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사이비 보수주의’라는 큰 제목으로 미국 보수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구성하는 3가지 핵심 이데올로기의--시장만능-신자유주의, 네오콘-미국패권주의,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문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정리해보았다. 이번의 마지막 6번째 글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라는 미국사회의 커다란 변화와 이에 대한 보수주의 집단의 대응, 그리고 미국 보수주의의 앞날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2008년의 선거

다 알다시피 2008년 선거는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다. 대통령은 물론 상·하 양원, 주지사 등 각급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2006년 중간선거부터 불기 시작한 민주당 지지여론의 결과이다.

민주당 승리를 의회선거 결과에 비추어 살펴볼 경우;
하원(과반 218석): 2004년 202석/공: 232/무소속 1) --> 2006년 233석/공: 202 --> 2008년 257석/공: 178석.

상원: 2004년 45/공: 55 --> 2006년 51/공: 49 --> 2008년 58/공: 41.(민주당 의석수에는 무소속인 버몬트 주 B. 샌더스 상원의원 포함. 2009년 현재, 미네소타 주 상원의원 선거는 소송이 진행 중임).

위 수치에서 나타나듯이 2006년 선거 이후 민주당의 약진, 공화당의 폭락은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의미

민주당 승리의 정점을 찍는 오바마의 당선 이후 미국에서 보수의 헤게모니는 위력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뒷걸음치는 집단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 섞인 관찰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제대로 내놓지도 못하고 지도력도 없으며, 정체성을 잡지 못해 방황하는 공화당을 생각하면 그런 기대가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한계와 난관을 인식하면서도 오바마 시대를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희망 섞인 변화의 조짐 때문이다. 첫째는 미국 사회를 400여년 이상 포획해온 인종차별주의의 약화이다. 둘째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경제 쓰나미를 불러일으킨 무도덕한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의 약화이다. 셋째는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는 네오콘-신보수주의-미국 패권주의의 약화이다. 넷째는 보수적 정치·사회환경을 대중적으로 뒷받침 온 우익 기독교 집단의 약화이다.

물론 W. 크리스탈 같은 네오콘은 오바마의 승리가 클린턴의 당선과 같은 일반적인 수준의 정권교체일 뿐, 승리의 내용도 그다지 두드러진 것이 없으며, 더 중요하게는 중도-우파적인 미국 유권자의 이념적 지형이 중도-좌파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 의미를 애써 폄하하고 있기도 하다. 또 오바마가 미국정치의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개혁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러한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2006년부터 연거푸 이어지는 민주당 승리의 흐름을 일회적 현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또 지금도 150여년 전 남북전쟁의 상흔이 생생히 살아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터에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민의 선택을 간단한 투표행위로 폄하할 수도 없다. 또 작금의 경제 쓰나미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사람들이 쉽게 망각할 리도 없다. 한편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양상을 볼 때 그리 쉽게 공화당과 민주당을 한통속으로 묶어버릴 수도 없다.

압도적 지지로 나타나는 작금의 여론조사가 말해주듯이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정부에 대해 품고 있는 희망은 매우 크다. 여기에서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이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는 물론 두고 보아야 한다. 부시-체니의 극우꼴통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것은 공화당과 보수주의 집단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실패했고,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현재의 위기국면을 헤쳐나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오바마 선거 홈페이지 캡처.
어디로 갈 것인가?

오바마 정부로 상징되는 미국사회의 큰 변화를 맞아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어디로 가려 할까? 이들은 어떻게 해야 내년 2010년 중간선거에서, 그리고 2년 뒤 2012년 선거에서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두 가지 흐름이 서로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나는 공화당-보수주의 개혁론자요, 또 다른 하나는 공화당-보수주의 강경론자이다.

보수 개혁론자들의 주장은 공화당의 문제는 신뢰를 상실한 집단, 시대적 변화에 동떨어진 집단, 남부 지역 백인의 정당으로 추락한 것으로 요약된다. 쉽게 말하면 레이건의 정당에서 부시의 정당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8년의 선거는 일회성 일탈이 아니라 공화당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가 외형화된 것이다. 공화당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덕목인 균형예산, 낮은 세금, 국가안보, 경제능력 등등이었음에도 정작 나타난 것은 천문학적 규모의 정부예산 적자,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지지부진한 결과, 금융파탄 같은 경제실정 등이 오늘날의 공화당의 모습이다 등등.

한편, 강경론자들의 주장은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보수주의의 기본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고 여기에는 공화당 온건주의자에 책임이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따라서 매케인의 실패를 포함해 2008년의 의회선거에서 온건파들이 대거 제거된 데 만족을 표시하면서 이제 보수주의의 원칙으로 되돌아갈 기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공화당은 작은 정부, 낮은 세금, 튼튼한 국가안보, 개인의 자유, 생명존중-낙태금지, 전통적 가족과 결혼의 도덕률, 미국 예외주의의 기치와 같은 미국의 가치를 더욱 크게 내세워야 한다 등등.

강경파들 득세한다!

