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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해보이지만 더 풍부해졌다”[민중가요의 오늘 ②]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인터뷰
권순택 기자 | 승인 2016.06.06 13:37

“누구는 뺏고 누구를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처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 가쁜 눈물이
왜 이리 세상은 삭막해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받는 세상”_<간절히>

노래 <간절히>의 노랫말이다. 직접적인 사회비판 시각을 드러낸 <간절히>는 가수 연영석 씨가 2001년 발표한 앨범 ‘공장’에 담겨 있다. 그 후로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노랫말에서 연영석 씨가 ‘간절히’ 원하던 세상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2016년 한국사회는 더욱 더 삭막해졌다.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사회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누군가를 밟고 서라’고 이야기한다. 그 ‘삭막’한 상황에서 민중가요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연영석 씨는 오늘 날의 민중예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누군가는 ‘민중가수’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디뮤지션’이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집회 무대는 물론 홍대 클럽 무대, 명동성당 앞 거리를 가리지 않는다.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는 ‘특별상’을 받았다. 하나의 형식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가수다.

지난달 23일 명동성당 앞에서 연영석 씨를 만났다. 그는 매주 월요일 민중가수 박준 씨 등과 함께 해고 및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의 자녀교육 지원을 위한 모금공연을 하고 있다. 햇수로 벌써 16년째다. 연영석 씨가 내보인 핸드폰에는 모금을 통해 후원을 받은 OO이의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감사문자가 찍혀 있었다.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씨ⓒ미디어스

“저는 민중가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명동성당 공연은 원래 박준 선배가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위해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박준 선배의 주선으로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해(2001년)부터 저랑 다른 후배들도 붙어서 공연하고 있다. 원래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로 시작돼 헌혈증도 모으고 모금한 돈을 지원해주고 그런 활동이었다. 그것이 들불장학회 장학금 지원 사업으로 확장됐고 지금은 두 세분 정도의 해고자 혹은 산재 노동자들 등의 자녀들을 선정해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 분들이 졸업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그렇다. (복잡한 실무는) 박준 형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 (금액이) 많지는 않고 소액이다.”

16년의 시간을 짧지 않다. 연영석 씨가 명동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거리도 많이 바뀌었다. 연영석 씨는 “예전 명동의 맛이 안 난다”며 “다 변하고 있다. 지금은 공허한 느낌도 든다. 그래도 ‘비싼 동네를 우리 목소리로 채우자’는 얘길 우리끼리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허한 거리에도 팬들은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공연을 쉬었는데 ‘왜 안 보였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실제 이날 거리공연을 사진으로 찍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민중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연영석 씨를 찾았다고 밝히자, “저는 민중가수라는 말을 쓰진 않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고민을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 정체성은 노동가수에 가깝다.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민중가수라는 말이 협소하다고 생각했다. 80년 대 이후 민중가요가 부흥하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에 대한 지향성은 분명히 있다. 사회운동이나 변혁운동, 민중운동, 노동운동에 복무하는 노래로서 대중투쟁에 나선 이들을 북돋는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는다. 정체돼 있다. 지금은 운동의 방식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노동자로 칭하는 것이 더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노동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내 스스로 노동자로서 음악을 하고 그 음악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군중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대중을 선도하고 지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개념보다는 군중 속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방향을 만들어가고 함께 울고 웃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민중가수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느냐’는 물음에 연영석 씨는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며 “마빡(이마)에 운동권이라고 쓰여 있으니”라며 웃어 보였다. 그는 “지금의 문화운동의 지형을 보면 그 변화를 그 용어가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연영석 씨는 “두리반친구들이나 스스로 인디밴드로서 사회에 비판적이고 저항하는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도 많다”며 “그들은 ‘민중가수’, ‘노동가수’라고 하지 않지만 그 나름의 공간에서 고민하며 연대하고 있다. 오히려 저보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고 생각도 깨어 있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 이들은 민중가수, 노동가요라는 범주로 포괄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중가요’라는 용어 자체가 보수적이라서 “낡았다”라는 평가들도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어떤 것으로 규정짓기 보다는 사회의 다른 에너지들과 섞여 좋은 에너지로 작용하면 좋지 않겠는가”, 연영석 씨가 찾아낸 답이다.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씨ⓒ미디어스

연영석 씨는 “노래도 많이 바뀌었다”며 “(투)쟁가가 여전히 각광 받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용어는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괴리된 느낌이 있다. 그 용어가 가지는 허례의식 같은 것이 있다. 골방에서 굶어가며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예술가’라며 돈에 구애받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작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돈벌이만으로 안주하지 않으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예술가들도 노동을 통해서 먹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예술이라는 용어보다는 문화라는 게 더 맞는 게 아닐까 싶다. 문화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화노동자’라고 소개를 했던 것이다. 그만큼 문화를 중요하게 본 것이고 그 속에서 노동자로서 그 흐름에 함께 하는 것이다. 나도 계급적인 노동자라는 건 나름대로의 선언이다.”

