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월 3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나섰다. 김영선 한나라당 소속 정무위 위원장과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정희 의원을 강제로 끌어낸 뒤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한나라당은 15분 만에 출자총액제한 폐지 법안과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된 정책금융공사법 등 3개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격이다. 이 시간에 토론이 가능했을리는 만무하다.

▲ 3월 4일 경향신문 1면 정무위 회의 사진기사

이정희 의원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원안 통과시킨다고 했어요? 수정하기로 했잖아요”라고 항변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둘러싼 의장석에 앉아 김영선 정무위원장은 “찬성 손들어보십시오”라고 물었고, 주변을 둘러선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요’, ‘찬성’을 외쳤으며 이로써 정무위원장은 방망이를 내려쳤다. 이 난리통에서 ‘반대’, ‘날치기’, ‘원천무효’라는 외침은 그저 ‘다수당의 폭력에 밀려 끌려나간 소수 의견’일 뿐이었다.

최근 조선·중앙·동아일보에서 ‘국회폭력’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조중동이 관심있는 ‘국회 폭력’의 대상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들어낸 다수 한나라당의 폭력이 아니다.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민가협 할머니와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민주당 당직자 등이 조중동 관심의 대상이다. ‘깡패 국회’ 운운하며 피를 본 한나라당 의원들에 집중된 것이다.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조중동, 피를 봐야 폭력?

조중동의 열심보도 탓인지 지난 2일 김경한 법무부장관도 이를 거들고 나섰다. 토론이 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에 폭력사태가 발생한 것인데, 이러한 국회를 검찰이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국회에서의 폭력, 특히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국회의원을 폭행하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또한 “국회 폭력 사태에 대한 법적 조치를 최대한 자제해왔으나 이제 엄정한 대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라고도 말했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은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의 폭력사건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서 직접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나온 이야기다.

▲ 3월 4일 조선일보 5면 기사

하지만 조중동은 어제 정무위에서 벌어진 ‘다수당의 폭력’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피를 보지 않아서일까. 날치기 상정 논란과 몸싸움이 난무한 정무위원회에 대해 조선일보는 “3일 오전 11시 40분 정무위원회.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의 여야 합의가 쉽지 않자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위원장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이 의원 뒤로 돌아온 김 위원장은 바로 의사봉을 차지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주변을 감쌌다. ‘땅!땅!땅!’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라며 마치 활극의 한 장면을 중계하듯, 흥밋거리로 전했다.

중앙일보는 오히려 이정희 의원 때문에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투다. 중앙일보는 또한 박선숙 민주당 의원의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는 8%로 하기로 했었는데도 한나라당은 결국 자신들의 안으로 통과시켰다”며 “이렇게 날치기할 거면 국회나 야당이 왜 필요하냐”고 질타했다고 전했지만 바로 이어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의 “시급한 경제법안을 무조건 표류시킬 수 없어 깊은 고민 끝에 한 표결이었다”고 대변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시급한 경제법안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조중동의 폭력 보도에 가려진 민주주의와 민생

이에 반해 경향신문은 “문제는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이라면서, 왜 몸싸움이 일어났는지를 보도했다. 경향은 4일치 보도에서 “여야는 전날부터 여·야·정 협의체와 간사회의를 통해 마라톤 회의를 계속 했지만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면서 “한나라당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10%까지 허용하고자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8%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며 “산업자본의 사모펀드투자회사(PEF) 출자한도를 10%에서 20%로 높이는 내용도 문제가 됐다”고 정무위 난투극의 내용을 전했다.

▲ 3월 4일 경향신문 6면 기사

또 이날 경향은 “야당은 여야 원내대표 간의 ‘경제 관련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야·정 협의를 거처 수정할 것은 수정해 처리한다’는 합의를 위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면서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공정거래법과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은 야당 의원들의 반대와 항의가 지속됐지만 본회의마저 통과했다. 본회의 통과 시에도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에 발언권을 주지 않는 등의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어제(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신속처리된 출총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관련 3가지에 대해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는 “오늘은 대한민국 경제의 사망선고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작금의 경제위기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특히 금융규제완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금융과 국민경제 건전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허물어 한국 재벌의 족벌 지배체제를 합법적으로 완성하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까지 재벌에게 넘긴다면, 더 이상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암담한 대한민국 경제를 걱정했다.

요즘 한나라당이 힘주어 들먹이는 민주주의의 운영원리 ‘다수결’은,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선행되어야 의미가 있다. 토론과 협상의 장인 국회가 논의과정과 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힘으로 밀어부치고 소수 의견을 끌어낸 뒤 표결하는, 이러한 다수결은 그저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는 다수결의 횡포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 어제(3일) 정무위원회의 장면이다.

다수당에 의한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다수결원칙을 무시한 ‘다수결’은 폭력이 아니며, 폭력의 발생원인과 문제의 본질은 가린 채 단순히 ‘여당’에게 가해진 ‘폭력’만이 폭력이라는 조중동, 이러한 보도 역시 어찌 보면 국민에 대한 폭력이지는 않을까?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잣대로 ‘국회 폭력’을 재단하고 확대하며 침묵하는 조중동의 국회 폭력 보도는, 실로 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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