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일자리 창출 뒤에선 해고자 양산 현실

‘임금동결·고용안정 등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다’고들 한다. 노사민정 대타협의 골자가 그러하고, 쟙 쉐어링이니 대졸초임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같은 것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마치 이것이 위기 극복을 위한 숭고한 자기희생처럼 포장돼 유통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에서 희망을 본다며 감격스러워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생이나 화합, 고통분담 같은 말들이 사기라는 것은 당장 벌어지는 현실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 공기관인 한국마사회 광주지점(화상경마장)에서 청소 용역일을 하던 비정규직 11명이 집단해고됐다. 이미 지난 2006년 해고 경험이 있는 이들로 복직된 지 2년도 채 안돼 또 다시 해고를 당했다.ⓒ광주드림

한국마사회 비정규직 집단 해고

상식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신경써야 할 계층은 당장 생계에 타격을 받는 이들이 돼야 맞지 않을까? 그러나 오히려 공기관에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들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한국마사회 광주지점(화상경마장)에서 청소 용역일을 하던 비정규직 11명이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집단해고됐다. 11명은 월 70여 만 원을 받으며 일했던 50대 여성 노동자들. 더구나 이들은 이미 지난 2006년 해고 경험이 있는 이들로 복직된 지 2년도 채 안돼 또 다시 해고를 당했다. 복직까지의 과정도 눈물겨웠다. 1년 동안을 싸웠다. 항상 그렇듯 원청인 마사회는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고 용역업체는 ‘해고’가 아닌 ‘계약만료’라고 했다.

여전히 마찬가지다. 다시 쫓겨난 노동자들을 ‘책임’지는 곳은 없다. 마사회는 책임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용역업체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뿐이다. 눈 앞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해고한 사람은 없다.

해고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올해 나이 55세인 해고자 박씨는 가장이다. 식구 모두 그의 수입에 기대어 살고 있다. 남편은 뇌출혈로 거동을 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은 청년 실업의 희생자다. 해고자 김씨도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요즘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역시 김씨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형편이다.

해고된 대부분이 박씨나 이씨같은 사람들이다. 저임금에 고된 노동이지만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고용은 생존과 연결되고 해고는 곧 생존의 위기와 연결되는 상황인 것이다. 고된 노동끝에 쥔 70여만원의 돈도 그러했지만 하루 아침에 일회용품 처럼 폐기처분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해고자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일했던 곳은 영세한 중소업체도 아니고 몇 조의 매출을 올리는 공기관인데 말이다.

▲ 지난달 28일 해고통보를 받은 마사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스크린 경마장 내를 청소하고 있다. 이들은 사측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광주드림
총매출액 7조 4219억, 고통은 분담되지 않았다

한국마사회는 얼마전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조직축소, 예산절감을 통해 마련한 자원으로 청년인턴 200명과 단시간 노동자 1천 명을 추가로 고용한다고 밝했다. 표면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숨겨져 있다. 이들이 해고 돼도 해고한 사람은 없다. 새로 고용된 청년인턴 200명과 단시간 노동자 1천명의 일자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마사회는 어떤 곳인가. 지난해 한국마사회의 총 매출액은 7조 4219억원. 전년도보다 13.5% 증가했다. 경제위기에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사행산업이다. 현실이 답답한, 그래서 인생 역전의 방법을 도박에서 밖에 찾을 수 없는 지역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지역의 반대여론에도 불구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인한 지역 경제 발전 효과가 클 것이라며 들어선 화상경마장. 노동자이면서 지역주민이기도 해고자들은 그 곳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불안불안하게 일하다 결국 쫓겨났다.

소위 공기관이라는 곳, 그리고 경영이 어려운 것도 아닌 곳에서도 고통은 분담되지 않았고 상생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뻔한 것 아닌가. 이윤을 최대 목적으로 삼는 사기업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자제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수준의 타협이란 것이 뻔하지 않은가.

차라리 용역을 없애라

상생에 관심이 있다면 공공부문부터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없애야 할 것이다. 반복적인 해고와 저임금 구조를 양산하는 용역 계약을 없앤다면, 그 정도의 제스쳐를 보여 준다면 정부가 말하는 ‘상생’에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믿겠다.

원청사로서도 이익 아닌가. 노무비·관리비·업체의 이익 등의 비용이 중간의 용역 업체로 들어가면서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쥐어지는 것이 용역계약의 문제 아닌가. 원청사가 직접 고용할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은 올라간다. 반복적으로 해고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공공기관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며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손 쉽게 회피할 수 있었던 ‘편리함’은 포기해라. 노동자들의 마지막 권리인 ‘파업’도 하지말라고 하면서, 밥줄인 임금을 삭감하자고 하면서, 마지막 안전판인 최저임금도 깎자고 하면서 정작 정부기관 내에서 파업도 안했고, 더 이상 깎일 임금도 없는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는데 일자리 까지 잃는 상황이 벌어진다면...어떤 상생의 제스쳐도 모두 ‘사기’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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