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舊 충무로 공공미디어센터 활력연구소
DIRECTOR 쌈장, 고추장, 초장, 청국장, 완장 등등
ADDITION 2002년 11월 30일 ~ 2003년 12월 31일
출연 : 활력연구소 운영진, 서울시 문화과, 일만삼천명 활력연구소 회원들

#1.
예전에 충무로 지하철 역사 안에 ‘활력연구소’라고 아십니까. 아, 그 이전에 ‘십만원비디오 페스티벌’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기억나십니까?

90년대 후반 다들 디지털이니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이니 하는 말을 무슨 신상 핸드폰 카피 쥐어짜듯 외칠 때 (그러면서 정작 그 소통의 허와 실은 짚어보지도 않을 때) ‘디지털이 별거냐, 돈 없이도 우리 얘기 하는 거다’라는 담대한 프레임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발랄한 행사 말입니다. 참가자와 주최자가 서로 웃고 격려하는 작은 영상 축제지만 그래도 상근하며 일 볼 사람은 필요하기에 조그만 사무실을 열어놓고는 사무국장은 청국장, 홍보 업무는 쌈장, 이런 식으로 호혜 평등한 직급명을 만들어냈던 운영진들.

2001년 5월 고건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 문화과에서 지하철문화공간 조성사업이라는 걸 구상합니다.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자문을 통해 (사)한국독립영화협회를 최적의 위탁운영단위로 선정하지요. 한국독립영화협회는 그 회원들 중에서도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의 운영진들에게 이 미션을 맡깁니다.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이 눈 밝고 귀 맑고 에너지 넘치던 분들은 충무로 역사의 좁고 곧은 공간 몇 평에도 기꺼워하며 시민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그 안에 배치할 아이템을 뚱땅뚱땅 만들며, 오가는 소녀 소년 청년 장년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보시다시피 작명도 재미나게 ‘활력연구소’. 한국 최초의 지하철 공공미디어 센터 개관이 이렇듯 착착 준비되는 동안 서울시는 그 운영예산과 인건비 등에 관해서는 계속 구두 약속만 합니다. 남의 창작욕을 복돋우는 데는 우리나라 최고였지만 관료를 상대해본 이력은 없는, 그래서 그 생리들은 잘 알지 못했던 활력의 운영진들은 한편으론 미심쩍어 하면서도 이 공공 영역의 개장을 기다리는 많은 마음들을 아는 지라 일단 ‘연구소’의 문을 엽니다.

그 후 1년 동안 1만3000명의 오프라인 회원이 가입하였고, 12번의 자체 영상전에 6622명의 관객이 왔으며, 434명이 영상미디어교육을 받고, 3256명이 3746편의 작품을 영상라이브러리에서 보았습니다. 또한 활력토크를 통해 김동원, 김지운, 장준환, 봉준호, 변영주, 류승완등의 영화감독과 가수 윤종신, 만화가 현태준, 3호선버터플라이, 델로스, 기따 등의 생활창작자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활력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며, 두 번의 두근두근 개봉관과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을 통해 많은 영상창작자들을 발굴하였습니다. 또한 한달 평균 3000분이 클럽활력에 오셔서 서적라이브러리를 이용하셨습니다.

자, 통계가 아닌 그냥 제 얘기를 하지요.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던 저는 이곳의 ‘두근두근 개봉관’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 비디오를 틀며 사람들의 반응을 먹고 자랄 수 있었고, ‘활력 토크’를 통해 아티스트들을 만나며 제 정서와 진로를 확장시킬 수 있었죠. 어떤 이는 거기서 낯선 나라의 생소한 미감을 보며 디자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거기서 편집의 기술을 배우며 자신의 여가를 강화시킬 수 있었구요.

