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토론회에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 ‘성장 친화적인 불평등 해소’ 같은 보수 성향의 주장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세금 만능론’을 경계한 최경수 KDI(한국개발연구원) 박사의 언급이 외롭게 들렸다.” 7일 국가미래연구원,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가 공동주최하고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후원한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불평등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중앙일보는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실제로는 공식통계보다 심각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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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월 8일자 16면 <정진석 “비정규직 비극 뒤엔 철밥통” 김종인 “정책담당자, 자본에 휘둘려”> / 강태화 기자
-중앙일보 6월 8일자 16면 <“고소득자 통계 누락 많아… 불평등 수준, 공식자료보다 심각”> / 서경호 기자
-한겨레 6월 8일자 4면 <“자산 대물림에 노동소득 격차 커져 미래 어둡다”> / 곽정수 선임기자
-한겨레 6월 8일자 4면 <“‘불평등지수 양호’ 정부 발표는 상위 소득자 누락 탓”> / 곽정수 선임기자
-한겨레 6월 8일자 5면 <“자본소득 과제 늘리고 최저임금 단계적 인상을”> / 김성환 기자

두 신문이 전달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렇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심해지고 있는데(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소득과 자산의 차이가 벌어진 것이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다. 김낙년 교수 분석에 따르면 최상위 소득계층의 한계세율은 1970년대 후반까지 70%였지만 이후 2분의 1 수준으로 인하됐다. 홍민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분석을 보면, 최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8년 15%에서 2013년 47.9%로 급증했다. 한편 2000~2010년 연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을 보면 노동자 4.3%, 자영업자 -2.1%인 반면 법인 이윤과 법인 유보는 각각 7.1%, 13.5%이다.

▲한겨레 2016년 6월 8일자 4면 기사

결국 세금과 임금을 활용해 불평등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제안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와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늘려 재분배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소득 분배와 함께 복지 확충,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김낙년 교수는 소득세 최고세율과 누진성 강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KDI 최경수 박사의 경우, 조세 제도뿐만 아니라 경쟁법적 접근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홍민기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를 해소할 제도적 대안으로 개별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유럽식 노사공동결정제도와 산별임금제를 제시했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은 사회보험의 재분배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 현실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쟁점은 법인세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재벌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겠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는데, 정부가 바랐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없었다.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담론과 함께 ‘법인세를 과거 수준으로 되돌려놔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거셌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부터 규제완화를 경제정책 기조로 설정하고 이를 강행했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8일자 3면 기사

상황은 20대 국회 들어 급변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밀어붙이려는 분위기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원 구성이 완료되면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며 “이명박 정부 때 내린 법인세율을 그 이전으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국민의당은 김동철 의원이 이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높이는 법안을 냈다. 안철수 대표 또한 실효세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과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법인세를 높이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명목세율(최고세율)을 높이든 비과세 감면 제도를 축소해 실효세율을 높이든 국회가 법인세를 논의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중앙일보의 입장이 담긴 사설이다. 중앙일보는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감세 정책이 효과가 없었고, 지난 8년 간 쌓인 재정적자가 200조원에 가깝다며 ‘감세 무용론’을 꺼내들었다. 중앙일보는 세계경제 장기침체 등으로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면서 일종의 타협안으로 ‘실효세율 인상’을 제시했다.

중앙일보는 “현재 법인세 논란의 핵심은 대기업의 과소 부담”이라며 “야당도 중소기업 부담을 높이자고 주장하진 않는다. 법인세 인상이라는 명분보다 실효세율 상승이라는 실리적 접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업 실효세율을 높인 뒤에도 재정 악화와 양극화가 완화되지 않으면 (명목세율 인상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소득세를 포함한 전체 세제의 균형과 효율성도 따져야 한다. 야당의 현명한 접근을 기대한다”고 썼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8일자 사설

법인세에 대한 보수언론의 입장 변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보수언론조차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특혜가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가 법인세 논의 과정에서 과거와 다른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아직 중앙일보의 주장은 보수언론에서 외롭게 들린다.

반면 중앙일보가 대안으로 내놓은 ‘실효세율 상승’은 보수언론과 박근혜 정부가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실효세율을 높이는 정책은 대부분 정부부처의 행정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중앙일보의 주장은 법인세 인상 논의를 주도하는 주체를 국회에서 정부로 바꾸고,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정부가 갖도록 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일보의 주장을 ‘재벌 대기업에 대한 특혜 정책을 철회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자’는 이야기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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