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언론관계법 등 쟁점법안 처리 여부의 최대변수로 등장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정국의 최대변수였던 지난 국회 때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 등 쟁점법안을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문제는 처리방법이다. 현재로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대를 뚫고 쟁점법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

▲ 27일 국회 사무처가 국회 출입통제에 나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 경위과는 국회의사당 일부 출입문에 12시30분 이후로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미디어스
27일 들어 3월 2일 국회 본회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예고됐기 시작했다. 다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언론관계법이 포함될 것인가로 관심이 좁혀질 뿐이다.

김형오 의장은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야 협상 중인데 언론 관련법을 (직권상정)한다, 안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없다”며 “나는 안 한다고 한 적이 없다. 언론 관련법을 제외한다는 것은 아예 틀린 이야기”라고 언론관계법 직권상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나라당도 이날 직권상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의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갔다.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은 이날 한나라당 단독의 문방위 회의가 민주당의 점거농성으로 무산되자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상임위원장도 가능한 질서유지권을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요구하러 갔다. 국회의장이 자리에 없어 요구가 전달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이미 직권상정의 물꼬를 텄으니 이제 국회의장이 나서라는, 더 나아가 나설 때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문방위원들도 한입이 되어 “민주당은 상임위 불법점거를 즉각 중단하라”며 “대화와 토론 거부는 직권상정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의 대화와 토론 거부’ 때문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김형오 국회의장을 향하고 있다.

고 위원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문방위원의 이같은 일련의 직권상정 요구와 행동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침을 철저하게 따른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문방위를 비롯해 상임위를 모두 정상적으로 열어서 미진했던 법안들을 준비하고, 문방위도 이번에 꼭 해결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만약 오늘 문제 해결이 안 되면 의장실로 가서 말씀드려라”라고 독려했다.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강행 처리에 있어 국회의장의 역할이 절대적인 상황에 왔다는 강조점이 두드러진다.

고 위원장도 거들었다. “만약 민주당이 계속해서 점거하고 언론노조가 밖에서 가투를 하고 파업을 계속한다면 오히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빨리 촉구하는 상황이 될 것”고 경고했다. 민주당의 점거농성은 물론 언론노조의 총파업까지도 직권상정의 명분 쌓기로 활용하려는 셈이다.

▲ 지난 27일 국회 본관 정문 민주당 당직자들의 출입을 막아서는 가운데 격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미디어스
이날 오후 들어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요구는 보다 강경하게 드러났다.

이날 취소된 본 회의를 대신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책임질 악역을 맡아야 한다”며 “언론관계법이 제외된 직권상정은 의미 없다”고 국회의장을 압박했다. “언론 관련법을 (직권상정에서)제외한다는 것은 아예 틀린 이야기”라는 김 의장의 발언과 맞닿아 있다.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을 처리법안 1순위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한 김 의장의 동조 가능성이 커 보이는 대목이다.

그 동안 직권상정에 대한 김형오 국회의장의 생각은 “나에게도 원칙이 있다”와 27일 본회의 취소로 모아진다. 그가 말하는 ‘원칙’은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27일 본회의를 취소함으로써 직권상정 가능성의 문을 크게 연 것으로 보인다.

우선 26일 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직권상정 반대 입장이 전달되자 김 의장은 “나에게도 원칙이 있다”고 답했다. 즉답을 피하는 선에서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는 한편 이날 국장의장 명의로 발표된 성명에선 “내일(2월27일)까지 법안에 대한 심사를 모두 완료해 주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27일 이후부터의 본회의 법안 처리를 예고한 것이다.

또한 김 의장은 27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돌연 취소했다. 국회 본회의장의 치열한 여야 대결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27일 국회 본회의 취소를 직권상정을 통한 날치기 시도의 수순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설명과 비판이다.

오늘 본회의에서는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97건의 법안과 이미 본회의에 부의된 27건의 법안을 정상적으로 처리할 예정이었다. 이들 법안은 정부가 “시급한 민생경제법안”이라며 의회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한 법안들이다. 이 법안들은 여야 간에 쟁점이 없는 법들이며, 김형오 의장과 한나라당이 평소 강조했던 민생경제 법안들이다.

이를 김형오 의장과 한나라당이 MB악법 날치기를 위해 본회의 처리를 거부한 것이다. 국회법 어디에도 정상적인 본회의 일정을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무산시키고, 의회주의를 유린해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김형오 의장과 한나라당은 본회의 무산과 직권상정을 통한 날치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취소는 석연치 않다. 쟁점이 없는 민생법안을 처리를 위해 여야가 합의했던 의사일정을 의장이 독단으로 취소한 것이다. ‘민생법안 처리까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반대하고 있어 직권상정이 불가피하다는 의장의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계동 국회 사무처장은 이날 오후 12시 30분을 기점으로 국회 출입제한 조치를 내렸다. 국회 살림을 맡은 사무처장까지 나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28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28일 “한나라당 정권이 쟁점법안의 직권상정 강행처리를 시도한다면 야3당은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미디어 관련 법 등 MB악법을 직권상정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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