그러나 활력의 운영진이 받은 대가는 그 노력과 초기 비용에 비해 얼마 되지도 않았던 걸로 압니다. 아니, 새삼 검색해보니 얼마 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군요. 8명이 일하는 공간인데도 아끼고 아껴 서울시에 신청한 예산이 1억2천만원. 그러나 서울시에서 집행한 예산은 고작 4천만원. (시의 중간급 관료 한 명의 연봉도 이것보단 많지 않을까요.) 이렇듯 파행적인 운영지원으로 일관하는 서울시와 지지고 볶는 1년이 지나가고,

활력연구소는 어이없게 문을 닫습니다. 서울시장이 이명박으로 바뀌고 문화과장도 새로 부임한 직후, 그나마의 예산 지원도 취소된 거죠. 이어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서울시는 ‘공모 입찰’ 카드를 던집니다. 입찰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운영하라는 거죠. 그리고 공공 영역의 운영비를 수익 사업을 통해 알아서 벌라는 겁니다.

이 무지한 논리에 항의하는 활력인들에게 저 윗선들은 전형적인 클리셰를 내밉니다. 한줌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분부를 시민들이 따르지 않을 때면 항상 등장하곤 하는 그놈의 ‘빨갱이’ 카드. 제 설명 필요 없이, 영화 저널인 FILM2.0 과 서울시 문화과 직원의 당시 인터뷰를 인용해봅니다.

충무로역 활력연구소 폐쇄 사태 취재차 서울시청 문화과를 찾았다. 명함을 건네자마자 문화과 직원이 뚱한 질문을 던진다. “FILM2.0이라는 매체의 색깔은 어떤 편입니까?” 말속에 담긴 진의를 반문하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그 말이지요. 활력연구소 사람들은 상당히 의식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색깔로 따지자면 빨간색이랄까.” …(중략)… “물론 사상의 자유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 겪어보니 아주 질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갔다.
- FILM2.0 김영 기자 (2003.11)

십만원비디오와 활력연구소의 용자(勇子)들은 이 기막힌 사태 앞에서 이렇게도 싸워보고 저렇게도 버텨보지만 결국 담담하고 애틋한 성명을 읊고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상관 없던 단체가 운영권을 가지게 되지요. 다음 해 그 단체의 상징적인 우두머리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합니다.

활력연구소 운영진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공공의 공간의 필요나 책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마저도 화들짝 놀라서 그리고 왠지 많은 것이 역겨워서 그 이후 다른 이들이 운영하게 된 충무로역의 공간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러다 1년쯤 지났을라나요, ‘어떤 다른 모습으로 운영을 맡길 계획이었길래 힘들게 텃밭을 일군 주체들을 쫓아버렸나’ 하는 궁금증에 그래도 혹시나 하며 들른 적이 있습니다. 딱 두 가지가 달라졌더군요. ‘활력연구소’라는 기발한 작명이 ‘오재미동’이라는 쑥스러운 간판으로 바뀐 거. 그리고 그 전에는 세로로 세워져있던 디자인 잡지들이 가로로 뉘여져 있는 거.

아, 실은 더 큰 무엇이 달라졌더군요. 자발적으로 드나들던 창작자며 시민들의 발걸음이 예전만하지 못했던 것. 그건 오재미동의 운영진이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자율과 활력의 아우라가 사라진 때문이겠죠. 저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이라는 비디오를 찍고 편집했어요. 무슨 쉘 실버스타인 동화 마냥 저에게 아낌없이 내주기만 했던 공공 영역의 실종을 첫사랑을 지키지 못한 회한으로, 좀 어리게 은유를 한 중편입니다.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과 활력연구소의 두근두근 개봉관을 통해 틀었어야 마땅할 이 중편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선뵈어집니다. 몇 년 후 같은 모티브로 저는 첫 장편 <은하해방전선>을 만들지요. 그런데 그 때 첫사랑을 앗아간 악덕과 오류가 다시금 찾아옵니다.

