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른바 '백수오 사태'는 건강·의료정보 관련 방송프로그램들 오히려 시청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MBN미디어렙 영업일지 공개 사건 역시 ‘아로니아’ 등 방송사와 홈쇼핑 그리고 건강식품이 어떻게 연결돼 시청자들에 노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상파를 비롯한 종편 등에서 여전히 관련 프로그램들이 각광받는 것은 “방송사들에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편법적으로 활성화돼 있는 병원 협찬을 금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최한 <건강·의료정보 프로그램 개선을 위한 심의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언급됐다. 이 토론회는 건강·의료정보 프로그램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방송심의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방송사들이 수익을 얻는데 건강·의료정보 관련 프로그램만한 게 없기 때문에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병원은 방송광고가 금지돼 있지만 (편법적으로)협찬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홈쇼핑 등과의 경제적 연계 또한 주목해야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청자들, TV 속 전문가들 말 맹신할 수밖에…사업자들 간 이해관계 끊어야”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최한 <건강·의료정보 프로그램 개선을 위한 시의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방송사들이 수익을 얻는데 건강·의료정보 관련 프로그램만한 게 없기 때문에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병원은 방송광고가 금지돼 있지만 (편법적으로)협찬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미디어스

“얼마 전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리고 다른 채널을 돌리는데 해당 제품이 홈쇼핑에서 곧바로 정제된 알약으로 판매되고 있더라.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의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같은 프로그램은 방송사와 병원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 생겨났다고 볼 측면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에 대한 직접적인 홍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전문성 등을 검증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무면허로 종아리 성형을 하는 사람이 TV에 나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방송사에서는 ‘전 세계 단 하나의 의사’, ‘점심시간 30분이면 수술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무면허였고 그 수술을 받은 사람을 걷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방송 제작진들에게 ‘면허증’이라도 보여달라고 했는지 묻고 싶다.”_윤정주

윤정주 소장은 “쇼닥터 문제가 많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 쉐도우 닥터까지 존재하는 사회”라며 “의사면허증이 없는 관리자나 간호조무사들이 수술의 뒤처리를 하는 것들이 뉴스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허위·과장 광고도 문제다.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은 줄기세포로 관절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방송사에서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인조 관절 시술하라고 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시청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TV에서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맹신할 수밖에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히 방송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방송프로그램에서 ‘부작용’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게 윤정주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방송에서는 좋은 점만 과장해 보여준다”며 “건강식품 프로그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좋다’고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홈쇼핑 내 의사 출연 약 판매 금지, △건강정보 프로그램의 자가진단법 금지, △시·수술 부작용에 대한 고지, △출연자에 대한 검증, △건강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홈쇼핑에서 관련 프로그램 판매 금지 등을 촉구했다.

윤정주 소장은 “홈쇼핑에서 의사가 나와 자신이 만든 약이라고 판매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전문적 지식을 이야기하고 ‘안 먹으면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자가진단법’이다. 그런데, ‘두통이 있다’, ‘늘 피로하다’, ‘자로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는 등 현대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증상을 가지고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정주 소장은 “병원은 현재 방송광고 금지 대상”이라면서 “광고가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협찬 또한 못 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도 다른 광고를 하게 하는 게 문제다. 그러다보니 이 같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한의사협회, 건강·의료정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논문’ 검증 필요성 제기

이 같은 건강·의료정보 관련 방송프로그램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차원에서도 골치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방송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노출되면 그에 따른 신뢰도 하락은 물론 시청자들의 관련 정보 맹신을 바로 잡기 위해 2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쇼닥터’를 금지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대사는 “백수오가 갱년기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문제가 된 연구논문 이외에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협회 차원의 검증절차를 거친 전문가를 출연시켰다가 문제가 될 때 감경조치해주는 등의 방통심의위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전 홍보이사 또한 백수오 사태를 언급하며 “논문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은 논문이라고 한다면 다 공증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는 논문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건강·의료정보 관련 방송프로그램의 편성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방송사의 책임 문제 역시 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TV조선 김인희 심의팀장은 “제한된 시간 내 제작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출연자와 의료정보 등에 대한 효과·효능에 대한 검증은 협회 차원에서의 기본 자정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혹세무민하는 의사들이 있다면 지상파 심의팀에 관련 자료를 보내주시면 방송사에서는 이를 용인해 개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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