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의 일이다. 종합부문과 장르부문을 모두 심의와 토론으로 결정한 다음 최종적으로 특별상후보를 선정할 시점에 어느 심사위원이 음악인이 아니라 음악프로그램 제작진을 추천했다. EBS에서 2004년부터 3년간 제작해왔던 라이브 음악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을 호명했을 때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다른 후보를 추천하지 않았고 결국 <스페이스 공감>이 만장일치로 특별상에 결정되었다. 이것은 까다로운 심사위원들에게도 그만큼 <스페이스 공감>이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스페이스 공감>은 여러 모로 한국의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불가능한 모습들을 갖고있다. EBS 본사 건물의 공연장에서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연이 열리고 그것을 편집해서 매주 2회씩 EBS 채널로 라이브를 방영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라이브프로그램 <윤도현의 러브레타(현재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개명)>이나 열린음악회도 주 1회가 고작이다. 또한 이런 규모에 비해서는 <스페이스 공감>의 스폰서가 대단히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천만의 라이브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이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요무대>처럼 열렬한 시청자그룹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시청률도 비교가 안 된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 PD들은 목이 몇 개지?

▲ 이승환의 말랑한 콘서트ⓒEBS

▲ 핀란드 재즈 밴드 페카필카넨튜브팩토리ⓒEBS
그렇다고 썩 대중성이 있는 음악인들이 출연하는 것도 아니다. 유명 음악인은 이승환, 자우림, 윤도현, 김창완, 신중현, 김수철 정도가 드물게 출연했고 나머지는 재즈, 클래식, 포크, 록, 민중가요, 힙합, 펑크, 하드코어, 월드뮤직, 퓨전국악 등 주류적 취향과는 거리가 먼 음악장르의 음악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존의 라이브 프로그램은 유명 음악인이 출연하면 반드시 과거와 현재의 히트곡 위주로 곡목을 강요한다. 훌륭한 장비를 보유했음에도 밴드가 출연해도 가수처럼 사운드를 잡아준다. 음악인들은 목까지 차오르는 불만을 억누르고 홍보를 위해 마지못해 출연한다. 하지만 <스페이스 공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곡목을 음악인에게 맡긴다. 음악인을 최대한 편하게 배려하고 음악인이 원하는 대로 사운드를 잡아준다.(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요?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세상물정 한참 모르는 사람이다)

직접 공연을 보러 가보면 공연장은 기가 막힌다. 객석의 길이보다 무대의 길이가 더 긴 직사각형의 공연장(151석)이라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5m밖에 안 된다. 상식과는 반대가 되는 모습의 공연장인데 이것은 건물의 로비를 반 잘라서 공연장을 맞추어 넣었기 때문에 형성된 모습이다. 그런데 실제로 공연을 보게 되면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음향의 불리함을 빼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 일체감을 형성하고 청중이 모두 무대에 들러붙어서 보는 형태를 띠게 되니 공연에 더욱 몰입이 된다.
모든 면에서 기존의 방송사 라이브 프로그램과는 거꾸로 갔기 때문에 한국의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가장 출연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방송의 공공성이 음악분야에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의 모범이 되었고,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특별상을 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청개구리 작전이 가져온 승리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사오정 같은 인간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거야? 그런 사람이 있다. 바로 전 사장인 고석만과 현 제작진 PD들이다. 2004년 고석만 사장은 새로 부임하여 EBS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확장시키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었다. 말도 안 되는 공연장 건립을 지시한 사람도 바로 고석만 사장이었다. 여기에 신이 나서 프로그램 제작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PD들인데 이들은 열렬한 음악애호가들이다. 특히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맡아오고 있는 백경석 PD는 학창시절 연극반원을 하고 기타연주도 했던 전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에도 어떤 음악평론가보다 열심히 신보들을 챙겨 듣고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홍대앞 라이브클럽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