#2.
독립영화 발목 붙드는 건 (프레시안 2009.2.12)
반쪽짜리 행사 다양성 영화 토론회 (조이뉴스24 2009.2.26 )
비상업영화(?) 기구 출범 (연합뉴스 2009.2.13)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프레시안 2009.2.13)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는 고비를 넘겼지만… (프레시안 2009.2.26)

요새 프레시안에서 영화 정책 관련 개념 기사를 많이 쓰고 있다보니 링크도 많습니다. 각설하고, 뭔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기득권들이 공공의 영역을 침탈할 때의 방식. 이미 자율적으로 형성된 언어에 대한 효용 모를 딴지 걸기 > 이어서 공모 입찰 카드 꺼내기 > 반대에 부딪히면 귀 막고 좌파 타령 시작하기의 3단계가 벌써 예상됩니다.

자, 이 영역들은 또 다른 틈새시장이나 라이프 스타일 따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이나 권력의 필터를 최대한 피하면서 현실의 다양성과 결합하기 위한 매개였던 거죠. 예술이란 건 그러려고 있는 거죠, 미디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게 미디어구요. 그런 예술 또는 매체의 이름과 주소를 지켜내는 건 우리의 자율과 존엄을 지켜내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작명도 우리의 것, 공간도 우리의 것.

예를 들어 ‘촛불 집회’ 라는 말을 봅시다. 정부가 시민의 의견은 듣지 않으면서 일방적인 공문과 보도자료만 내밀 때, 사람들은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하고 탄원을 해보기도 하고 시민단체가 진정서를 넣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될 때 광장에 하나 둘 모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건강한 소통의 자세를 놓고는 ‘아니 다른 방식의 소통도 있는데 꼭 그런 식으로 모여야겠냐’고 적반하장의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 에다 ‘좀비’니 뭐니 다른 못된 낱말을 갖다 붙이거나 아예 ‘집회’라는 2음절을 소통방식이 아닌 불법적인 무엇으로 규정하려 들구요.

이름과 주소를 빼앗으려는 건 다른 말로 우리의 영토를 빼앗고 싶은 겁니다. 어떤 건강한 액션이 있을 때 그 액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 액션에 대한 자연스런 명명을 슬쩍 훼손하려 들지요. 고유의 이름을 빼앗고 저네들이 급조해 던져주는 이름표를 붙이게 하면 그 몸과 마음도 수월히 관리할 수 있을 거란 계산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몸과 마음을 잃진 않겠지만 이제 막 왕래를 시작하던 어떤 친구들은 주소를 잃고 헤매게 되거든요.

한편, 공모 입찰 경쟁이 뭐 어떠냐, 합리적인 판단 아니냐 하실 분들을 위해 따로 설명드립니다. 공공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할 때 저런 사업들을 기획하고 발의하고 초기의 고난을 감수하며 일궈온 이들이 독립영화인들이고 시네마떼끄의 인력들입니다.

그러니까, 고전 영화를 보고 얘기 나누는 시네마떼끄의 필요, 독립영화 전용관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전망, 영화 전공이 아닌 시민들도 촬영과 편집을 배우며 창작을 꿈꾸는 포부 등등 그런 공공의 가치를 개척해온 소중한 기운들을 별 이유 없이 외면하고, 그때 그때 정권의 인사에 의해 자리를 잡은 사람의 소견과 기준으로 시네마떼끄와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 전용관의 운영 주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전혀 합리적이지가 않지요.

가령,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을 한독협이 운영하는 기간이 끝난 후, 무슨 영화인 어쩌고 하는 식의 간판을 단 급조된 보수단체가 지금의 정권이랑 친한 중견 배우나 문필가 한 명 정도 단체장으로 이름 걸고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그냥 지금 정권 입맛에 맞춘 식의 기획안을 내어, 이미 눈밖에 난 독립영화인들을 내몰 명분을 윗사람들에게 제공, 새로운 운영 주체로 낙점된다면 그게 합리일까요? 아마 지난 1년, 2년의 사업 성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허나 이런 공공의 사업일수록 사람들로부터 인지도를 획득하기까지 진득한 낙숫물이 필요합니다.

