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공영방송 KBS가 공사창립 36주년을 맞았다. 이날 KBS는 메인 뉴스인 <뉴스9>에서 리포트 “과거와 미래”를 통해 KBS의 지난 발자취를 짚어봄과 동시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리포트에는 KBS의 지난 행적들이 가득 담겨있을 뿐, 2009년 현 시점에서 KBS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제대로 직면하지 않았다.

▲ 3월3일 KBS <뉴스9> "과거와 미래" 캡처 화면.
“온 국민을 TV 앞으로 모았던 감동의 드라마에서부터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찾기까지. 올림픽과 월드컵 등 축제 한 가운데 있기도 했고, 재해가 닥쳤을 땐 재난방송 주관사의 역할을, 해빙의 시대엔 남북교류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지난 36년 동안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담당해 왔고, 한국 사회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모두 KBS가 흘러보낸 과거의 ‘업적’일 뿐이다.

“그러나 KBS는 과거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오명과 함께 사회의 다양한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는 KBS가 안고 가야 할 과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KBS가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오명을 받은 것이 비단 과거의 ‘지나간 일’일까. 분명한 점은 2009년 현재에도 KBS가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 각층으로부터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해 사회의 다양한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리포트에는 등장하지 않은 2008년 여름 이후의 KBS는 어떠했는가. 내부 종사자들은 기수별 직종별로 줄성명을 내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면서 ‘관제사장 퇴진’, ‘공영방송 사수’, ‘사내 민주주의’등의 구호를 외치고 농성을 벌여왔고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새 사장 취임 반대집회의 열기를 증명하듯,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비판적 시각의 시사투나잇 등 시사 프로그램은 예고된 수순처럼 폐지됐고, 그나마 있던 시사 프로그램은 연성화 절차를 밟았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비판없이 그대로 보도했고, 대통령의 일상 또한 자연스럽게 전했다. 2008년 마지막 날,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재야의 종소리’ 연출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동서리서치와 함께 조사한 ‘뉴스시청행태조사’에서 KBS는 공정성 분야가 MBC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오래간 공정성, 신뢰도 1위를 자랑하던 KBS는 시민들의 질타 대상이 되었고, 지난해 촛불을 들고 KBS를 지켰던 시민들도 하나 둘씩 떠나갔다. “이제는 아예 KBS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날 해당 리포트는 “시청자들의 우려는 KBS가 안고 가야 할 과제”라면서, 이어 고현욱 KBS 시청자위원장의 발언을 빌어 “다양한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들의 요구를 폭넓게 반영해 BBC나 NHK를 능가하는 공영방송의 모범이 되기를 시청자들은 기대한다”고 전했다.

▲ 3월3일 KBS <뉴스9> "과거와 미래" 캡처 화면.
그러나 ‘KBS가 과연 다양한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등을 비롯해 공영방송인 KBS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KBS 보도에 대해 “최소한의 기능인 비판과 견제도 없다”는 등 내부에 대한 성토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KBS의 대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KBS를 향한 시민사회의 대실망은 지난달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1년, ‘공영방송’ KBS 진단’ 토론회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현재 KBS는 ‘방송3사’에 못 끼는 정도가 아니라 수십 개 유료 방송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말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불감증에 빠졌다고 생각된다”고 맹비난했다.

또 김승수 전북대 교수도 “KBS는 사회에 대해 거의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사회적 쟁점 제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힘들여 광고비, 수신료 내준 보답을 해야 하는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사회적 쟁점 정도는 마련해 줘야 하는데, 참으로 심각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BS는 이제 경영난 극복과 수신료 현실화, 방송통신 융합시대 미디어를 둘러싼 입법 논란 등 산적한 난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든 파고를 넘어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KBS의 주인인 시청자와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비판이 필요합니다.”

지난 2일 KBS 본관 공개홀에서 열린 ‘한국방송 공사 창립 36주년 기념식’에서 이병순 KBS 사장은 “올해 △공정방송 △수지균형방송 △국민방송이라는 KBS의 3가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목소리 높은 소수는 물론, 말 없는 다수의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시청자 주권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28년째 동결된 수신료를 현실화하는 것이 시급한 지상과제”라며 “공정 공익이라는 공영방송의 책임을 다해 국민들에게 진정한 감동과 신뢰를 주는 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의 제작을 통해 국민과 소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가 28년째 지상과제라는 수신료를 현실화하려면, 무엇보다 KBS의 ‘현재’를 가감없이 보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경영난과 수신료, 그리고 방송통신 융합시대 미디어를 둘러싼 입법 논란에서 KBS가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으로 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청자들의 비판에 ‘변화’로 답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이에 귀를 닫고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공영방송의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