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팰웰 목사

지난 2004년 1월 31일,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근본주의 교파의 대표적 목사인 J. 팰웰(2007년 73세를 일기로 사망)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수많은 군대를 쳐부수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착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령한 바 있다. 인류의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등등등.

J. 팰웰은 1979년 Moral Majority라는 이름의 기독교 정치단체를 결성하는 데 가장 주도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Moral Majority는 미국에서 우익 기독교 집단(Christian Right)의 본격적 정치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조직은 1989년 각종 스캔들과 내부 갈등으로 해산될 때까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대중정치-유권자 영향력과 로비의 측면에서-단체였다. 이들이 1980년 선거에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제리 팰웰 목사(왼쪽)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theage.com.au 화면 캡처
보수정권과 우익 기독교 집단

우익 기독교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공화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교회, 각종 기독교 단체와 그 구성원을(예: 개신교 중에서 복음주의-근본주의 교파)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미국 보수주의 체제의 헤게모니를 받쳐주는 가장 중요한 대중집단이다.

이 집단의 사회적 규모는 엄청나다. 연구자에 따라 수치에 차이가 있지만 3억 정도의 미국인구 중 복음주의파 신도(evangelicals)는 대략 6천만 정도. 미국 전역에 20만 여개의 복음주의 교회(물론 모든 복음주의 기독교도가 보수주의자인 것은 아니지만), 2000여개의 기독교 라디오 방송, 6개의 기독교 TV 네트워크.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적지 않은 수의 교육기관(예: Liberty University, Regent University 등). 또 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후원하는 대기업들. 여기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주의 단체의 하나인 전국정책회의(Council for National Policy)-1981년 레이건 당선 이후, P. 로벗슨, J. 팰웰 등의 우익 기독교 목사들과, Amway 창립자인 R. 드보스, 맥주재벌인 J. 쿠어스 등이 중심되어 결성한 모임. 유력 정치인, 정부관료, 부유층, 기업, 언론인 등등이 여기의 회원임. 등등등.

한편 사회적 규모에 바탕한 이들의 정치적 규정력 또한 대단하다. 대중적 동원능력과 설득력, 신도들의 열성적인 참여 등을 바탕으로, 우익 기독교 집단은 대통령으로는 80년, 84년의 레이건, 2000년, 2004년 부시의 당선, 그리고 의회로는 1994년에서 2004년까지 공화당의 다수의석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편 부시 시대에 접어들어 우익 기독교, 더 정확히 말해 복음주의-근본주의자들은 부시와 함께 미국 사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예: 연방 대법관 지명을 좌우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이들에게 부시와 함께 신정정치(theocracy), 즉 종교정치를 행한다는 비판이 가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등장의 배경

우익 기독교 집단이 미국사회와 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부터이다. 이들은 60~70년대 미국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변동에 대한 일반 대중과 보수주의자들의 반동을 조직화하고자 하는 교회, 그리고 이를 남부 진출/확대의 기초로 삼은 공화당의 정치전략이 서로 맞물리면서 시작된다.

우익 기독교 집단은 지금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지만 출발지점은 흔히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 불리는 남부이다. 미국의 남부는 상대적으로 기독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지역이면서 동시에 인종차별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이다. 한편 미국의 남부는 민주당의 아성으로 남부의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은 일종의 철천지 원수 같은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왜? 링컨과 노예해방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북 전쟁 이후 100여년이 지난 1960년대 초까지 공화당은 남부에서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남부의 교회를 조직확대의 파트너로, 남부의 교회는 공화당을 기독교 정치의 파트너로 하는 강한 협력적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을 서로 묶어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민주당과 진보/개혁주의자들이 추진하는 미국사회의 변화가(예: 여성해방 운동, 흑인 민권운동, 소수자 권리 운동, 반문화 운동, 흑인의 참정권 확대, 인종차별 제도 폐지 등) 반기독교적일 뿐 아니라 남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권리 침탈이라는 것.

남부에서 이 메시지가 가지는 힘은 매우 컸고 이에 기초한 설득과 동원의 과정을 통해 교회는 교회대로, 공화당은 공화당대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사회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가 60~70년대 미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 함께 맞선 것이고, 이것이 우익 기독교 집단이 미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조직으로 성장하게 되는 배경이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또 링컨의 정당, 노예해방의 정당으로 낙인찍혔던 공화당이 남부의 정당으로 거듭나게 된-남부의 대전환이라 불리는-근본 맥락이다.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이들 우익 기독교 집단의 핵심주장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들에게는 정부와 교회의 분리원칙을 천명한 미국의 헌법도 재개정 되어야할 대상이다. 이들에게는 또 합리적 과학, 이성적 논리에 기초한 사회체제와 질서의 구축보다, 예수에 대한 신앙심, 근본주의적으로 해석한 성경의 말씀(예: 성경 무오류설)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각종의 공교육 과정에 종교 활동(예: 학교 기도, 성경 독회 등)과 기독교 과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예: 창조론/지적 설계론을 진화론과 동등한 수준과 내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 실제로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교육위원회의 성향과 결정에 따라 창조론이 교육과정에 포함되기도 함.)

