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KBS <폭소클럽2> '기호0번, 박후보'의 한장면이다.

일단 읽어보라. 그리고 상상하라.

"이제 이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개혁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너와 나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벽, 우리의 소통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을, 이 박00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과감하게 허물어 드리겠습니다."

"이 사회를 가로 막고 있는 분단의 벽, 불신의 벽, 모두 허물어 버리겠습니다. 지역감정의 벽을 넘겠습니다. 통합의 마당, 배려의 마당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너와 나를 막고 있는 벽을 허물겠습니다. 이 박00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의 목소리를 넣어도 문장이 자연스럽다. 정치인들의 연설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31일 첫 등장한 KBS <폭소클럽2> '기호0번, 박후보'에서 개그맨 박준형이 택한 첫 연설문이다. 탁월하다.

후에도 박준형은 이처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연설들을 계속 이어나갔다. 물론 공약은 조금 달랐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114에 연예인 전화번호 전담반을 설치하고, 김희선과 한채영 중 누가 예물을 더 많이 받았는지를 알려주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어떤 농담도 연설 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연설이 진부할 수록 재미있었다.

분단의 벽은 무리라고 치자. 서로를 불신하는 벽도 깨지 못하는 대선후보들의 모습이 연상됐고, 4년에 한번씩 당만 통합하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도 괜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제나 대선후보들은 똑같은 연설을 해왔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러번이라 다 기억하고 있다.

통일문제는 남북이 마음을 열고 협력해서 해결한다. 교육 문제는 백년지대계라는 철학을 펼친 뒤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다가, 모든 게 다 학벌사회 탓이라고 꼬리를 빼면 된다. 경제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서 서민경제를 활성화시키면 되지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복지는 일단 믿고 애 셋쯤 낳고 기다리다 보면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말이다. 이도 저도 안되면 대한민국은 IT강국임을 강조해 국민들 어깨를 펴게 만들면 된다.

이런걸 짚다보면 박준형 만한 후보도 없어보인다. 114에 전화걸면 장동건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게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니,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지 않았나. 더도 덜도 말고 박준형 만큼만 해야 한다.

박준형도 잘했지만, 뒤에서 지지자 역을 맡은 코미디언들도 제역할을 했다. 흰장갑 끼고 나와 후보가 어떤 말을 해도 무조건 열광한다.

다만 박준형이 뭘해도 정치인들만큼 웃기지는 못할것 같아 걱정이다. 이 코너는 대선때까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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