‘노동’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상황에서는 반대로 노동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을 찾아주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며 “작가로서의 자기 성을 쌓고 ‘작가주의’ 틀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걸 깨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가지는 굴레를 깨내는 방법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홍대클럽에서 노래하는 이유

어쩌면 이러한 이유들이 연영석이라는 인물을 한국사회에서 독특한 위치에 자리 잡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홍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학내는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노래패를 만들고 가입하고 그랬는지 지금은 거의 없다”며 “(이 판에)젊은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소통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해 홍대클럽 ‘빵’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무언가 가르쳐 준다는 게 아니다. 빵이라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소통이다. 그 친구들이 나를 보면 ‘저 형 노래가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인식을 받기도 했다. 대학 내 예비역 같은 그런 느낌. 운동권인지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대로 저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PC방, 편의점 알바로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노래는 왜 이렇게 곱고 아름답기만 할까? 하는 그런 생각. 이렇게 서로에게 다른 모습을 보면서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소통하면서 내 노래도 많이 바뀌었다. 서로 희석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도 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민중가수들의 무대는 ‘현장’이다. 연영석 씨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흡족할 정도로 연대활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머리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영석 씨가 꾸준히 연대활동을 벌이는 곳은 ‘콜트콜텍’ 투쟁 현장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노동운동 현장 투쟁과는 다른 면이 있다. 물론, 대추리와 강정, 두리반, 옥바라지 골목 투쟁에 많은 뮤지션, 문화예술가들이 많이 결합했다. 노동현장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콜트콜텍은 노동가수, 민중가수 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결합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노동운동사와는 다른 한 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악기를 만드는 회사이다보니 많은 뮤지션들이 공감했던 것이다. 음악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안겨준 투쟁이다. 기타를 치면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저 역시 그랬다. 노동운동판에서 노래를 해왔는데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 대해 한번 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처음 콜트콜텍 동지들을 만나면서 부끄러웠다.”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씨ⓒ미디어스

연영석 씨는 ‘이주노동자’ 투쟁에도 많은 연대활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숨’ 앨범 속 ‘코리안 드림’이라는 제목의 노래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저는 주류에서는 배제된 노동가수였다”며 “노래를 시작하면 ‘재 뭐지?’라는 반응이었다”고 밝혔다. 사실이다. 그의 노래는 대규모 집회나 결의대회 등에서는 낯선 것으로 인식됐다.

연영석 씨는 “자연스럽게 제 노래에 대한 선입견이 없던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하게 됐다”며 “오히려 그들은 노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냐>, <간절히>, <엄마 미안해>를 가감없이 받아들여주더라. 그런 게 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비정규직, 장애인, 이주노동자들 소수자 운동이라는 점에서 더 결합했던 것 같다. 노동운동은 아무래도 대공장, 남성중심이라는 것이 속상했다. 그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돈을 많이 주기도 하지만 그건 저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민중가요라는 것이 ‘노동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이날 인터뷰는 노동운동의 현재 그리고 민중가요에 대한 연영석 씨의 여러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같은 고민 속에 연영석 씨 자신의 음악의 변화 지점 또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노동운동에 대해 환멸이 생긴다. 노동운동이 바닥을 쳤다고 하는데, 그 바닥은 어디까지 인가. 그게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감정 상태에서 만들어진 노래들은 거기에서 멈춰 있는 느낌이 있다.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간절히> 등 그 당시에 썼던 노래들을 잘 안 부르게 된다. 그때 만든 노래와 요즘 만든 노래를 많이 다르다. 지금은 편안한 노래들을 부른다. 그래서 초기의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노래가 많이 바뀌어서 실망할 수도 있다. 문화노동자라는 규정 안에서 좀 더 다양한 걸 바라보고 싶다. 결혼하고 애 낳고 하다보니 예전처럼 그렇게 써지지도 않고. (웃음)”

“민중가요, 빈약해보이고 우려스러울 수 있지만 더 풍부해졌다”

