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가 수역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 어학 사전에서는 '섬'을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은 '섬'도 육지의 한 종류라는 말이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부도덕한 사건으로 인해, '섬'이란 단어 자체가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모 평론가가 그 섬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섬에 사는 주민 일반을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조차 '타박'의 대상이 될 정도이다. 도시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다수의 사건을 귓등으로 넘기다, 대중의 시선에 걸려든 이 사건은 물론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한 몫을 한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대중의 분노에 걸려든 '섬'이라는 공간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의 규정은 조선시대 공도 정책(왜구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섬의 주민들을 이주시켜 섬을 비워버리는 정책)이래, 육지와는 분리된 '섬'의 또 다른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섬은 줄잡아 3000여 개가 넘고, 그 섬들은 우리가 최근 '섬'으로 떠올리는 그 사건이 아닌 저마다의 역사와 운명을 지니고 한반도의 부속 도서로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 한 섬, 소거문도의 일상을 <SBS 스페셜>이 담았다.

여객선도 다니지 않는 작은 섬, 소거문도

SBS 스페셜 ‘빈 집 - 어머니의 시간’

우리에게 '거문도'는 역사 시간에 배운, 구한말 영국 해군에 의해 잠시 '해밀턴' 섬이 되었던 그 섬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여수 삼산면에는 두 개의 거문도가 있다. 역사책에 나온 그 섬, 거문도와 역시나 톱날을 닮아 톱 거(鋸) 자를 써서 거문도가 된 또 하나의 섬이 있다. 두 개의 거문도, 결국 거문도보다 작은 또 하나의 거문도는 오늘날 소거문도가 되었다(심지어 한자 지명도 거문도를 따라 巨文島가 되었다). 처지도 다르다. 비록 배가 가는 가장 남쪽의 섬이지만 여수 삼산면 행정 중심지 거문도에는 하루 두 번 여객선이 다니지만, 정기 여객선이 닿지 않은 소거문도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낙도 보조선'을 갈아타야 한다. 제대로 간다 해도 여수에서 줄잡아 두어 시간이다.

그래도 한때는 분교가 있던 섬. 그러나 이제는 빈집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 노인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는 소거문도 빈집 한 곳에 젊은 사내 셋이 나타났다. 그들은 노인들의 일상을 담기 시작한다. 그간 <여배우와 노은면 여자> 등을 통해 우리의 농촌을 서정적으로 담아왔던 <SBS 스페셜>의 꾸준한 시리즈의 또 다른 버전이다. 이전의 시리즈에서 여배우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소거문도 빈집에 세 청년들이 들이닥쳤다지만, 다큐는 그들의 동정 대신 소거문도에서 살아가는 촌부의 일상에 좀 더 집중한다.

허리가 굽을 노동으로 자식을 키워낸 부모들만이 남은 섬

SBS 스페셜 ‘빈 집 - 어머니의 시간’

그래서 등장한 첫 번째 어머니는 파란지붕 집의 김양자씨다. 소거문도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소거문도에서 살아온 어머니. 뱃사람이었던 남편이 잘나가던 한때는 색시를 데리고 와 몇 달
씩 살기도 한 세월을 자식들만 바라보며 견뎌냈고, 이제는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건사하며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이 그녀의 몫이다. 빈집에 나타난 젊은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커피를 건네는 쾌활한 성격에, 90도로 구부러진 허리로 여전히 바지런히 움직이는 그녀지만, 서너 달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아들 내외가 가는 날이면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영락없는 어머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은 김양자씨처럼 한평생 일만 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사이 없어 역시나 90도로 구부러진 김후자씨와 그녀의 남편 정강율씨다. 새벽부터 밤까지 부부는 이제는 없는 소대신, 남편이 쟁기를 끌고 아내가 밀며 밭을 가는 등 쉴 사이 없이 움직인다.

소거문도의 노인들이 쉴 수 있는 날은 비오는 날 뿐이다. 비라도 오면 나가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와서 모처럼 방에 자리를 깔고 누운 노인은 파킨슨병으로 저린 다리로 인해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러나 날이 개면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일로 몸을 움직인다. 새벽부터 열심히 움직이면 자식에게 보낼 것이 생기고, 밤까지 쉬지 않으면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는 노년의 일상이다.

SBS 스페셜 ‘빈 집 - 어머니의 시간’

섬이라 척박한 땅에 고추니 파니 심지어 그게 아니라면 고사리라도 캐내어야 하는, 쉴 틈 없이 일이 일을 만드는 일상은 구부러진 허리만큼 안쓰럽지만, 그래도 자식을 떠나보낸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는 그 시간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분교가 있던 시절 초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뭍으로 떠났다. 자식들을 품에 끼고 키울 수 없었던 소거문도의 어미들은 대신 죽어라 일을 하는 그 시간으로 자식들을 키웠다. 이제는 소나무 껍질처럼 두꺼워진 노인의 손톱이며 구부러진 허리, 그리고 종합병원이 되어버린 몸이 그 시간을 기록한다.

그나마도 이젠 빈집이 드문드문한 섬. 그 빈집마저도 사람을 기다리다 결국 밭으로 돌아가는 섬의 일상은 가진 것이 없어 몸으로 자식을 일궈낸 우리네 가난한 어미, 아비들의 역사이다. 아픈 아비가 안쓰러워 육지로 아들은 함께 가자고 하지만, 몸도 가누기 힘든 아비는 고개를 젓는다. 떠나는 아들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지만 어머니는 조금 더 버텨 보겠단다. 해준 것이 없어,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택배'로라도 자식에게 무언가를 보내야만 하는 미안한 모정 혹은 부정은 굳이 '섬'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아니 '섬'이기에 더 척박했던 여전히 버거운 우리네 부모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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