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상담하면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의 불합리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정말 그런줄만 알았는데 얼마전 전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 달에 300시간 일하고 월급으로 십여만원 받는 일은 90년대나 있을법한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름도 복잡한 해외투자기업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후반, 대략 1987년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 소득향상으로 소위 3D(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업종에 인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국인 노동자만으로 공장을 돌릴 수 없게 되자 당시 관광비자로 들어온 동남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을 비합법적으로 고용했다.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이후 1991년 해외에 직접투자를 하거나 기술 및 산업설비를 수출하는 산업체가 현지연수생을 한국에 데리고 들어와 기술연수를 목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 해외투자기업산업연수생제도(이하 해투연수생)가 도입된다. 1994년 중소영세업체의 요구에 따라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된다. 1990년대 당시 십 년 동안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의 선진 기술 연수 명목으로 약 16만명의 산업연수생 이주노동자를 받아서 중소영세공장에서 여권압류, 저임금, 노동권, 인권 사각지대에서 일을 시켰다. 산업연수생제도 보완의 의미로 사업주 신청에 따라 합법적 체류 자격을 주면서 한국에서 일을 하도록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되었다. 현재 16개 국가에서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오고 있다. 2007년부터 산업연수생제가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면서 산업연수생제도는 폐지되었다.

위 내용이 대려적인 한국의 이주노동자 제도의 변천사이다. 현대판 노예허가제라고 불렸던 연수생제도는 이제 역사의 그늘 뒤로 사라진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중소기업의 산업연수생제도가 사라졌을 뿐 해투연수생제도는 여전히 남아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2016년 통계월보를 확인하면 D-3(해투연수생)비자로 국내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는 총 3346명으로 나와 있다. 전체 이주노동자 숫자를 대략 80만여 명으로 잡았을 때 적은 숫자로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해투연수생들의 노동실태가 극히 열악하다는 점에 있다. 최근 경남지역 이주단체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던 인도출신의 해투연수생 스리칸트씨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가 얼마나 반노동적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인도 출신의 이주노동자 스리칸트씨는 한국에 입국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계약에 따라 인도 현지 법인에서 5개월가량 근무를 마치고 2015년 3월 1일 한국에 들어왔다. 스리칸트씨는 주야간 2교대로 일일 12시간가량을 근무했다. 월 2회 휴무일을 제외하고 월평균 300시간 이상 노동력을 제공했다. 인도 현지에서는 1인 1대의 기계조작을 했으나 한국에 와서는 1인 3대의 기계조작으로 인해 사고위험이나 노동 강도가 훨씬 높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고강도 장시간 일을 하고 받은 임금이 매달 15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리칸트씨가 국내기업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해외현지법인 소속으로 국내회사에 기술연수를 목적으로 들어와 교육을 받고 있다는 근거로 현지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미 지난 2006년 대법원 판결에서 산업연수생일지라도 근로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으며 회사의 지시 감독 하에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자에 해당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에서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스리칸트씨는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고무사출기 작업을 하면서 왼손으로 게이트 제거를 하던 중 금형이 닫히면서 화상을 입었다. 근력을 거의 쓸 수 없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산재처리가 되어야 하는 사고였지만 양산근로복지공단에서는 최초요양신청에 대해 불승인을 결정했다. 마찬가지로 스리칸트씨가 국내사업장 소속이 아닌 인도법인 소속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측에서는 스리칸트씨를 본국 강제 귀국을 결정했고 이에 불복한 스리칸트씨가 권리구제를 위해 김해이주민인권센터를 방문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난한 투쟁 끝에 지난 4월에 산업재해요양급여 신청 승인결정 통지서와 체불임금, 휴업급여 통지서등을 받아냈지만 스리칸트씨가 지난 1년간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과연 금전상으로 보상이 가능한 것일까? 제2, 제3의 스리칸트씨가 여전히 해투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노예노동을 하고 있기에 이 투쟁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해투연수생들은 입국과 동시에 여권, 외국인등록증, 은행통장, 도장 등의 개인 소지품들을 이탈방지를 이유로 회사가 압수해 보관하는 불법행위(여권법, 출입국관리법 위반)가 자행되고 있다. 그나마 있던 해투연수생제도 보호 지침 등이 이미 폐기됐고, 감시기관인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업무태만과 고용노동부는 아예 산업연수생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어서 실질적인 관리감독과 권리구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상당히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해투연수생들의 미등록체류율은 2014년 12월 기준으로 59.4%에 달하고 있어 총체적으로 실패한 제도이지만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기업들의 인력충원의 수단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법과 제도,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단순하게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상식적으로 한국의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생활안정과 질적 향상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한 최저임금의 10%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도 꾹 참으며 일해야 하는 수천여명의 해투연수생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경제의 숨겨진 그늘이다. 전체 이주운동이 해투연수생제도 폐지를 포함해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보장을 위해 정부와 자본가에게 통쾌한 반격을 날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추천노래는 꽃다지의 2001년 앨범에 실려있는 “반격”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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