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00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보도하는 언론들이 많다.

‘1차 입법전쟁’을 도발하여 국회를 폭력의 도가니로 전락시키며, 국가사회의 상식과 합리의 수준을 몰상식과 몰합리의 상황으로 전락시킨 한나라당. ‘2차 입법전쟁’에서는 국회의장과 야당을 겁박 유린하여, 국회의장 중재안마저 내팽개치고, ‘전가의 보도’ 아니 한나라당의 보도 ‘직권상정’이라는 칼로 야당을 위협하며 ‘합의문’이라는 전리품을 강탈한 한나라당.

수개월 동안 고수해 온, ‘합의 없는 직권상정은 없다’며 나발을 불면서 각종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당 대표, 나아가 대권주자 이미지 구축에만 혈안이 되었던 김형오 국회의장. 나름대로의 소신, 새로운 국회의장 상을 구축해보겠다며 설레발을 치다가, 야당과 국민을 속여 놓고, ‘합의 없어도 직권상정 한다’며 판을 엎었던, 그러면서 한나라당의 ‘겁박에 속절없이 무릎 꿇는 국회의장 상’을 만들어낸 김형오 국회의장.

배수진,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진마저 의원들 상호간에 신뢰가 없어 치고 나가지 못하는 민주당. 제1야당이라는 떡고물을 놓치기 싫어 겁박하고 협박한다고 항복문서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거리로 나갔을 때 불과 몇몇만 호응하는 사태가 두렵다며 쓸 수 있는 무기마저 꺼내들지 못하는 소심한 민주당.

이들 3세력에 의해서, 언론관련악법은 ‘자문기구 논의기구 100일 시한부’라는 합의문의 어정쩡한 휴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데. 자문기구는 의결기구가 될 수 있고, 논의기구는 합의기구로 격상시킬 수 있으며, 100일 시한부는 필요한 충분한 시간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진 왼쪽부터 강상현 연세대 교수, 강혜란 여성민우회 소장, 이창현 국민대 교수,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사진에 없는 류성우 언론노조 정책실장, 박민 지역미디어공공성위원회 집행위원장, 김기중 민변 변호사(이상 민주당 추천), 박경신 고려대 교수(창조당) 등, 야당에서 추천한 이들의 면면은 대부분 이미 이 세상을 바꾸어 본 적이 있는 인사들이다.

1987년 6·10항쟁을 중심에 서서 경험한 세대들이다. 아니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6·10항쟁을 이끌어낸 주역들이다. 그들이 흐르는 물처럼, 고정된 합의문을 물렁물렁하게 흐물흐물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시간동안 충분히 논의함으로써 법과 제도가 되어야 하는 언론관련법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합의기구’로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내용을 생산하는 단위로 변화시킬 것이다.

▲ 3월 12일자 경향신문 6면 기사.
강조하건대, 언론관련법은 한나라당 안으로 확정했다가 다음 기회에 또 다시 개정하면 되는 법안이 아니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고, 정권을 잡아 여당이 되어도 최소한 ‘지금처럼’만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는 법안들이 아니다.

지금의 한나라당 법안이 통과되면 ‘조중동방송, 전경련TV’가 등장할 것이다. 이를 야당이 여당되고, 소수당이 다수당이 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제자리로 돌릴 수 없다. 이미 여론시장에서 존재하는 그것도 아주 지배적인 언론사들을 다수당되고 정권 잡았다고 없앨 수 없는 이치다.

물이 흐르듯이, 언론환경은 변할 수밖에 없고, 이미 바뀐 환경은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또 변하기 마련. 맑은 물이 흐르다가 막히면 고이고, 고이면 썩는다. 하지만 애초부터 썩은 물, 폐수를 흐르게 하면 전 사회가 썩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고, 그 썩은 물은 결국 한 사회를 썩게 만들 것이다.

소수당이 다수당 되고 야당이 여당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변화를 불러올 것이며, 설령 야당이 여당될지언정, 이미 썩을 대로 썩은 상황에서부터 수질관리를 시작해야 함으로써, 최소한 지금과 같은, 비록 3급수지만 정수시설만 좀 더 개선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을, 사실상 우리 세대에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썩은 물을 3급수로 만드는 사회적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3급수를 만들 가능성마저 희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야당추천 몫인 미발위 위원들은 시커멓게 썩은 폐수를 강물로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3급수를 2급수 1급수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책임지는 제도권 내의 핵심인사들이다. 지금은 그들을 믿어야 한다. 지금은 그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밖에 있는 이들은 밖에서 이들이 제대로 된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이웃을 설득하고 그 힘으로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을 압박, 종국에 한나라당이 그들의 악법을 폐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100일간의 전쟁’을 ‘민주주의의 축제’로 끌어가는 내·외부의 집중력과 단결력이 필요한 때다. 안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에 길이 빛날 ‘자유언론의 바이블’을 만들어낼 수 있게 노력하고, 밖에서는 폐수가 강물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차단하는 힘있는 싸움을 전개해야 할 때다.

한나라당이 도발한 입법전쟁의 그 끝은 양심적 민주시민들의 환호성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100일전쟁을 민주주의의 축제로 승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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