공화당의 선거패배에 대한 내부의 평가가 서로 상이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은 이러한 결과가 상황적 조건 때문인가, 아니면 보다 구조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상이한 기초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결국 상황적 조건을 탓하는 보수 강경론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2008년 선거에 당선된 공화당 의원들이 대체로 강경론자들이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온건합리주의 성향인 동/서부 해안지역, 북동부 지역의 공화당 의원은 거의 전멸했다. ▲둘째, 보수주의 집단은 지난 40여년 동안 재정적 후원자들, 단체들, 홍보/선전기구들 등에서 이미 탄탄한 기반을 확보했다. 이에 반해 보수 개혁론자들은 활동의 토대가 극히 미미하거나 사실상 없는 상태이다. ▲셋째, 이러한 상황에서 당 내부에서 이견을 다는 집단이나 개인을 겁쟁이, 청산주의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점이다. ▲넷째, 선거에서 나타난 미국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없는 것도 강경론자들이 더욱 활개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등등.

아니나 다를까. 오바마의 경제회복 법안에 대해 공화당 하원의원 178명 전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공화당 상원의원 40명 중 단 3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또 오바마와 그의 경제회복 법안이나 정책을 두고 사회주의자라느니, 사회주의 정책이라느니,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몰아가고 있다느니 하는 선전도 심해지고 있다. 한편 공화당이 내놓는 대안이라는 것도 세금축소 같이 지금의 실패를 불러온 흘러간 옛 노래만 계속 반복할 뿐 내용이 없다. 여기에 R. 림보 같은 극우선동 방송인은 골수 보수유권자들을 계속 자극하면서 공화당에 지침(?)을 내리는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와 대조적인 흐름도 있다. 경제 쓰나미 속에서 현장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공화당 주지사 중 일부가 적극적으로 오바마의 경제회복 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주 등).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골수 보수의 길로 매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했듯이 공화당 내에서 보수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 강경론자들이 득세하는 이유는 경제 쓰나미가 장기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2010년 나아가 2012년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략적 계산과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P. 매켄리 하원의원 같은 사람은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 어려운 시절이 더 어려워지기를,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 그러다보니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갈 논리와 대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오바마가 실패하기를 바란다는 극우인사들의 발언은 이런 점에서 매우 솔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추락한 집단

주지하다시피 보수주의는 지난 30~40여년 간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담론을 좌우하는 거대 패러다임으로 성장한 이데올로기이다. 공화당과 보수주의 집단은 돈(기업 후원), 정치권력(선거 승리), 정책능력(보수 싱크탱크들) 등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헤게모니를 구축해왔다. 또 이들이 내세우는 작은 정부론, 자유시장론, 세금감면론, 탈규제론, 복지제도 축소론 등등은 나름대로 강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수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쓴 이념의 파도이기도 했다. 이같은 보수주의의 힘을 반영하듯 2004년에 뉴욕타임스는 아예 보수주의 종교, 정치, 법, 기업, 언론 관련 이슈를 전담하는 취재기자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공화당과 보수주의 집단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띤 우익 기독교 집단의 대중동원/조직능력에 기대서, 시장만능-신자유주의, 네오콘-신보수주의-미국패권주의 같은 극단적 정책을 펼친 결과, 당뿐 아니라 나라까지, 나아가 전 세계를 경제 쓰나미, 전쟁 쓰나미의 역풍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이 역풍 속에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은 공화당과 보수집단이 남부 지역의 백인 정당, 시대적 변화에 동떨어진 집단으로 추락한 모습뿐이다. 또 말로는 균형예산, 낮은 세금, 국가안보, 자유시장 정책 등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 약탈집단이라는 것, 나아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훼손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전환을 위하여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는 이념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이라고 말한 사람은 마르크스이다. 보수주의자들도 표현이 약간 다를 뿐 똑같이 말했다--‘이념은 현실로 나타난다.’ 말할 나위 없이 모든 이념이 지배적인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30여년간 집약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지배적 현실로 만들어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극단의 유전자를 제어하지 못하고 이들이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도그마로의 무한질주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경제 쓰나미, 전쟁 쓰나미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2006년 이후 연거푸 선거에 패배한 공화당과 보수주의 집단은 당의 진로, 나아가 보수주의 전체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고 답이 나오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경제 쓰나미와 전쟁 쓰나미를 초래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나 보수주의 집단이 과거와 같은 강경론으로 회귀하는 것은 역사적 전환을 거스르는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달라져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오바마 시대의 변화는 잠시의 일회적 현상이 아니라 다른 패러다임의 정치경제 체제가 시작되는 전환의 한 부분이다. 지난 1월 파리에서는 프랑스의 N. 사르코지 대통령과 영국의 전 T. 블레어 수상 등이 주재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이 열렸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제목 그대로 지금의 세계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작금의 변화는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전환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이를 진정한 변화로 이끌어가기 위한 지혜와 힘을 모으는 것. 이것이 미국사회, 나아가 세계, 그리고 각자에 주어진 과제라 할 것이다. 또 이 과정 속에서 공화당을 포함한 보수주의 집단, 또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믿는 사람들 역시 사이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살아날 수 있음은 췌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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