‘2016년 민중가요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은 던지러 왔다’고 하자. 그는 “민중가요가 전통적인 틀에서 보면 빈약해 보이고 우려스럽게 보일 수 있다”며 “그렇지만 그 틀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보면 더 풍성해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창작하고 있는가이다. 문제는 최근 그런 고민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만 잘 잡고 있다면 늦더라도 갈 수 있는데 현재는 그것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노동운동도 개판인데 우리라도 별 수 있나’라는 고민들만 연속된다. 세상을 예술이 밝혀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대중음악 또한 고양기가 아닌 내리막길에 놓여 있다. 우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전노협부터 대공장 노동자 중심의 운동, 민주노총까지 왔다. 민주노동당도 만들어졌지 않나. 그런데 지금은 단지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움틀 거리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귀농 얘기도 나오고 지역운동 등 제3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연대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연영석 씨는 “(3집)음반을 낸 지 11~12년 되어 가는데 그 사이 사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고, 운동의 흐름도 변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절망적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먼저 고민한 사람들도 있고 네트워킹 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속에서 나의 음악을 어떻게 관계 맺으며 펼쳐나갈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자본 역시 한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다”고 답했다. 그런 점에서 민중가요가 가야할 길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연영석 씨는 다시 “소통”이라고 답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느끼게 되지만 노동자들을 이제는 민중가요를 더 안 듣는다. 민중가요보다는 이를테면 전인권 씨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더 많이 위로를 받는다고 하지 않나.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음악은 공감이다. 그게 음악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음악을 한다. 사람들이 들어줄지 좋아해줄지 모르겠지만 전 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싶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더 당당하게 풀어가고 싶다. 연예인들이 집회 현장에 와서 노래하면 ‘의식 있는 가수’라고 칭송받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이 서글퍼하기도 한다. 후배들은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매일 현장에 다녔는데, 한 번 왔다고 환대받는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면 전 ‘너의 음악을 하라’고 말해 준다. 스스로 내가 하는 음악의 영역이 ‘민중가요’, ‘노동가요’, ‘대중가요’라는 틀에서 가두지 말았으면 한다.”

연영석 씨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는 민중가요가 아니다”라면서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노래를 저항음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나. 아무리 내가 ‘나 민중가수야’라고 해도 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관계맺기에 있다. 그 안에 대중의 몫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영석 씨는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며 “그 사람들 나름대로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올바른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집회와 같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곳에 가수 이승환 씨가 서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승환 씨만 서는 것은 좋은 집회 기획은 아니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대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라면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연영석 씨는 “독립된 예술로서의 민중가요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터부시해왔던 측면이 크다”면서 “관성화된 운동판에서 소모되는 것 같고, 짝사랑 하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가요 자체에 대한 존재의 이유는 부정하지 않았다. 

“나에게 ‘민중가요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있다’이다. 민중가요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는지 모르겠지만 노동자, 청년, 학생이라고 운동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때의 용어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사회 모순 형태가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노동 문제도 있지만 평택, 강정, 두리반 등 자본주의의 문제는 여러 곳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 같은 곳에서 우리들이 노래를 안 부른다면 대중들이 할 것이다. <아침이슬>처럼 끌어 오르는 송곳과 같이 말이다.”

그런 연영석 씨에게 2016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본인의 노래와 타 민중가수의 노래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지민주 씨 음악 한 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명동성당 앞에서 인터뷰는 끝났다. 하지만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가수 박준과 연영석의 노래가 붙잡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작업했다. 그 중에서 <힘내라 마음아>라는 곡을 들으면 힘도 받고 따듯해지기도 한다. 노래 제목 그대로 나를 격려해주는 노래다. 가사 또한 그렇다.…(중략)…옛날 만든 노래이지만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냐>, <간절히>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만든 음악 중에는 <인터뷰>라는 노래가 있다. 45세 장애인과 69세 월남참전용사 그리고 35세 락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대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묘한 느낌을 담고 있다고 해야할까.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 시계가 뒤로 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면서 밥 먹고 사는 걸 걱정하고 장애인들에 우리 사회는 시설에 갇혀서 살라고 하고, 이게 뭔가 하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다.”

 

지민주 씨 음반은 조만간 발매될 예정이다. 하지만 연영석 씨의 말에 담긴 고민을 음반의 형태로 접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할 듯 하다. 1998년 1집 <돼지 다이어트>, 2001년 2집 <공장>, 2005년 <숨>을 끝으로 정규앨범은 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빵 컴필레이션3. History Of Bbang>에 '현실'이라는 곡이 담겨있다.

 

권순택 기자  nan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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