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제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에 관해 협박조의 발언을 쏟아냈다. 구조조정에 대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미루거나 회피한다면 고통을 더욱 커질 것이고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자본에 편향적인 구조조정과 노동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해온 것을 오히려 정당화하고 앞으로도 강행할 것이라는 메시지다.

대통령과 정부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면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회가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않고, 노동개혁에는 협조해야 한다. 문제는 구조조정 국면에 파견법 개정 등 노동개혁 문제를 엮어 돌파하려는 정부의 태도다. 박 대통령은 조선·해운업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들어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취업규칙 일방 변경,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도록 했고 파견 허용 업종을 제조업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언론은 정부와 재계의 스피커를 자임하며 오히려 이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노동개혁 문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조선일보는 14일자 <20대 국회, 제발 비정규직 문제 하나만큼은 解法 내달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노동개혁 없는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는 박 대통령 발언을 인용하면서 20대 국회가 추진해야 할 노동 관련 과제로 △성과와 직무에 기반한 임금 구조 △노동시간 단축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제시했다.

▲조선일보 2016년 6월 14일자 사설

여기까지는 본래 보수신문이 해왔던 주장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갑자기 지난달 발생한 서울 구의역 참사에서 정규직-협력업체 정규직-협력업체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끄집어내며 황당한 해법을 제시했다. “20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는 바로 비정규직 증가 추세를 억제하고,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좁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해놓고 성과연봉제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

“근무 연수가 늘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서열형 호봉제에선 기업들이 정규직을 고용하려 들지 않게 된다” “기본적으로 정규직을 우대하는 고용 구조를 유연화시켜 기업 경영에 활력이 돌도록 해줘야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조선일보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연장하는 기간제법 개정안, 파견 대상 업무 확대를 위한 파견법 개정안도 거론했다.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대로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기업에 고정비용을 줄이고 배당을 늘릴 것을 요구하는 금융자본의 압박이 있고, 기업 자체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화를 확대한 측면도 있다. IMF를 전후로 정부와 자본이 함께 추진해온 노동시장 유연화와 자본-편향적인 기술진보로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많은 상황도 있다.

그러나 정규직을 고용을 해야 하는 이유도 그만큼 많다. 우선 우리 사회에는 안전 업무뿐만 아니라 적자를 감안하더라도 직접고용해야 하는 일이 많다. 정부와 자본은 상시필수업무를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노동법의 원칙을 망가뜨렸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된 것이다.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유도하고 규제해야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조선일보가 바라보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의 이해관계만을 중심으로 정부가 노동시장을 관리하고 통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해법은 정규직과 일자리와 임금을 줄여서 기간제, 파견 같은 비정규직의 수와 임금을 늘리는 게 아니다. 구의역에서 김군이 숨진 이유 중 하나는 접수 한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기업이 노동자에게 요구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성과, 비용절감, 유연화, 효율성 따위의 가치를 들먹으며 노동과 안전을 팔아먹은 탓이다. 조선일보 식대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래서 노동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조선일보는 차라리 수년 전 주구장창 외친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를 다시 말하는 게 낫다. 조선일보의 임금 지급 기준이 클릭수가 아니고 조선일보 편집국을 기간제와 파견 노동자로 채울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제발 비정규직 문제 하나만큼은 해법을 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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