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가 다시금 쟁점화되나 보다.

근데 주요 언론이, 한미FTA는 응당 해야 하는 것이고 입법자의 비준동의도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인데 오바마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에 따른 각론적 ‘재협상’의 개최 여부가 현 단계 최대의 이슈라는 식으로, 보도를 갈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모양새만 봐선 누가 봐도 맞는 얘기 같다. 즉, 부시 임기 내에 우리가 먼저 비준안 통과시키고 미 의회 압박해서 그들도 따라오게 했으면 될 일을 괜히 미뤄서 ‘우리(한국)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 FTA 협상 결과물에 손대게 생겼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FTA가 깨질 수 있으니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미국이 자동차 부문 등 재협상 요구를 알아서 단념해야 한다는 사설도 보수 신문 사이에서 나온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까지 요구한단 얘기도 들린다. 그럼 한미FTA는 미국이 손해 본 협상이었나?

▲ 3월 11일자 동아일보 31면 사설.
월령 서른 달의 미국소가 웃겠다. 진작 좀 잘해서, 17개 협상분과(4대 선결과제 중 두 개 분야, 즉 자동차와 의약품/의료기기까지 포함하면 19개 분과)에서 한국에 턱없이 불리한 조항들을 소위 ‘메이저’ 언론들이 가끔씩이라도 따끔히 지적해줬다면 지난 정부가 ‘굴종’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그토록 미워하던 참여정부였지만, 조중동은 FTA협상만큼은 ‘잘한다 잘한다’ 하며 한국이 떠안는 독소조항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타결만을 학수고대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결례인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의 지속적인 견제와 비판을 조중동이 덮어주고 상쇄해줬으니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곧잘 피해간 지난 정부로선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FTA에 대한 국민 찬반은 대체로 양분되는데, 지난 2~3년 간 시류에 따라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는 양상이다. 양국에 윈-윈이라며 잘 된 협상이라는 사람, 을사늑약에 맞먹는다는 사람, 우리가 손해를 봐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사람, 결과물의 내용을 잘 모른다는 사람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찬성이든 반대든, 문제의 본질이 결코 ‘자동차 재협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국민은 과반을 훌쩍 넘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아니 확신하고 싶다. 국민의 시선을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만 묶어두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는 국민을 아마추어로밖에 안보는 것이란 판단에, 개인적으로 그저 그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 3월 11일자 한겨레 27면 사설.
진보 언론에 희망을 가져본다. 주권을 가진 국가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말이다. 재협상(추가협상? 아니면 추가협의? 이것들의 차이(?)는 이 글 밑에서 짚어 본다)은 미국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나라 국민과 해야 한다는 것을 지면 혹은 브라운관을 통해 호소해주면 좋겠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잠시, 꿈같은 얘기지만 한국이 미국에 ‘전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급상승할 것이다.

‘진보 언론’을 언급했지만 FTA에 관한 한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때는 아니라고 본다. 정치 성향을 떠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보수파도 이미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미래’를 위해 어떤 내용물을 주고받았나를 심도있게 재조명하는 언론이 국민-그 중에서도 한미FTA의 주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투자자-국가소송제’, ‘미래의 최혜국대우’, ‘래칫조항’, ‘간접 수용’ 등 용어조차 생소한 ‘독소조항’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의 핵심은 한미FTA가 우리나라 헌법에 우선한다는 것! 세상에 어떤 법률이 헌법보다 높은 위치를 점하는가? 대한민국은 과연 주권이 있는 나라인가?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개방’은 또 어떠한가. 미국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은행 지분을 100% 소유해서 서민경제 같은 건 내동댕이쳐도 상관없는가.

알려진 협정문 이외에 ‘이면합의’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이나 부속서, 부속서한(side letter) 등은 공개됐지만 2006~2007년 협상장에서 양국 간 극비리에 오고간 non-paper(연습장 등에 자유롭게 메모해서 의사를 전달을 하는 방법)나 비망록(꼭 기억해둘 사항을 적시해 놓은 공식 외교 문서) 등은 2010년(협상 타결로부터 3년 뒤)에나 공개할 수 있다고 한다.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지난 1년간 너무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일어나 잠시 접어뒀던 한미FTA! 한나라당은 4월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으름장 놓는다. 현 정부와 여당이 정보 공개를 꺼려도, 또한 제1야당마저 미온적이라 해도 ‘언론다운’ 언론은 계속 파헤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적실히 알려야 할 시점이다.

자동차건 뭐건 한미 양국 정부가 재협상 하든지 말든지, 언론은 백 배, 천 배 중요한 내용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주길, 과거 수차례 보도했어도 다시 여러 번…. 미국과의 FTA, 이거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한다고 나라가 망할 리 만무하다. 협상 고려조차 하지 않는 국가들 잘만 살고 있지 않은가. 정부에 대한 체념과 인내, 이로 인한 판단 착오로 후손들에게 ‘재앙’의 씨앗을 넘겨줄 순 없는 것이다. 부디 싸워주시길.

서민 삶이 더욱 고단한 요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FTA란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라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다. 지금 문제가 되는 FTA는 <관세가 없어지면 수출이 늘어난다> 따위의 19세기 자유무역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되는 회색빛 디스토피아(dystopia)일 뿐이다.”

재협상? 추가협상? 아니면 추가협의?

한국 날짜로 지난 3월10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지명자가 한미FTA의 내용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국내 언론과 한국 정부는 ‘재협상’ 한다 만다로 또 한차례 시끄러운 형국입니다. 본질이 아닌 사안이지만 정부가 ‘재협상’, ‘추가협상’, ‘추가협의’의 세 가지 형태 중 하나, 또는 새로운 용어를 내세워 또 말장난 할까봐 한겨레의 얼추 2년 전 기사를 살포시 인용해 봅니다.

2007년 4월16일 한겨레 인터넷판 - 제목: FTA 추가협상? 정부 “없다” 못박아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은 “추가협상도 결국 재협상과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부속서도 협정문과 효력이 같으므로 부속서를 추가하는 것도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외교통상부 한-미 자유무역협정 기획단의 김진욱 대내업무 총괄과장도 “추가협상과 재협상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본문이나 부속서를 수정하든 또는 부속서를 추가하든 이것은 모두 추가로 협상을 하는 것으로, 추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의 송홍석 국제협상팀장도 커틀러 수석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부간 협상이 덜 끝난 것도 아니고 추후 논의하자는 ‘빌트인’도 아닌데, 추가로 협상을 하자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추가 협상 제의가 와도 우리 정부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미 민주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뒤 ‘신통상정책’을 입안했고 무역대표부에 재협상을 주문합니다.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한국과의 FTA를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국은 노동, 환경, 의약품, 투자, 정부조달 등 8개 부문 재협상(말장난 논란 속에 정부는 "추가협상"도 아닌 "추가협의"라는 표현을 내세움)을 수락, 미국은 상당 부분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관철시킵니다.

하지만 ‘한국 내 미국산 자동차 점유율과 미국 내 자동차 수입관세 2.5% 철폐 연동안’은 당시 성공하지 못했고, 오바마 정부는 이를 재협상이나 기타 방법을 통해 다시 요구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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