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가 다시금 쟁점화되나 보다.
근데 주요 언론이, 한미FTA는 응당 해야 하는 것이고 입법자의 비준동의도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인데 오바마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에 따른 각론적 ‘재협상’의 개최 여부가 현 단계 최대의 이슈라는 식으로, 보도를 갈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모양새만 봐선 누가 봐도 맞는 얘기 같다. 즉, 부시 임기 내에 우리가 먼저 비준안 통과시키고 미 의회 압박해서 그들도 따라오게 했으면 될 일을 괜히 미뤄서 ‘우리(한국)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 FTA 협상 결과물에 손대게 생겼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FTA가 깨질 수 있으니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미국이 자동차 부문 등 재협상 요구를 알아서 단념해야 한다는 사설도 보수 신문 사이에서 나온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까지 요구한단 얘기도 들린다. 그럼 한미FTA는 미국이 손해 본 협상이었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의 지속적인 견제와 비판을 조중동이 덮어주고 상쇄해줬으니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곧잘 피해간 지난 정부로선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FTA에 대한 국민 찬반은 대체로 양분되는데, 지난 2~3년 간 시류에 따라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는 양상이다. 양국에 윈-윈이라며 잘 된 협상이라는 사람, 을사늑약에 맞먹는다는 사람, 우리가 손해를 봐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사람, 결과물의 내용을 잘 모른다는 사람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찬성이든 반대든, 문제의 본질이 결코 ‘자동차 재협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국민은 과반을 훌쩍 넘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아니 확신하고 싶다. 국민의 시선을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만 묶어두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는 국민을 아마추어로밖에 안보는 것이란 판단에, 개인적으로 그저 그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진보 언론’을 언급했지만 FTA에 관한 한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때는 아니라고 본다. 정치 성향을 떠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보수파도 이미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미래’를 위해 어떤 내용물을 주고받았나를 심도있게 재조명하는 언론이 국민-그 중에서도 한미FTA의 주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투자자-국가소송제’, ‘미래의 최혜국대우’, ‘래칫조항’, ‘간접 수용’ 등 용어조차 생소한 ‘독소조항’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의 핵심은 한미FTA가 우리나라 헌법에 우선한다는 것! 세상에 어떤 법률이 헌법보다 높은 위치를 점하는가? 대한민국은 과연 주권이 있는 나라인가?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개방’은 또 어떠한가. 미국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은행 지분을 100% 소유해서 서민경제 같은 건 내동댕이쳐도 상관없는가.
알려진 협정문 이외에 ‘이면합의’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이나 부속서, 부속서한(side letter) 등은 공개됐지만 2006~2007년 협상장에서 양국 간 극비리에 오고간 non-paper(연습장 등에 자유롭게 메모해서 의사를 전달을 하는 방법)나 비망록(꼭 기억해둘 사항을 적시해 놓은 공식 외교 문서) 등은 2010년(협상 타결로부터 3년 뒤)에나 공개할 수 있다고 한다.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지난 1년간 너무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일어나 잠시 접어뒀던 한미FTA! 한나라당은 4월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으름장 놓는다. 현 정부와 여당이 정보 공개를 꺼려도, 또한 제1야당마저 미온적이라 해도 ‘언론다운’ 언론은 계속 파헤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적실히 알려야 할 시점이다.
자동차건 뭐건 한미 양국 정부가 재협상 하든지 말든지, 언론은 백 배, 천 배 중요한 내용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주길, 과거 수차례 보도했어도 다시 여러 번…. 미국과의 FTA, 이거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한다고 나라가 망할 리 만무하다. 협상 고려조차 하지 않는 국가들 잘만 살고 있지 않은가. 정부에 대한 체념과 인내, 이로 인한 판단 착오로 후손들에게 ‘재앙’의 씨앗을 넘겨줄 순 없는 것이다. 부디 싸워주시길.
서민 삶이 더욱 고단한 요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FTA란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라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다. 지금 문제가 되는 FTA는 <관세가 없어지면 수출이 늘어난다> 따위의 19세기 자유무역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되는 회색빛 디스토피아(dystopia)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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