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이라는 가치과 개념이 있다. 문상현 광운대 교수는 17일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중간광고 세미나에서 “방송이라는 영역이 이제는 이익집단의 정치 영역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지상파가 방송정책의 중심에 있었을 때는 공익론 대 산업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가능했는데 지금 언론 환경은 그런 사고와 틀로 사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제는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개념이 공허하게 사용되는 레토릭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견 맞는 지적이다. 사업자 셋이 시장을 독과점한 이동통신시장과 달리 방송시장은 정글 같다. 플랫폼사업자로서 지위를 사실상 잃은 지상파방송사들은 ‘경쟁력 있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로서 JTBC와 CJ E&M 같은 후발주자들과 경쟁한다. 줄어드는 방송광고시장에서 제몫을 지키려는 사업자들의 생존을 경쟁하고, 지상파부터 OTT까지 다양한 방송플랫폼과 서비스가 경합하고, 중국와 미국의 거대 자본이 밀려들어와 판을 펼치려는 이곳에서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구호는 분명 추상적으로 들린다.

헌데 지금 이처럼 추상적이고 공허한 구호를 가장 적극적으로 외치는 사업자가 바로 지상파다. 지상파는 4·13 총선 직후부터 각종 학회를 후원하며 중간광고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상파방송의 공적 책무와 한류를 위해서는 질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재원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중간광고뿐이라는 게 지상파방송사들과 이들의 후원을 받은 학계의 목소리다. 지상파 방송광고 매출이 정체 중이고, 제작에 투입할 수 있는 비용이 줄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2016년 6월 1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방송정책과 중간광고, 분절과 접합에 대한 평가와 모색>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학회장인 박용규 상지대 교수는 “이상적인 지상파와 현실의 지상파 사이에 간극이 크다. 그 동안 중간광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실제 방송정책과 관련해 이를 점검하는 세미나는 없었다”며 “오늘 이 세미나가 지상파 중간광고 해결하는 정책적 해결하는 세미나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자인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그 동안에는 ‘중간광고가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찬반 논의만 반복했다. 진전된 의견과 관점이 제시되기보다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만큼 논의했으면 시행하자’고 했고 반대 측에서는 ‘이렇게까지 반대했으면 그만하자’며 의견접근을 보지 못했던 주제다. 오늘 세미나는 정부가 그 동안 중간광고를 포함한 방송정책과 기타 여러 방송시장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해왔는지 정책적 논의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논의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상파의 숙원사업 두 가지 중 하나인 수신료 인상은 국회가 다뤄야 하는 문제인 까닭에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중간광고는 정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가능하다. 지금 지상파는 정부의 정치적, 정책적 선택을 이끌어내는데에 집중하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와 대선 정국 사이, 언론의 몸값이 뛰기 때문에 지상파에게는 지금이 바로 중간광고를 요구할 적기이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수신료보다 중간광고 문제를 풀기가 쉽다. 명분도 있고 시행령을 고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상파는 중간광고를 이야기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코드를 맞추고 있다. 지상파는 한류 확산을 창조경제의 중요한 과제로, 공적 책무 강화를 정부의 사회통합에 위치지었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의 지적처럼 “방송정책이 규제완화 논리, 사업자 알력, 여론전에 영향을 받아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가 중간광고 규제완화의 명분으로 공공성, 공익성, 공적 책임을 내세우는 것은 정책 결정자를 설득하기에도 여론전을 펼치기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

지상파의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학계는 어느 정도 설득이 됐다”(이수범 인천대 교수)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지상파가 PP로 전락한 시대에 지상파만 중간광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비대칭규제’에 부정적인 학자들도 많다. 시청자단체들에서는 “시청 흐름을 방해하는 협찬과 간접광고를 규제하고, 차라리 중간광고를 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1분짜리 클립영상을 무료로 보기 위해 15~30초 광고를 시청하는 시대가 된 만큼 ‘콘텐츠를 공짜로 보려면 광고 정도는 봐줄 수 있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Pixabay

그러나 여전히 지상파 중간광고에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지상파와 학계는 왜 어떤 시민들이 지상파가 구현하는 공공성, 공익성, 공적 책무에 불만을 품는지 주목해야 한다.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능력 있는 언론인을 현장에서 쫓아내고, 노사동수 편성위원회조차 거부하고, 시사교양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고, 인기프로그램 VOD를 건당 1500원에 팔고, 언론보다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지상파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많다. 이들이 지상파에 바라는 공공성, 공익성, 공적 책임은 매우 구체적이다. 지상파의 공허한 공공성과는 다르다.

방송에 대한 공공성은 편성·광고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구현돼 왔다. 지상파가 이 규제들을 없애려고 한다면 새로운 공공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영주 제3언론연구소 소장은 “지상파가 (공공성에 대한) 내부의 투쟁과 대안 제시 없이 자꾸 광고 문제로만 (생존문제의) 답을 내려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소장 지적대로 그것은 공정성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상파, 특히 공영방송은 자신을 옥죄는 정치적 지배구조에 대해 침묵하고, 공공성을 시도하고 있지 않다. 광고매출을 6% 늘리는 것에만 혈안이다.

지상파가 주머니와 공공성을 함께 챙기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저널리즘과 콘텐츠부터 경쟁하고, 퍼블릭 액세스를 늘리면서 시민들에게 부탁해야 한다. 이럴 용기가 없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지상파 프로그램과 VOD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대신 실시간방송과 VOD에 중간광고를 허용해주십시오.’ 그런데 지상파는 정반대다. 그래서 지상파가 중간광고를 하려면 아직 멀었다. 아니, 공허한 구호만 외치고 있으니, 될 턱이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