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문신’(tattoo)은 오랫동안 조폭의 상징이었다. 덕분에 문신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신 문신을 하면 국가가 군대를 면제해줬다. 특혜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으로서 정상성을 박탈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군대조차 갈 수 없는 막장 인생 취급을 당했다.

문신이 표현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같은 인권 인지적 범주 안으로 들어온 건 불과 최근의 일이다. 어떤 문신남이 ‘군대 가게 해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지배적 편견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의 요즘 문신 유행은 참으로 상전벽해다. 문신은 더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간지’나는 영구화장이다.

▲ 2월 28일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결의대회 집회 현장ⓒ나난
그렇다고 터부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수염 기르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는 국회의원은 있지만 문신을 드러내고 다니는 국회의원은 아직 없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의 문신은 작고 귀엽다. 더구나 빅뱅의 G드래곤조차 용(龍)을 그려넣는 일은 없다. 그래서 온몸을 캔버스 삼은 비천룡 문신의 상징성은 오히려 더욱 명징해지고 있다.

90년대 후반 언론개혁운동과 함께 등장한 신조어 가운데 하나가 ‘조폭언론’이다. 물론 진짜 조폭이 운영하는 언론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이 합성어에서 ‘조폭’은 형용사의 품성(‘조폭스런’)을 지닌 명사다. 조폭언론이 보통명사가 된 뒤에도 내가 한동안 용 문신을 한 기자를 보지 못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2009년 2월의 마지막 날 오후, 서울도심 한복판에 마침내 용 문신을 한 기자가 등장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이명박 정권의 언론관계법 날치기 상정을 막기 위해 주말도 마다않고 언론노동자와 시민 1천여명이 집회를 열고 있는 현장이었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한쪽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한 집회 참가자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건장한 청년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던 청년은 이윽고 사복경찰 의심을 받았다. 그러자 청년은 그 시민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나가려고 했고, 주위에 있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면서 거센 몸싸움으로 번졌다.

마침내 청년의 웃옷이 벗겨졌다. 그 순간 청년의 등에서 한 마리 용이 날아올랐다. 용의 비상에 화들짝 놀란 집회 참가자들은, 차츰 그가 경찰이 아니라 ‘용역(깡패)’일 거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집회 참가자가 그의 웃옷에 든 명함을 찾아냈다. <뉴스 코리아> 백○○ 기자라고 새겨져 있었다. 성은 용이요 이름은 문신, ‘드래곤 타투 저널리스트’의 출현, 아니 아우팅의 순간이었다.

<뉴스 코리아>라는 매체 이름은 생경했다. 인터넷에서 ‘뉴스 코리아’라고 검색해보니,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도메인과 미국 한인사회가 운영하는 도메인이 떴다. 어느 경우도 백○○ 기자의 명함에 새겨진 매체는 아니었다. 마침내 다음 아고라에서 <뉴스 코리아> 도메인(www.newskorea.info/)을 찾아놓은 글이 검색됐다. (역시 아고리언들의 검색능력은 탁월하다.)

▲ ‘뉴스코리아’ 대문 화면
화면이 열리고, 제호 위에 붙은 슬로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종으로 말한다’. 탐사저널리즘을 추구하나? 그런데 대문 화면 왼쪽 날개에는 야한 사진들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포토갤러리’가 있었다. 특종과 관음증의 거리만큼이나, 좀체 어떤 매체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매체 소개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맨 밑에 연재 기획기사가 붙어 있었다. ‘전철연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렇다면 이 기사가 이 매체의 특종인가?

첫 기사는 ‘‘용산화재테러사건’ 경찰 VS 전철연’. 경찰과 전철연의 대립되는 입장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보기에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했다. 기획 제목에서 받은 첫인상과 달리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매체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이건 뭔가.

[1신] “反민주적 테러리스트를 처단하라”
[2신] 용산발 “전철연을 처단하라!”
[3신] 용산 테러리스트를 척결하라!
[4신] 장사 못해 먹겠다!
[5신] ‘전철연 규탄’ 청와대 앞에서

이들 기사는 모두 백○○ 기자 이름으로 돼있었다. 29일 프레스센터 앞에 있었던 바로 그 기자. (그렇다고 1인 미디어라는 말은 아니다. 이 매체에는 그 말고도 몇명의 기자 이름이 더 등장한다.) 5신 기사 사진에는 이 기사를 쓴 백○○ 기자가 직접 등장하고 있었다. ‘한국문화비전’과 ‘국가정체성세우기운동본부’가 벌인 ‘반 민주적 용산 살인폭도를 처단하라’ 캠페인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라는 사진설명과 함께.

특종으로 말한다는 신문의 ‘타투 저널리스트’는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아주 격한 캠페인도 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참으로 민망했다. 용 문신에 대한 선입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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