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 때마다, 아주 최악의 상황 때마다, 민주주의 진전에 힘을 보탰던 세력 중에 ‘대학교수’들이 있었다. MB악법 날치기 위험이 최고조로 달한 이 때, 한국사회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과 더불어 거리투쟁을 요청하고 있다.

▲ 지난해 12월 29일 '민생민주파괴 MB악법 처리 중단'을 촉구하는 교수단체 기자회견이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열렸다. ⓒ민중의소리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광기어린 폭압정치를 펼칠 때,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향해 비판하는 자, 살아남지 못하는 던 시절, 그래도 싸우고 그래도 말하고 그래도 글을 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한국 민주화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줬고 어떤 때는 함께 거리를 누비며 국민들을 설득하던 대학교수들도 있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거리의 산발시위로 하루하루를 싸웠고, 매일같이 잡혀가고 구속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던 시절, 대학교수들은 구속된 학생들을 면회했고, 보증인이 되어주었고,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해 4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대통령 직선제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며, 헌법을 고치지 않겠다는 ‘호헌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야당과 운동권은 목숨 걸고 호헌세력들, 지금의 한나라당 전신인 민정당과 전두환 정권을 향해 거리에서의 ‘맞짱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선 수많은 대학생들과 야당인사들은 거의 매일 잡혀가서 매를 맞고 구속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을 때, 대학교수들이 나섰다.

시국선언. 대학교수들은 호헌세력들에게 개헌을 요구하고 대통령직선제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집회와 시위, 그리고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며, 제1차 제2차 제3차로 이어지는, 전두환 정권 규탄의 시국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재권력에 숨죽여 살아가던 언론들도 대학교수들이 전두환 군사독재 종식을 선언하는, 밀물같은 시국선언은 외면하지 못하고, 보도하기 시작함으로써, 전혀 다른 민주화 기운들이 한국사회 전체를 휘감아 돈다.

학생들은 환호하며 교수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거리 시위를 나섰고, 함께 ‘동지’로서 ‘사제지간’으로서 진한 포옹을 거듭하며, 결국 6·10항쟁과 6·29선언으로, 한국현대사의 굴절을 그나마 일부 바로잡는 역사적 사건에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기여한 몫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시기 시대에 다시 한국사회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원하고 있다. 다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학교수들의 거리행진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연구실에 앉아서 연구하고 강의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만이 대학교수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 이것이 오늘 다시 거론되며 한국지성의 상징 대학교수들의, 행동하는 양심을 이 시대가 다시 원하고 있다. 성명서 한 장 시국선언 한 장이 민주주의를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시국선언문을 거리에서 국회 앞에서 읽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만 하지 말고 행동할 것을….

한국사회가 반동의 시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3월2일,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시대의 반동을 획정하는 ‘MB악법 통과’를 한나라당이 기도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검열과 여론조작의 시대로 회귀하는, 다시 20여 년 전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하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는 반동적인 법 통과가 바로 3월의 여의도에서 결정될 수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애타 한다. 사회적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역사적 경험으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거리로 나올 것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들이 대학교수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서 국회 앞에 모여서 한나라당의 MB악법 통과 기도를 규탄하고 저지하는 대열에 서고 싶어 한다. 행동하는 양심을 절절히 요청하고 있다.

거리에서 국회 앞에서 한국의 대학교수들과 함께 3월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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