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많은데 할 것이 없다. 청년백수들의 곤란한 형편 이야기가 아니다. 세 번씩이나 짐을 쌌다 푼 <무한도전>이 결국 최종적으로 미국행을 포기하면서 생긴 사정이다. 미국 출장을 위해 일주일의 스케줄을 비운 보람도 없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한강변으로 와서 오프닝을 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것도 없고, 해놓은 것도 없는 <무한도전>은 아무 계획 없이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래서 억지춘향 격으로 주어진 주제가 ‘오늘 뭐하지?’였다. 이른 여름 날씨를 맞고 있는 요즘이라 제작진은 급히 워터파크 섭외를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워터파크 폐장 후에야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 그냥 기다리기에는 방송분량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고급인력을 그대로 놀릴 수도 없는 노릇.

MBC <무한도전- 오늘 뭐하지?> 편

그래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서울 근교의 계곡 마실이었다. 목적지는 의외로 빨리 결정했고, 워낙 가까워서 30분 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뭄 탓에 계곡을 말라 있었고, 그나마 물이 좀 많은 곳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하늘이 무도를 버린 것 같았지만 사실은 도운 것이다. 점점 더 상황이 꼬이게 되자 11년간 쌓였던 무도의 위기관기능력이 본능처럼 발휘되기 시작했고, 어쨌든 너끈히 분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

여름이 오면 무도팬들이 떠올리는 단어가 하나쯤 있다. 그것은 바로 무도 클래식. 지금의 거창한 프로젝트들과는 달리 원초적 웃음을 주어 날만 더워지면 또 보고 싶은 명작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무도 클래식이다. 이후에 워터파크로 이동해 이런저런 게임을 했지만 ‘오늘 뭐하지?’의 핵심은 계곡에서 다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BC <무한도전- 오늘 뭐하지?> 편

<무한도전>의 위상은 매우 높다. <무한도전> 말고도 다른 프로그램을 여럿 하고 있지만 유재석이 가장 유재석다워지는 곳은 <무한도전> 안에 있을 때이다. 유재석만 그렇겠는가. 다른 멤버들도 다르지 않다. 그것을 무도 멤버들이 가진 내공이라고 할 수도 있고, 팀워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 뭐하지?’를 통해서 발견한 것은 추억이었다.

무모한 도전과 무도 클래식 사이에 흐르는 무도의 전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식상한 말보다 이쪽이 훨씬 듣기 좋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분명 부정적인 의미지만 무도 안에서는 반대다. 평소와 달리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살짝 내려놓은 유재석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입 가진 사람 다 떠들게 하고,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 그 혼란이야말로 무도팬들이 좋아하는 무질서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봐야 늘 봐왔던 모습이지만 제작진으로부터 무엇을 하라는 제안 없이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주는 막장스러운 상황이 주는 묘한 해방감이 시청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었다.

MBC <무한도전- 오늘 뭐하지?> 편

그간의 <무한도전>은 조금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뭔가 모르게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알게 했다는 것이 어쩌면 ‘오늘 뭐하지?’의 최대 수확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도 11년,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은 ‘무도답다’는 말일 것이다. 여전히 그것을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지만 ‘오늘 뭐하지?’에서 보인 우왕좌왕하면서도 결국은 웃게 만드는,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추억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제는 모두 대한민국의 내놓으라는 유명인이 되었고, 그만큼 나이들도 많아졌다. 그럴수록 더 절실한 것이 무모한 도전으로부터 죽 이어온 그 허술함이 아닐까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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