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 본부에서 전해드리는 뉴스 속보입니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위태롭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27일 오전 10시40분, 서울 여의도 MBC본사 5층 뉴스센터. 김정근 아나운서가 뉴스 속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여러분도 함께 해 달라”고 촉구했다. 뉴스 속보 마지막 무렵, 그는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외쳤다.

▲ 김정근 아나운서. ⓒ송선영
김정근 아나운서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 위협”

실제 뉴스 현장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12월26일부터 13일간 진행된 언론관련법 저지 1차 총파업 당시 공식카페(http://cafe.daum.net/saveourmbc)를 통해 네티즌들의 폭발적 반응은 받은 MBC노조. MBC노조가 이번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통해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리는 동영상 제작에 나섰다. 지난 총파업이 ‘디지털 파업’이었다면 이번에는 ‘글로벌 파업’인 셈이다.

동영상의 시작 부분, 예고 영상 부분을 맡은 김정근 아나운서는 녹화가 끝난 뒤, 주먹 쥔 채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이라고 외쳤던 부분이 머쓱했던지 “왠지 투사가 된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 이동희 PD. ⓒ송선영
‘명품 다큐’라는 호평을 받았던 <공룡의 땅>을 제작한 이동희 PD는 스페인어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국의 언론 상황을 전했으며, 최현정 아나운서는 영어로 “지금 대한민국은 언론 자유를 박탈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PD는 동영상 촬영을 위해 어제 머리를 잘랐으며, 오늘 일찍 일어나 대본을 외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스페인어로 한국 언론 상황을 알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며 크게 웃었다.

“긴급상황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단지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번 1년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정부 여당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언론악법을 직권상정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이 악법 통과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언론자유를 박탈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현정 아나운서)

▲ 최현정 아나운서. ⓒ송선영
최 아나운서는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fight against control of speech’로 바꿔 외쳤다. 그는 입에 붙지 않은 구호 탓인지 몇 번의 NG를 내고 부끄러워했지만, 평소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결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은 아나운서 “언론법 개정이 경제 살리기? 새빨간 거짓말”

하지은 아나운서는 일어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전했으며, 방현주 아나운서는 중국어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 하지은 아나운서. ⓒ송선영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거짓말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한편, 국회 문방위에서는 난데없이 일어가 등장했습니다. 정병국 “겐세이 놓고 끼어들지 마시고 가만히 계세요.”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우리가 한나라당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겐세이’(방해)가 아니라 ‘쓰미마센’(죄송합니다)이라는 사죄의 말입니다. (하지은 아나운서)

▲ 방현주 아나운서. ⓒ송선영

“오랜만에 프랑스어를 말해 본다”는 권희진 기자는 처음 몇 번 어색해 하더니 이내 차분하게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렸다.

그는 “조중동과 방송, 이 커플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며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원고를 완성한 그는, ‘언론 장악 저지 투쟁’ 구호를 프랑스어로 만들어 보라는 현장의 주문에 당황한 듯 했으나,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멋지게 만들어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뤼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고 합니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입니다. 이 커플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습니다.” (권희진 기자)

▲ 권희진 기자. ⓒ송선영
MBC ‘글로벌 파업’ 동영상, 노동조합 카페 및 유튜브에 올라갈 예정

각각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통해 한국의 언론 상황을 전한 이들의 말 안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민주주의, 조중동 그리고 control(통제). 이 단어들은 전 세계에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리고 동시에 어떤 상황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녹화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렸다. 이들은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각각의 언어로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외쳤다. 이들이 주먹 불끈 쥔 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MBC노동조합 카페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인 <유튜브>에도 올라갈 예정이다.

▲ 프롬프터에 비친 권희진 기자의 원고. ⓒ송선영
MBC 노조원들의 “한국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호소가 한국 네티즌을 비롯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나아가 한국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은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참고: 친절한 MBC노조는 동영상에 5개 국어에 대한 한국어 자막을 포함할 예정이니, 부담 없이 즐기셔도 될 듯하다. 설사 한국어 자막이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이명박, 민주주의, 정병국, 고흥길 등 익숙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니 무슨 내용인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MBC 노조원들이 '언론 장악 저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송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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