하면 대통령이 호응하고, ‘녹생성장’의 바람을 잡으면 국가정책이 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어청수는 살리고, 강만수는 죽인, 김석기를 의인으로 만들고, 민주당을 세계적 조롱거리로 만든 조중동이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었다. 조중동이 신 대법관 관련해서 썼던 요 며칠 간의 사설과 칼럼은 극악스러웠다.

조선일보는 아예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에서 특정 성향의 세력들을 배제할 수 있느냐에 사법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썼었다. 이미 결론은 지어졌다는 투로, 아예 이참에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들을 싹 정리하자는 섬뜩한 주문이었다. 그런데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40년이나 지난 일본의 사례였다. 모양새가 표독스럽되 실제론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중앙일보는 ‘법관의 독립’은 ‘빌미’일 뿐이며, ‘사태를 정략적이고 편향적인 ‘사법부 흔들기’로 활용’하고 있는 세력을 문제 삼았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민호가 쓴 시론인데, 사법권의 독립이라고 하는 절대값이 ‘빌미’로 밖에 못 보는 그의 아둔한 시야에, 흔들리는 사법부가 포착된 것은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철이 없는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시중에 떠도는 말처럼 점점 급격하게 무능해지는 건지, 동아일보는 별다른 논리조차 없이 벌써 3월 7일에, ‘신속한 재판을 독려한 것 자체만으로는 사법행정에 관한 법원장의 감독권한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썼었다.

어찌되었건, 조중동의 바람, 소망, 압박, 단정, 확정을 진상조사단이 배신했다. 조중동의 논리대로라면, 정권을 되찾았지만 사법부의 코드 지배는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진상조사단이 옛 기득권에 굴복한 것이다. 어쩌면 진상조사단의 색깔을 문제 삼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사법권이 흔들리고 말았으니 이 나라를 어찌해야 좋을지 답답할 것이다. 내일 신문에서 조중동이 이 받아들이기 짜증스런 상황을 어떻게 또 주워 담을지 기대된다. 다만, 단언컨대, 더 이상 ‘사법부를 위한 조중동은 없다.’ ‘조중동을 위한 사법부는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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