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일 조간신문에는 지난 7일 주말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대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 보도는 어디까지나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을 폭행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시위대들이 경찰을 때린 것도 모자라 한 경찰관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사용한 도둑으로 묘사됐다. 그 보도 속에는 집회의 원인과 그들의 요구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없었고, 집회 결과와 현상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데에만 급급했다.

▲ 3월 9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면 ‘경찰관 두들겨 맞는 이 나라’ 제목의 기사에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폭행당하더니, 이번엔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대에 잇따라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전했다. 1면 사진 역시 이와 관련해 혜화경찰서가 제공한 사진을 실었다.

중앙일보 역시 2면 ‘용산시위대 200명 주말집회 경찰 폭행 무전기·지갑 강탈’기사에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야간집회에서 경찰관이 폭행당한 뒤 신용카드를 빼앗기고, 경찰관 10여 명이 시위대에 집단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했으며, 동아일보도 “시위대, 경찰관 16명 집단폭행 신용카드 빼앗아 옷-담배 구입”라고 했다.

이들 조중동이 주요하게 바라본 것은 어디까지나 주말에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시위대’와 ‘그 폭력을 행사한 단체들이 주로 지난 여름 촛불집회 당시 참가 단체’였다는 것, 그리고 ‘시위대 참가자인 한 남성이 경찰관의 지갑을 탈취해 옷과 담배 등을 산 행위’였다. 여전히 쟁점인 부분은 경찰의 지갑탈취와 신용카드 사용.

집회 참가자, 경찰관의 지갑 탈취와 신용카드 사용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의 무리들 속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박아무개 경사의 지갑을 집회 참가자 1인이 뺏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지갑에 있던 신용카드로 15만원 상당의 남성의류와 담배 한 보루가 결제됐다는 점. 경찰에서는 CCTV 확인 결과 집회 참가자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찰의 주장이다.

이 때문일까. 조선일보는 ‘시위 참가자=경찰 신용카드사용’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조선일보는 “누군가 지갑 뺏어 카드로 옷·담배 구입”이라며 ‘누군가’로 명명했다. 지갑의 강탈자과 신용카드 사용자을 분리했다. 그러나 “(강탈당한 뒤) 곧이어 누군가 박 경사의 카드로 15만4천원짜리 점퍼와 담배 2만5천원어치를 사는 ‘강도 행위’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시위대 1인이 박 경사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교묘한 ‘사실 배치’다.

중앙일보는 “이때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그(박 경사)의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갔다. 이 남자는 10분 후 인근 의류매장에서 박 경사의 신용카드로 15만4천원짜리 점퍼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2분 뒤엔 근처 마트에서 2만5천원짜리 담배 한 보루도 샀다”고 전해, 집회 참가자와 신용카드 사용자가 동일인물이라는 확신으로 기사를 썼다. 마치 현장에 있었다는 듯이 그 묘사까지 상세했다.

동아일보도 ‘시위 참가자=경찰 신용카드 사용’을 규정하는 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동아일보는 경찰이 8일 “시위대 200여 명이 혜화서 소속 박모 경사를 폭행하고 지갑을 빼앗아갔다”고 밝혔다며 “카드로 담배를 구입한 50대 남성이 시위대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와 동대문역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했다. 박 경사를 폭행하고 지갑을 빼앗은 사람과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경찰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 3월 9일 경향신문 10면 기사
그러나 경향신문은 혜화서의 박정보 형사과장의 인터뷰를 통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카드 사용 용의자가 정황상 시위대와 일행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시위대와 함께 움직인 자료도 일부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용산철거민 범대위의 인터뷰를 통해 “신용카드로 결제한 사람이 시위대나 촛불 시민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한겨레 역시 “경찰 ‘지갑 빼앗아 신용카드 사용’ 주장도”라고 명명하며 경찰의 주장임을 명확하게 했다. 또한 경찰의 말을 인용해 “박 경사는 지갑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 주워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찰의 주장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황상 그렇다”라는 경찰의 말만으로 시위 참가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언론보도는 문제다. 조중동은 ‘경찰의 주장’이라는 사실을 묻고 이 사건을 용산참사 추모 시위대에 대한 흠집내기용으로 삼았다.

지난 주말 용산 추모 집회에는 시위대의 경찰폭력만이 난무했다?

경찰에 의하면 지난 주말 용산 추모 집회에서 16여명의 경찰이 다쳤다고 한다. 특히나 한 경찰의 경우 코뼈까지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은 있는 것 같다. 과연 지난 주말 집회에는 ‘시위대의 폭력’만이 난무했을까는 지점이다. 왜 신문들은 폭력을 넘어 추모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았을까. 오늘 9일 동아일보에는 “유품 정리하다 표창장 붙들고 한참 울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용산 참사 때 철거민 이외의 또 다른 희생자였던 故 김남훈 경사의 49재를 맞아 아버지 김권찬씨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 3월 9일자 동아일보 10면 기사

동아일보는 “49재 때 태울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남훈이가 경찰 하면서 받아온 표창장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어요. 근무복이며 트레이닝복, 내의까지 모두 차 트렁크에 실어놨는데 아들 사진까지는 태울 수 없더군요”라는 아버지의 말을 전하며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봤다. 아들을 잃은 뒤 불면증에 시달린 사연, 끼니를 제때 먹지 못해 몸무게가 78kg에서 67kg으로 줄어든 사연, 원래 심장이 약했던 김 경사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충격에 혈압이 올라 아직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아들의 손때가 묻은 승용차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들의 49재를 맞아 용산참사의 희생자인 철거민들의 분향소에 다녀왔던 사연까지.

동아일보의 기사를 읽으면서 진정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도 벌써 50여일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용산참사로 희생된 철거민들은 아직 장례절차도 밟지 못하고 있고,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 검찰수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인 양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철거민들이 추모집회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매체들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이것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역시 집회 자체보다는 집회 결과 경찰 16명이 다쳤다는 것에 집중했고, 나타난 정도는 다르지만 박 경사의 신용카드 사용이라는 현상에 대한 보도만을 했을 뿐, 그 집회의 본질은 꿰뚫지 못했다. 집회를 통해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도 없었다.

폭력집회는 경찰, 조중동의 주장처럼 없어져야 한다. 폭력집회로 인해 경찰이 다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집회 자체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다뤄야 한다. 사람들이 왜 집회를 조직했는지, 문제의 현황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매주 토요일 용산 참사 추모집회가 있다고 해서 그 매주 같은 집회는 아니다. 경향과 한겨레는 용산 참사 추모집회 보도에서 나쁜 관성으로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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