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MBC를 향해 ‘위선’ 이라고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귀족 노조인 MBC노조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방송 독점체제가 해체돼 밥그릇이 작아질까 봐 언론 자유 운운하는 방패로 얼굴을 가리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 위선이란다.

조선일보는 오늘(3일)치 사설 “MBC 귀족 노조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라고 세계에 외치다”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의 ‘글로벌 파업’ 동영상에 대해 “지금 MBC의 정신 연령 수준이 그렇다”는 등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달 27일 MBC 노조원인 방현주·최현정·하지은 아나운서, 권희진 기자, 이동희 PD가 중국어, 영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통해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리는 동영상을 제작한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MBC노조 공식카페 뿐만 아니라 세계적 동영상 전문사이트인 유튜브에도 올라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MBC에 대한 조선일보의 일방적이고도 노골적인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언론관련법 저지를 위한 1차 총파업 내내 ‘밥그릇 싸움’ ‘연봉 1억’이라는 프레임을 걸고 MBC에 비난을 퍼부은 바 있으며, 이번 총파업 기간에는 총파업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 ‘무보도 투쟁’ 소신을 나름 지키기도 했다.

▲ 조선일보 3월3일치 27면(오피니언).
“MBC노조는 세계인을 상대로 이 동영상을 내보내면서 이게 자기네 조국 대한민국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 남이 하는 걸 보면 나쁜 일인 줄 알겠는데 제가 할 때는 나쁜 일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MBC의 정신 연령 수준이 그렇다.”

조선일보는 MBC노조의 글로벌 투쟁 동영상을 ‘대한민국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세계 언론인들을 상대로, 그것도 동영상이 아닌 연설을 통해 직접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린 지난 2002년 김대중 당시 조선일보 편집인의 행태는 뭐라 해석할 것인가?

김 편집인은 지난 2002년 5월11일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 참석해 “조중동이 좌파적 신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 역사상 가장 가혹한 언론탄압을 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며 “언론사주와 광고주들에게서 받는 압박은 정부 압력에 비하면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발언 등을 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1년 전인 국세청이 조중동을 비롯한 2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탈루세금을 추징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2001년 2월8일 이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해 6월20일 “총 탈루소득 1조3594억원과 탈루법인세 5056억원을 적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김 편집인의 발언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가 “김대중씨는 국제회의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왜곡과 망언으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켰고, 국내 언론인들을 국제적으로 망신시켰다”며 “한국 전체 언론 종사자 앞에 공개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지면을 통해 수차례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이라고 보도했으며, 언론사 사주의 입장을 옹호해 세무조사를 반대한 국제언론인협회(IPI), 국제신문협회(WAN)의 주장을 크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국제언론인협회가 세무조사 이후 한국 정부에 보낸 6차례의 서한을 보도했다. 그러나 국제기자연맹(IFJ)의 “세무조사가 독립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거부한다”는 입장은 보도하지 않았다.

MBC의 ‘글로벌 파업’ 동영상이 대한민국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면, 자사의 입장에 맞는 것만을 의도적으로 골라 보도하고 세계 언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중동이 좌파적 신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등의 왜곡 발언을 한 조선일보의 지난 행태는 대한민국의 얼굴에 이미 여러 차례 침을 뱉은 셈이다.

▲ 2월 27일‘글로벌 파업’동영상 제작에 참여한 MBC 노조원들이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송선영
“동영상에 등장하는 5명 중 3명이 젊은 여자 아나운서라는 점은 MBC노조가 성 역할에 대한 의식 수준이 50·60년대 식이라는 걸 드러낸다. 물론 노조측은 이들이 노조원으로서 출연을 자원했다고 말하겠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젊고 예쁜 여성들을 선전대로 앞세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조선일보는 MBC노조의 성 역할에 대한 의식 수준을 공격하려다 정작 자신의 의식 수준이 50·60년대 식이라는 것이 드러내고 말았다. 조선일보는 5명 중 3명, 그것도 ‘젊고 예쁜 여성’인 아나운서를 노조가 선전대로 앞세웠다는 것인데, 여성 아나운서에게 ‘젊고 예쁘다’는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지극히 남성주의적이다.

MBC노조 관계자는 동영상을 제작할 당시, 이들이 여성 아나운서이기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해당자들이 각 언어를 네이티브로 말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제작에 참여시켰다고 밝혔다. 동영상에 참여한 한 관계자도 “노조가 파업 홍보 동영상에 대한 부탁을 했고, 대학에서 해당 언어를 전공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여자 아나운서가 파업 홍보 동영상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성 역할에 대한 의식 수준을 운운하고, 이들에게 ‘젊고 예쁘다’는 성희롱 수준에 가까운 해석을 하고, 이들을 선전대로 앞세웠다는 쌍팔년도스러운 주장은 여성 아나운서들의 자기 행동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조에 이끌려 다녔다는 식의 노골적인 여성 비하 표현이다. 그럼 젊고 예쁜 여자 아나운서는 조신하게 오락프로그램이나 진행하라는 얘긴가. 여성은 딸(여동생)과 작부 두 종류밖에 없다는 마초 남성주의 시각의 전형이다.

해당 동영상에 출연한 관계자들은 사설에 대해 “늘 MBC에 대해 그런 식으로 접근한 것이 조선일보의 본질이기에 논할 가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저열한 글에 대해 대꾸할 가치조차 없고, 현명한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안을 보는 관점은 언론사의 주장과 관점이 반영될 수 있고,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한국 신문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1등 신문이라고 자처하는 조선일보라면 수준에 맞는 ‘상식’선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같은 조선일보의 저열하고도 구차한 보도는 되레 조선일보가 그들의 ‘밥그릇’을 확장하기 위해 연일 MBC를 향해 저열한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