요새, <워낭소리>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고 <낮술>에 대한 호응, <똥파리>에 대한 기대도 심상찮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저 영화들이 여러분과 만난 건 그 이전에 <송환>과 <후회하지 않아>와 <우리 학교>와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애국자 게임> 등등 수많은 독립영화들의 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만든 영화 역시 흥행은 덜 됐지만 그래도 저 기운들이 댓돌을 조금씩 뚫기 전의 낙숫물 중에 하나였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명동과 을지로 사이에 있는 200석 안되는 조그만 극장에서 아직 적자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틀었기에 그 인디스페이스라는 공간이 알려지는 거고,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하는 거고, 독립영화라는 영토가 알려지는 거고, 그 가치가 전파되는 거지요.

힘들지만 보람 있게 일궈놓은 그 영토를 빼앗는 논리는 활력연구소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합리적으로 경쟁해서 이기라’는 거죠. 수용자를 위한 공정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것 같지만 용산 재개발의 논리나 다를 것 없습니다. 재개발의 논리가 시민을 인격이 아닌 보증금의 단위로 본다면, 이런 공공 문화공간을 대충 접수하려는 기득권의 논리는. 시민을 문화의 수혜자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네 한 해 업적으로 치환할 몰개성의 숫자로 보지요.

개인적으로는, 저 또한 그동안 무공을 닦는다고 닦아놓았는데 더 ‘고수’가 되어 있었을 걸 하는 반성을 합니다. 의천검 하나 정도는 쥐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물론, 지금 당장 우리의 시네마떼끄와 미디어센터와 그밖의 대안의 영역들에 그런 사건들이 터질 거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확률이 높아질 언어 게임들이 실제 예산 집행과 맞물려 슬슬 생성되고 있습니다. 그 공간들과 인력들에게 수혜를 받던 우리들이 수수방관하고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저는 이만 말을 줄일게요. 차라리 5년 전 활력연구소 폐관 기자회견을 하며 최소원 매니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었던 편지로 대신할게요. 이 편지에 담겨 있는, 우리의 공공 영역이 훼손되는 일련의 과정은 지금의 정부가 언론과 문화 영역에 개입하는 방식과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세계 추세니, 국민 화합이니 뭐니 하며 합리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은 힘 있는 사람들의 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거지요. 이럴 때 빼앗긴 이름과 주소를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영토를 잃지 않기 위한 (그리고 되찾기 위한) 또 다른 스텝일 겁니다.

활력연구소 폐관에 부치는 편지

활력연구소 운영진이 드리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고상하지 않은 표현들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활력연구소는 2001년 5월 서울시의 지하철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업입니다. 우리가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서울시 문화과가 (사)한국독립영화협회가 최적의 위탁운영 단위라고 평가하고 제안하였기 때문이었고, 우리의 15개월간의 노력에 서울시민의 세금 9억7천만원이 소요되어 설치된 공간과 사업이 활력연구소였습니다. 그러나 활력연구소는 지난 2002년 11월 30일 파행적으로 문을 연지 13개월만인 2003년 12월 31일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처음 우리는 활력연구소를 현재 진행형의 공공문화시설의 모델로서 상업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상/시각미디어의 접근을 높여주고, 관련교육을 누구나 저렴하게 받을 수 있으며 직접 창작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점이자, 신나는 미디어놀이터로 기획하였습니다.

하지만 15개월에 걸친 기획과정에서 서울시가 관심을 보인 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문서인 최종 설계도 한 장 뿐이었으며, 사업계획에 맞는 행정적 지원노력은커녕 사업내용 얼개의 이해조차 하지 못하였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천이백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 서울시의 문화행정을 담당하는 서울시 문화국의 현실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문화사업이라고는 문화적으로 의미 있어 보이는 거리를 깨끗하게 정비하는 사업이나 혹은 하이서울페스티벌 같은 매머드급 생색내기 대형문화이벤트였을 뿐입니다.

