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윤은 <1박2일>에 오면서 얻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했다. 바로 이름이다. <1박2일> 제작진은 윤시윤의 개명 전 이름을 용케 알아내고는 그에게 본래 이름이었던 동구를 쓰게 했다. 배우가 예능에 고정으로 합류한다는 것은 자기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일 텐데, 윤시윤은 시작부터 그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대신 얻은 것도 있다. 사실 그것도 크다. 그저 본래 쓰던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것뿐인데 그것이 그만 캐릭터가 돼버렸다. 해병대를 다녀온 윤시윤이라고는 믿기 힘든 허당력 만렙 찍은 운동신경은 그 동구의 캐릭터화에 결정적인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윤시윤에게 보통의 예능 후발주자에게 쏟아지는 민폐 논란이 뒤따르지 않은 것이 참 신통했다.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배우라서, 훈남이라서가 아니다. 무대책의 긍정과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이 까다로운 <1박2일> 고정팬들의 눈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화여대 축구부와 기상미션 면제를 걸고 가진 축구시합에서도 그랬다. 이미 탁구와 족구를 통해서 윤시윤의 몸은 기능이 없는 전시용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대관절 해병대의 빡센 훈련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그럼에도 윤시윤은 그 전시용 몸이라도 잠시도 쉬지 않는 열정으로 한 골을 넣을 수 있었다. 그것이 윤시윤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운이 좋았다고 폄하할 수 없을 정도로 윤시윤은 바지런히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윤시윤의 운은, 그 실력은 바로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윤시윤 덕분에 3골 째를 넣어 <1박2일> 멤버들은 기상미션을 면할 수 있었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경기를 운영한 이대 축구부는 각종 안마기에 회식비까지 덤으로 받아갈 수 있어 서로가 이긴 윈윈 경기로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멤버들을 곱게 쉬게 해줄 리가 없는 제작진이었다. 축구 경기로 지친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미션이 있었다. 바로 특강이었다.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과거 비슷한 상황이 <남자의 자격>에 있었고, 그때의 멤버들은 40대에 50대의 이경규까지 있어 특강의 무게가 있었지만 <1박2일> 멤버들의 특강은 어떨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필이면 첫 번째 주자로 윤시윤이 마이크를 잡게 됐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윤시윤의 강의(라고 쓰고 고백이라고 읽자)가 시작되자 호기심은 기대로 바뀌었다.

확실히 주연배우를 해온 윤시윤의 장점은 듣는 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뭔가 규정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윤시윤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자신의 큰 성공 후에 겪었던 두려움과 그 두려움 때문에 겪어야 했던 큰 후회의 진솔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무리 대상이 어린 대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이미 성인이 된 이들의 마음을 말로써 움직이고, 열게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윤시윤의 고백은 그 어려운 일을 가능케 했다. 보통의 특강은 무언가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일 수 있지만 아직 청춘인 윤시윤은 몇 살 어리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청춘들에게 뼈저리게 느낀 경험과 성찰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짧았다. 그렇지만 긴 특강의 질량보다 부족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청춘에게서 청춘에게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 고백의 파장은 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현재 예능 <1박2일>의 동구임을 잊지 않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드라마에 이어 예능에서도 동구불패가 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아직은 낯선 예능이라는 새로운 도전지에서 동구 윤시윤은 진정성이라는 보검을 얻은 것 같다. 아니 본래 장착하고 있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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