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공황의 조짐을 보이며 자국산업, 자국민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주요 국가의 경기부양책이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배척운동이 격화되고 있다. 인류사상 최대의 인력이동을 몰고 왔던 세계화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 2월 9일자 한국경제 3면 기사.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국경 없는 세계경제’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의 상품-용역-자본-인력의 이동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군사력-외교력을 동원해 철폐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인류의 이동을 가로막던 철의 장벽, 죽의 장벽이 무너졌다. 국경이 열리자 이민국가, 민족국가를 가리지 않고 대규모의 인력이동이 일어났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면 사람은 돈을 찾아 움직인다. 첫째 목적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는 물론이고 세계인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꿈의 땅이다. 불법체류자가 1,200만∼2,00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멕시코인의 불법입국을 막기 위해 국경지대에 담을 쌓았다. 하지만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잠입하려고 세계에서 밀입국자들이 몰려든다. 중남미, 아시아, 동유럽 등지에서 말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쿠바에서 많이 숨어든다.

백호주의로 이름났던 호주는 나라의 얼굴색이 달라질 만큼 아시아인의 유입이 늘어났다. 캐나다도 호주와 비슷하나 특히 화교의 유입이 크다. 서유럽은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에서 몰려든다. 종교적으로는 모슬렘의 입국이 급증해 정치적 발언권이 높아지고 있다. 그 반동으로 백인 사이에서는 모슬렘에 대한 증오감이 커지고 있다.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라는 신조어가 그것을 말한다.

아프리카에서도 인력이동이 활발하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유럽으로 빠져나가고 사하라 남부 에서는 인접국이나 북아프리카로 움직인다. 리비아에는 밀입국자가 200만명에 이르자 추방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앙골라에서는 밀입국 콩고인을 추방하지만 유입이 그치지 않는다. 남아연방은 인종차별(Apartheid) 철폐 이후 백인과 기술인력의 급속한 유출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크다. 그 자리를 짐바브웨 등지의 불법입국자가 채우고 있다. 그 숫자가 500만명에 이르자 추방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칠레도 밀입국이 그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난이 인력이동을 촉진한다. 매달 10만명의 이라크인이 시리아와 요르단의 국경을 넘어 간다. 시리아는 피난민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자 취업을 금지시키고 있다. 터키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경제난민이 넘쳐나는데 중앙아시아에서도 인력유입이 그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피난민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란과 파키스탄은 추방에 나섰다. 콜롬비아의 오랜 내전은 수백만명을 베네수엘라로 내쫓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합법이민자가 280만명인데 불법이민자가 400만명이나 된다. 러시아는 구소련 공화국 출신에 대해 이동을 제한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유가상승으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몰도바, 키르기즈스탄 등지에서 해마다 수백만명이 유입됐다. 극동지역은 1,000만명 가까운 중국인이 살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유가가 폭락해 실업자가 늘자 자경단까지 조직한 외국인 배척운동이 정부의 묵인하에 폭력화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피살자만도 96명에 이른다. 외국인 대탈출이 예고된다.

잘 사는 나라를 찾아 멀리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 탓에 이웃 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면 숨어든다. 미국만이 이웃나라와 장벽을 쌓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최대의 인력유출국이지만 북한 탈북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보안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인도인이 세계를 유랑하지만 그 인도도 장장 4,000㎞의 국경을 장벽으로 막고 있다. 방글라데시인의 유입을 봉쇄하려는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멘과의 국경지대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또 이라크와의 국경지대 900㎞ 장벽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이 정치불안을 야기시키자 정치권력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외국인을 그 대상으로 삼아 추방운동에 나설 것이다. 반이민-반이주의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바람이 갈수록 세차진다.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에게는 국경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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