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대박집'이라는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 가판대. 각종 복권을 판매하는 이 곳은 '심심하면 1등 터지는 집'이라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더 재밌는 것은 '진짜 이집'이라는 푯말이다. '원조' '진짜'라는 주장을 누가 그리 믿겠냐만은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집은 '정부 방침' 때문에 더 이상 로또는 팔지 않는(못한)다고 했다. 대신 주인은 보복(?)인양 로또 신화는 '가짜'라는 기사 스크랩을 덕지덕지 붙여놨다. 이유를 물으니 "우리 언니가 장애인인데, 장애인한테 먼저 줘야지 왜 대기업에서 다 가져다 파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근처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에서만 로또를 팔고 있다는 소리였다. 로또를 팔면서 '대박집'으로 이름을 알리고 덕분에 괜찮은 수입을 올렸을 이들에게 이제 로또는 희망도 기쁨도 아닌 미움과 배신의 대상으로 '역전'했다.

로또가 처음 등장해 일확천금의 꿈을 세상에 전파하던 그 때, 로또를 안사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분위기에 휩쓸려 만원짜리 몇번 투자했다가 한푼도 못건진 쓰라린 기억이 떠오른다. 로또 판매점 한쪽에서 심혈을 기울여 번호를 적는 사람들을 보면 컴퓨터용 펜으로 시험 답안지에 번호를 기입하던 고3 대입시험의 악몽도 오버랩된다.

어떤 복권 관련 책의 소개글에선 "복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속성을 바르게 인도하여 건전한 오락으로 사행심을 적당히 충족시켜주는 합리적인 게임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왔다"고 써 있었다. 인간의 속성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로또복권 판매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언론은 이를 '복권피로' 현상이라고 지칭하면서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은 없다. 그저 지난 2003년 3조8031억원이라는 판매액을 기록한 로또는 2004년 3조2802억원, 2005년 2조7500억원, 2006년 2조4715억원으로 매년 10% 이상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팩트' 뿐이다.

매년 판매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로또 사업자 입장에선 여전히 황금알 사업인 것은 분명하다. 오는 12월부터 시작되는 2기 로또의 사업자 선정 당시 대기업들이 참여한 컨소시엄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나눔'과 '복지'로 로또 사업을 포장하지만 실제 복지기금이나 공공재원으로 사용되는 일부를 제외하면 사업자들만 배를 잘 불려왔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그래도 연초가 되면 각 신문들은 로또와 관련한 기획(?) 기사를 줄줄이 내보낸다. '2007년 달라진 로또 대박 공식'과 같은 제목들이다. 한해의 당첨 경향을 분석하고 잘 나오는 번호와 패턴을 알려준다. 각자 운세에 맞는 숫자가 점지돼 있다고 믿는 '로또점'도 소개된다. "저마다 증시분석가 뺨치는 꼼꼼한 해법을 내놓는다"며 시중에 떠도는 '비법'들을 전한 뒤 "정말 따라하면 되냐고 묻지 마시라. 본인판단, 본인결정, 본인책임"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자신들의 예측시스템으로 많은 사람이 행운을 거머쥐었다고 홍보하는 사이트들도 범람한다. 숫자와 통계에 강한 사람일수록 유리하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노출빈도, 제외수 등 각종 분석자료를 통해 당첨번호가 갖는 규칙성을 산출하면 가장 확률이 높은 1등 당첨번호가 나온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로또는 행운이 아니라 과학인 것도 같다.

지난 9월, S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앤조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로또 1등에 당첨될 경우 가장 먼저 '채무를 정리하겠다'는 응답이 26.2%로 가장 높았다. '부동산을 구입하겠다'(21.5%)와 '저축을 한다'(12.5%)는 대답이 그 뒤를 이었고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는 응답도 11.9%였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53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채무 정리'가 1위로 나온 것을 보니 빚 지고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생각에 한숨도 나온다.

고되고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비현실적으로 잊게 해주는 로또 1등 대박의 꿈.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대놓고 융숭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현실에선 서민들의 주머니를 끝없이 헤집어내는 로또는 과연 운일까, 과학일까? '공익기금 마련'이라는 복권 사업의 목적은 허황된 꿈일까, 의미있는 현실일까?

그리고 1등에 당첨돼 인생역전의 짜릿함을 맛 본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로또 1등 당첨자는 2002년 1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1284명. 정말 꿈처럼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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