(중략) 활력연구소는 지난 1년 동안 지하철문화공간으로 뭉뚱그려진 서울시의 최초 기안의 수정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습니다. 미디어센터라는 공간 목적에 맞는 행정적 틀을 찾아 공공성이 보장될 수 있는 예산 지원 속에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01년에는 2002년 운영예산 반영에 대해 실물이 없어 정규예산 편입이 어렵다는 구실로 운영예산의 차기년 반영을 이야기하였고,

(중략) 하지만 정작 2004년 예산 편성 시에는 이 공문을 빌미로 협찬으로 운영하겠다더니 무슨 말이냐는 식의 놀라운 임기응변식 행정기술(!)을 발휘했습니다. 협찬 등의 재정확보 작업에 서울시의 협조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비가 있을 때마다 온갖 모호한 약속과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식의 입막음을 반복해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중략) 그리고 서울시는 한번도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위해 머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급기야 문화과장이라는 분이 운영자를 “빨갱이”라며 인신공격을 하고, 어떠한 객관적 평가자료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실패한 사업”이므로 운영자가 교체되어야 마땅하다는 식의 논리로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폄하하였습니다. 저희 운영진은 이러한 서울시로 인해 지난 2년 반 동안 철저하게 소진되었습니다.

(중략) 서울시 문화과장은 서울시의 문화행정과 활력연구소 문제해결을 위해 문화단체가 마련한 토론회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듯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옛날에 가난한 동네에 부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영화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여 부자가 영화관을 지어줬더니 운영비도 안내고 생활비 달라고 하는 꼴이 바로 활력연구소”라고. 그의 부하직원은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서울시가 아파트를 지어줬더니 월세 달라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과장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활력연구소에는 ‘말도 안되는 얘들이 더덕더덕 빌붙어 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하던 사업을 다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들은 빨갱이이고, 활력연구소는 ‘실패한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곤 문맥을 모두 뺀 말들을 발췌해내어 활력연구소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서울시 문화과 담당자와 문화과장에게는 자신의 신분이 굉장한 벼슬인가 봅니다. 우리 ‘가난한’ 시민들이 요구해 ‘부자’ 서울시가 우리에게 활력연구소를 지어줬으니 잔말 말라는 식의 생각을, 서울시 문화과 관료들은 실제로 하고 있으며 부끄러움 없이 그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뿌리 깊은 활력연구소 혐오증은 우리가 그들이 만나왔던, 그들을 부자로 모시는 온순한 운영자가 아니라서가 아닐까요?

저희 운영진은 지난 2년 반 동안 순수하게 서울시의 황폐한 문화환경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공공문화시설의 모델과 현재성을 지닌, 살아있는 문화복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결과가 지금의 결과라는 사실에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중략) 저희는 절망했고 활력연구소는 폐관됩니다.

저희 운영진이 후회하고 안타깝고 답답하게 느끼는 대상은 바로 일만삼천명의 활력연구소 회원들입니다. ‘활력인’이라 불리우는 그들은 그동안 활력연구소를 너무나 사랑해주셨고 저희와 함께 즐겁고 재미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활력연구소 회원분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을 전합니다. 저희가 좀더 끈덕지고 유능한 행정가였다면, 활력연구소를 지켰을 것이고, 오늘의 결과까지 오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활력인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당신들의 애정과 관심이 오늘까지 우리를 유지시켜 온 힘입니다. 회원 모두에게 뒤늦은 애정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하략)

2003. 12. 22

활력연구소 운영진 일동

2001년에 스물다섯이었던 성호. 그 해부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산만한 제국』『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우익청년 윤성호』『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등등 극영화 같기도 하고 다큐 같기도 한, 실은 UCC에 가까운 - 중단편을 만들어왔다. 2007년『은하해방전선』이라는 장편영화를 만들며 나름 촉망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별로 안 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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