자 이제 성공의 공식을 한 번 정리해보자.
EBS 방송; 열의와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공적인 태도를 가진 경영진의 전폭적 지원
⇒제작자, 음악인, 시청자 모두가 만족하는 성공

나머지 송들; 경영진의 이윤추구>>실무자의 열의와 전문성
⇒경영자, 스폰서 만족, 음악인 실무자 시청자 불만족인 그저 그런 프로들

전체의 결과를 비교하면 정상적으로 만드는 EBS는 사오정이 되고 비주류가 되며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여타의 방송사들은 표준이 되며 주류가 되는 것이 한국 방송매체의 일그러진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EBS <스페이스 공감>의 성공은 왜곡된 방송문화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규탄은 이쯤하고 <스페이스 공감>이 중시했던 가치들을 살펴보자.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당대 수용자들의 경향과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당대성’을 중시했다. 현재의 대세가 퓨전임을 포착하여 국악과 대중음악의 퓨전, 클래식, 국악, 재즈와의 퓨전 기획시리즈를 마련하여 당대의 경향을 선도했다. 세계화와 해외여행이 대세가 된 현재를 반영하여 아시아의 음악인들과 월드뮤직의 음악인들을 적극 초빙하여 세계의 음악문화에 눈뜨게 해주었다.

▲ 스래시 메탈 밴드 마하트마ⓒEBS

한국의 방송매체가 과거의 음악을 복고와 추억으로만 취급하는 것에 반해 <스페이스 공감>은 과거의 음악적 자산을 현재의 창작의 토대로 삼는 ‘역사성’을 중시했다.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유’ 라는 기획시리즈에서 한대수에서 신중현까지 12명의 한국대중음악사의 거장들을 무대에 세워 그들의 음악적 문제의식과 성과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었다. ‘20세기의 클래식’이라는 기획시리즈에서는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코 모리오네에서 존레논에 이르기까지 서구대중음악의 거장들을 재해석하여 당대의 클래식의 의미를 재정립했다.

대중성만을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여타의 방송사에 비해 <스페이스 공감>은 그들이 외면했던 ‘실험성’도 놓치지 않았다. ‘언플러그드 공감’ 이라는 시리즈를 마련하여 록, 발라드, 펑크, 펑키 음악인들이 어쿠스틱 악기를 들고 자신들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도전의 무대를 제공했다. ‘음악의 비밀’ 이라는 기획시리즈에서는 첼로, 드럼, 피아노 연주의 세계와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했다.

여타의 방송사가 한 사람의 성공한 음악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음악인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는지를 돌보지 않아 다양성이 무너지고 획일화의 폐단이 난무하는 현실을 만든 것에 비해 <스페이스 공감>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실력있는 비주류의 음악인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배분하여 음악의 다양성의 터전을 마련했다. 헬로루키 라는 신인선발전, 민중가요, 힙합, 펑크, 하드코어, 헤비메탈, 아카펠라, 포크 등의 비주류 음악인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훌륭한 음악인들인지 일깨워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페이스 공감>이 대중성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현재에 대중성이 뮤지컬로 옮겨오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여 ‘뮤지컬콘서트’ 라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하여 뮤지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다. 한국에 공연 오는 외국 음악인들을 발빠르게 섭외하여 데이빗란츠, 클로드볼링, 제이슨 므라즈, 리릿나워 등의 음악을 안방에서 TV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스페이스 공감>이 결과적으로 달성한 중요한 가치가 있다. 500팀 이상의 출연자를 보기 위해 16만 이상이 라이브음악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11대1의 경쟁률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수용자들이 음악인들의 진짜 내공은 라이브에서 표현되며 음악감상의 참 맛은 라이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대중음악의 문제점의 핵심은 음악인들보다 수용자의 정상적인 음악적 성장을 가로막은 인프라와 시스템의 문제가 훨씬 큰 것이었다. <스페이스 공감>이 일으킨 조그만 기적이 한국대중음악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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