또 이들이 보기에 여성운동, 동성애자, 낙태 등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거의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죄악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나 정당은 이단에 가까운 존재들로 간주된다. 따라서 국가는 오히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전통적 도덕률을 수호하고자 하는 종교/사회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이에 반하는 개인이나 집단들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는 경비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낙태수술을 행하는 의사를 사형에 처하자는 입법을 주장하는 정치인(오클라호마의 공화당 T. 코번 상원의원)도 있고, 미혼모 여성은 아예 교직에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도(사우스캐롤라이나의 공화당 J. 드민트 상원의원)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미국을 전통적인 가치에 입각한 도덕국가로 거듭나게 하고, 나아가 세계를 기독교에 기초해 다시 만들어내자는 것이 우익 기독교 집단이 주장하는 핵심요체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아마겟돈의 대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그것이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익 기독교 집단이다. 팰웰과 로벗슨이 9·11 테러는 낙태국가, 동성애 국가, 세속적 가치에 물든 미국을 벌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한 일이라고 말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익 기독교 집단은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성경의 이름으로 재단하려 한다. 또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패권적 대외정책/군사정책이 보수의 전통적 주장인 작은 정부론과 배치된다는 모순을 느낄 틈이 없다. 우익 기독교 집단은 또 시장만능-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거침없이 주장한다. 기독교의 도덕률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간에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익 기독교는 미국의 보수주의가 모순에 가득 찬 이데올로기/집단임을 보여주는 매우 유력한 사례 중 하나이다.

모순과 혼돈의 집단

우익 기독교가 가진 문제의 핵심이 바로 그 같은 모순이다. 사회적으로는 도덕적 전체주의를 부르짖는 파시스트적 지향성을 보이면서도, 정작 경제분야에서는 자유지상주의를 내세운다. 본래 자유란 분리 불가능한 것이다(indivisibility of liberty). 사회적 자유 따로 있고, 경제적 자유 따로 있고, 정치적 자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 철학은 자유가 영역별로 분리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본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야 일관된 자유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관철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익 기독교 집단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재단해서 가져다 쓰는 편의주의적,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다.

두 번째는 우익 기독교의 시대착오적 가치/이념의 문제이다. 미국사회와 문화의 지배적인 가치가 변화하고 있고, 미국의 인구구성 자체가 변하고 있음에도, 우익 기독교 집단은 전통적 (백인기준의) 기독교 도덕률로 미국 사회를 다스릴 수 있다는, 또 그래야 한다는 복고적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완장 찬 보수 기독교가 공화당과 미국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반공개적인 비판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우익 기독교 집단의 주장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 끌려 다닌다. 아닌게 아니라 우익 기독교의 조직적 동원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설령 공화당이라도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 예를 들면 온건합리적 성향의 의원들을 몰아내는데-공천배제, 낙선운동 등의 형태로-이들은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셋째, 이들 우익 기독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 성향의 문제이다. 근본주의자란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에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또는 종교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고 믿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악으로부터 자유롭다, 면역되었다, 악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믿는다. 내가 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악이라면 내가 다른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맞는 의무적 행위가 된다. 이들에게 따라서 관용이란 없다. 악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는 자가 오히려 제거대상인 상대방을 닮아가는 것이다. 종교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숱한 폭력의 뒤에는 이런 근본주의 도그마가 똬리를 틀고 있다.

우익 기독교와 보수주의

우익 기독교 집단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과장되었다’, 또 ‘이들은 2004년을 정점으로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우익 기독교 집단의 위세는 변함이 없다.

미국 우익 기독교 집단의 기본태도는 기독교도가 되는 길은 한 가지 뿐이며 또 미국인이 되는 길도 한 가지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보/개혁주의자들은 성경에서 인정하지 않는 철학을 가진 집단일 뿐이며 자신들은 성경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집단이다. 이런 종교적 전체주의의 태도가 바로 제국 아메리카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는 바탕 중 하나이다.

H.R. 니버는(신학자 R. 니버의 동생) ‘종교는 선한 사람한테는 선한 것, 나쁜 사람한테는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자신이 악의 뿌리라는 것, 따라서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 이런 깊은 반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종교는 비로소 선한 것이 된다는 뜻이다. 진정한 종교는 사람들을 보다 깊은 성찰과 명상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또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또 우리 편과 다른 편을 가르는 쉽고 단순한 기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른 모든 신앙과 마찬가지로 완전치 않다. 문제와 결점이 없을 수 없다. A. 테니슨이 강조했듯이 신앙심은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지한 의문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익 기독교 집단은 겸손함과 자기비판의 덕목을 망각하고 도덕적 전체주의를 주창하는 집단으로 변했다. 미국 보수주의가 사이비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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