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신’과 맞서고 있다. 지난해 촛불 때는 초중고생과 맞서고,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한 네티즌과 맞서더니, 최근에는 공영방송과 맞서며, 이미 맞설 만한 모든 것들 심지어는 맞서서는 아니 되는 어떤 것들까지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맞서왔던 이 정부였다. 더이상 국내에선 상대를 발견하기 어려웠는지, 드디어 국제무대로 진출했다. 이건, 뭐 호전적 도전성이라고 해야 할지 아예 정신줄을 놓았버렸다고 해야 할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상황은 그러하다.

정부가 외신과 맞서게 된 발단은 이렇다.

▲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통계 자료, 기사 화면 캡처.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6일 ‘Domino Theory’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이 신흥시장 가운데 경제위기에 3번째로 취약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는 한국의 외채 비율과 예대율(예금자산 대비 대출자산의 비율)을 들었다.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재정부는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외채 비율과 예대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이코노미스트의 통계가 한국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해명이었다. 덧붙여 이코노미스트에 반론을 게재하고, 본사를 직접 방문해 해명할 것임을 밝혔다. 불같이 강한 대응이었다.

정부의 해명대로 지난 5일자 이코노미스트에 정부의 반론이 게재됐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같은 날 이코노미스트가 다시 정부 주장을 재반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코노미스트가,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이 근거로 삼은 수치와 통계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이코노미스트의 통계 구성요소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결국, MB정부와 이코노미스트의 맞섬은 해석의 차이에 기인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통계 처리 방식을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한국 금융기관들이 경제위기에 취약한 수준이라고 재반박했다.

유력 경제지와 한 나라의 정부가 같은 수치를 다르게 통계 처리하고, 아예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기막힌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상황과 입장에 따라 경제학의 ABC는 바뀌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정부는 외신이 인용하고 있는 통계 자료들이 한국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기준임을 강변하고 있다. 말하자면, ‘글로벌 스탠다드’가 통하지 않는 ‘토종적’ 요소들이 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에서 실시한 외신의 경제 보도 신뢰 여부 여론 조사 결과. ⓒMBC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에서 전국 10대 이상 남/녀 3236명을 대상으로 외신의 경제 보도 신뢰 여부와 관련된 여론 조사를 시행했다. 결론은 ‘신뢰 58.1% 대 불신 36.4%’이다. 3명 중 2명은 외신을 신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외신은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이겠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8.7%는 실제로 ‘우리 경제의 현실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거나(26.1%) 혹은 ‘외신이 우리 경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15.8%)이란 대답은 합쳐도 40% 정도에 불과했다. 정부의 선전이 어느 정도 먹혔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정부는 여전히 분주하다. 금감위 부위원장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문을 싣는 등 외신의 부정적 보도를 막기 위해 이른바 선제적 조치들이 던져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불신하는 외신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교정되지 않고 있다. 역시,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반박이 아니라 대책이다. 설문 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취약한 경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외신과 드잡이 할때가 아니다.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큰소리만 뻥뻥 쳐대는 정부의 모습, 97년 환란 때 이미 한 번 봤다. 다시 한 번, 국제적인 우스개가 될 게 아니라면, 자중해야 한다. 우격다짐은 국내에서나 겨우 통하는 것이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수단이 되질 못한다. 외신은 조중동이 아니다. 음모하지 않는다. 강고하고 동일한 이익의 카르텔이 아니란 말이다. 외신에 변명으로 맞서지 마라. 구질구질하고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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