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장면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팔이 부러진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친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들이닥쳐 벌어진 일이다.

당신은 기자다. 두 사건을 나란히 보여주겠는가.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고, 다른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다….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단순 폭행사건도 아니다. 두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개별적 가해와 피해보다 선행하는 건 집단 몸싸움이며, 이보다 선행하는 건 쟁점법안 강행처리 시도다.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둘러싸고 양쪽이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식으로 다치고, 다른 누구는 어떤 식으로 다쳤다….

이렇게 보도하는 게 맞다.

그럼 사진은 어찌할까. 집단 몸싸움 장면을 보여주는 게 기본이다. 다친 사람들의 부상 정도가 심하다면 집단 몸싸움 장면 대신 두 사람이 폭행당하는 두 개의 사진을 나란히 싣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 조선일보 3월 2일치 1면 기사

지금까지 말한 건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보도방법론의 기초다. 기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이 사건을 단순 폭력사건으로 다루는 건 수습기자 정도가 저지를 만한 ‘실수’다. 그러나 하나의 폭행 장면만 사진으로 싣는 건 누구도 저지를 수 없는 실수다. 다시 말해 고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사실 왜곡’이다. (조선일보 3월 2일치 1면 ‘야 당직자, 여 의원 폭행’)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국회 의무실에서 울먹이며 걸어나온다. 그러고는 곧장 병원에 입원한다. 한나라당은 전 의원이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다고 한다. 괴한이 전 의원의 눈을 후벼파 실명할 수도 있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고 한다. 백주 대낮에 민의의 전당에서 국민의 대표에게 가한 테러란다. 그런데 그 괴한이 우리 세는 나이로 일흔인 할머니였다고 한다.

▲ 동아일보 2월 28일치 1면 기사

지금 기자인 당신이 아는 건 한나라당이 발표한 내용뿐이다. ‘괴한 할머니’ 쪽 얘기를 들어보겠는가. 그쪽 얘기가, 불과 20초 동안 옷자락을 잡고 실랑이만 벌였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한다. 양쪽 주장이 엇갈린다. 어떻게 사실을 구성하겠는가. 비교적 긴 문장 12개로 한나라당의 주장을 옮긴 다음 이렇게 끝맺는다고 치자. “그러나 괴한 할머니 쪽은 폭행사실을 부인했다.” (동아일보 2월 28일치 1면 ‘전여옥 의원 국회 안에서 피습’)

기자로서 흡족한가?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1531호 ‘미디어 바로보기’에도 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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