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법안은, 3월초 문방위에 자문기구인 여야동수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후,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3월2일 여야 3개 교섭대표 합의문 중)

3월 1일부터 2일 오후까지 시시각각 변화무쌍했던 여의도의 1박2일이 끝났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사회적 합의기구’ 요구가 ‘사회적 논의기구’로 변했다.

▲ 2일 오후 미디어 관련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박희태 - 정세균 대표가 극적으로 합의한 가운데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난 3당 원내대표들이 쟁점법안 처리시기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여의도통신
‘합의’에서 ‘논의’로의 용어 변화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쪽은 한나라당으로 보인다. 박희태 대표는 3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는 국회 문방위 산하에 있는 자문기관일 뿐”이라거나 “논의기구에서 어떤 결론을 내든 미디어 법안 처리에 구속력이 없다”고 매번 ‘논의 기구’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아무래도 “입법 활동을 외부인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에 맡겨 놓는다면 국회의원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발언이 내심 신경쓰이는 것일까.

애초 지난달 미디어공공성포럼,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 모임,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51개 단체들이 요구하고 나선 ‘사회적 합의기구’는 현재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논의기구’의 모습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들의 높은 반대여론(지난 1월23일 SBS-TNS 여론 조사, 방송법 개정안 반대 69.2%, 찬성 23.1%) 등을 고려할 때 이미 한국사회가 경험한 ‘사회적 합의기구’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연말 긴급 등장한 여당의 미디어법을 합의절차 없이 처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절차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예로 든 ‘미디어관련법의 사회적 합의기구’의 실례는 바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방송개혁위원회’이다. 김대중 정부는 방송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해 1998년 12월부터 1년간 새 방송법 제정을 위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위원장 고 강원용 목사)’를 운영했고, 이를 반영해 국회는 여야 합의로 한국방송공사법 등을 포괄하는 통합 방송법안을 마련했다.

방송개혁위원회가 설치되기까지는 방송법안을 둘러싼 여야와 시민사회단체들의 기나긴 논쟁이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쳐 언론개혁의 열망이 높은 가운데, 통합 방송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5년 7월, 김영삼 정부의 ‘선진방송 5개년 계획 발표’ 때다. 이에 95년 11월 14대 국회에는 정부안과 국민회의, 자민련 등 야당의 방송법안이 제출돼 12월 상정됐으나 논의가 길어지면서 이듬해인 96년 5월29일 14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다.

제15대 국회가 시작되고 11월 정부의 방송법안은 다시 국회에 제출돼 논쟁이 오간 끝에 97년 7월 상정됐으나 방송개혁을 둘러싼 여야간 논쟁만 팽팽하다 대선 국면을 맞는다. 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나라당은 그해 11월 방송법안을 발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방송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12월 3일 방송개혁위원회를 전격 구성하게 된 것이다.

1999년 12월 3일 출범한 ‘방송개혁위원회(이하 방개위)’는 시민단체, 국회(한나라당 불참), 노동조합, 지상파 및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등 방송 경영진, 언론학계 등 각계 대표가 참여해 15인의 개혁위원회와 30인의 실행위원회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의 범사회적인 자문기구’였다. 방개위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통합방송법과 기구 개편 논의’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1999년 1월21일 1차 보고서를 발표하고 공청회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후, 다시 2월11일 2차 보고서 발표와 2차 공청회 등을 거쳐 2월27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다.

1년간 활동한 방개위는 각 이해 당사자간의 수많은 논쟁 속에서 MBC 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 등 갈등 과정을 거쳤으나, 결국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유린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세우기’로 의견을 모아냈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합의기구’ 방개위는 당시 방송법· 종합유선방송법·중계유선관리법·한국방송공사법 등을 모아 재편한 ‘통합 방송법’을 제출했고 이는 99년 7월 여당안으로 국회에 상정됐다. 이 통합 방송법안은 국회의 토론을 통해 99년 12월28일 여야 합의로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다. 이렇게 제정된 통합 방송법에 의해 정부로부터 독립된 순수 민간합의제 기구인 방송위원회가 탄생한 것이다.

방송개혁위원회와 같이 미디어법안 제정 등과 관련해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치는 절차는 외국의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영국은 방송분야의 정책 현안이 발생하면 조사연구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활동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회가 입법 활동을 하게 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정부였던 영국의 대처정부는 BBC 수신료 재원 폐지 등을 위해 1985년 ‘피콕 위원회’를 구성해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이듬해 피콕위원회가 ‘수신료로 운영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자 대처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 미디어공공성포럼,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 모임,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51개 단체가 1월 1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최근 국내 언론에서 소개되며 MBC와 중앙일보 간 ‘신방겸영 허용 해석 논쟁’이 벌어졌던 프랑스의 ‘미뇽 보고서’도 사회적 합의기구의 또다른 사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영방송 광고 금지 및 신문방송 겸영 확대 등의 정부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해 10월2일 3개월 간 언론계 인사들과의 대 토론회를 전격 제안한다.

이에 각계 인사 150명으로 구성된 ‘언론계 총회(의장 에마뉴엘 미뇽)’라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토론을 벌였고, 이 논의 내용은 지난 1월8일 문화부 장관에게 보고서(총회 의장 이름을 딴 ‘미뇽 보고서’) 형태로 제출됐다. 100여 차례의 토론과 논의 과정 전부 공개 등을 거쳐 작성된 ‘미뇽 보고서’는 사르코지 정부 및 여당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을 담았다. 이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뇽 보고서의 ‘신방 겸영 확대 반대’ 의견을 받아들였다.

여러 사례를 미루어볼 때, 사회적 논의기구이든 합의기구이든 간에, 용어와 상관없이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 전반의 여론을 듣고 반영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지’의 여부가 사회갈등을 통합으로 가져가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적인 절차인 ‘사회적 논의기구’ 합의에 대해 ‘자문기관일 뿐’이라고 미리부터 못박고 나선 한나라당의 입장은 ‘여당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회의론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할 뿐이다.

3일 오후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은 이번 합의문의 ‘논의기구’ 에 대해 성명을 내고 “사실상 논의 따로 표결 따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 논의기구’는 유명무실한 들러리용 기구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은 100일 동안 시간만 질질 끌다가 논의결과와 무관하게 언론악법을 원안 그대로 날치기할 게 뻔하다”면서 “언론관련법은 정치세력간의 ‘표결처리’가 아니라 사회적 기구를 통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대해 ‘참고만 하겠다’면서 ‘사회적 논의기구’의 위상을 대폭 떨어뜨리는 분위기를 계속 조성해간다면, 미디어법을 둘러싼 사회 전반의 충돌과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 총파업 국면 등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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