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이 무너지고 잦은 실책이 이어지며 좀처럼 제대로 된 경기를 하지 못하던 기아 타이거즈는 진짜 에이스 헥터로 인해 귀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전날 5시간이 넘는 경기를 치르고도 무승부를 기록한 두 팀에게는 선발 투수의 긴 투구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기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투수 헥터, 6회 2연속 번트가 흐름을 바꿨다

기아 선발이 무너지며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불펜이 초반과 다르게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강한울의 실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상황은 답답했다. 여기에 주루 실수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엘지는 1회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헥터가 만루 상황까지 내준 후에도 실점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 경기에서 아주 중요했다. 전날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고 치러진 경기 첫 이닝에서 앨지는 기회를 잡았고 기아는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에이스 헥터의 진가는 그대로 드러났고 위기를 넘기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볼넷 2개에 안타 1개까지 내주며 위기에 빠졌지만 헥터는 중견수 플라이, 1루수 파울 플라이, 1루 땅볼로 상대를 잡아내며 만루 상황을 넘어섰다. 만약 헥터가 1회 만루 상황에서 실점을 했다면 이번 경기만이 아니라 엘지와의 원정 경기를 모두 망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KIA 타이거즈 선발 헥터 Ⓒ뉴스1(자료사진)

기아는 3회 상대 실책으로 첫 득점에 성공했다. 1사 후 이진영의 3루 땅볼을 엘지 히메네스가 잘 잡아놓고도 송구 과정에서 흘리며 주자를 내보낸 것이 문제였다. 코프랜드가 김호령에 사구를 내준 후 강한울의 2루 땅볼로 기아는 득점에 성공했다.

김주찬의 안타까지 이어지며 코프랜드는 대량 실점 위기에 빠졌다. 두 명의 주자를 둔 상황에서 나지완의 타구는 완벽한 안타였다. 하지만 엘지 유격수 오지환의 환상적인 수비로 2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이 수비 하나가 엘지의 초반 붕괴를 막았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전날 많은 투수들이 나온 상황에서 코프랜드가 초반 무너졌다면 목요일 경기까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책이 쏟아졌던 기아는 이번 경기에서 많은 호수비를 만들어냈다. 김주찬이 좌익수로서 외야에서 헥터를 든든하게 받쳐주었고, 최근 연이은 실책을 범하며 경기를 내주는 이유가 되기도 했던 유격수 강한울도 멋진 수비로 화답했다. 엘지 역시 오지환의 멋진 수비들이 연이어 나오고 정주현 역시 안정적인 수비로 탄탄함을 보여주었다.

엘지는 1회 만루 기회를 놓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5회는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1-0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 나선 유강남이 2루타를 치며 동점 기회를 만들었다. 엘지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오지환에게 번트를 지시했고, 1사 3루에서 동점은 당연해 보였다.

전진 수비를 하던 기아 서동욱은 박용택의 강한 타구를 안정적으로 잡은 후 3루와 홈 사이에 걸린 유강남을 3루 송구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조금 느린 타구였거나 3루 주자가 포수 유강남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이 3루에서 아웃되며 엘지는 기회를 다시 놓치고 말았다. 다음 타자인 임훈의 헛스윙을 노스윙이라 판단한 3루심의 어이없는 판정이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지만 경기는 그렇게 여전히 헥터가 지배했다.

헥터가 무실점으로 호투하자 6회 기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에 성공했다. 승패를 가른 6회 선두타자로 나선 강한울의 기습 번트는 결정적이었다. 번트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수비까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한울의 번트 성공은 코프랜드를 흔들었다.

KIA 타이거즈 김주찬 Ⓒ뉴스1(자료사진)

문제는 팀의 핵심 선수인 김주찬의 선택이었다. 코프랜드의 초구를 3루 번트를 하며 완전히 흔들고 말았다. 김주찬이라는 점에서 뒤에서 수비를 하던 3루수 히메네스가 아웃을 시키기는 어려웠다. 상상도 못한 연속 번트 안타가 나오며 코프랜드는 흔들렸다.

나지완과 승부하지 못하고 볼넷을 내준 코프랜드는 필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3-0까지 점수가 멀어졌다. 이범호의 적시타까지 이어지며 4-0까지 경기를 벌린 기아는 대량 득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사 1, 3루 상황에서 한승택의 깨끗한 안타 타구를 1루 주자인 이범호가 몸으로 막아내며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기아는 치고 달리기 작전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2루수가 2루 베이스로 향하는 사이 공은 텅 빈 1, 2루 간을 뚫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뛰기만 하던 이범호는 타자가 친 타구를 몸으로 막아내며 자신만이 아니라 득점 상황까지 무산시키고 말았다. 최소한 2, 3점 이상을 더 뽑으며 코프랜드를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범호의 주루 실책 하나가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4-0 상황에서 7회 헥터는 위기를 맞았다. 선두 타자를 안타로 내준 후 오지환의 잘 맞은 타구를 이진영이 잡아내지 못했다면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고졸 루키 이진영은 콜업된 지 이틀 만에 완벽한 펜스 플레이를 통해 멋지게 타구를 잡으며 엘지의 반격을 막아냈다.

전 이닝에서 대량 득점에 실패한 후 안타를 내주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진영의 이 환상적인 수비 하나는 헥터가 7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헥터는 7이닝 동안 119개의 투구수로 7피안타, 6탈삼진, 3사사구, 무실점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안타도 많았고, 사사구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기관리 능력과 이번 기아가 호수비를 많이 보여준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헥터 역시 전날 많은 투수들이 등판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모습이 기아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KIA 타이거즈 이범호 Ⓒ뉴스1(자료사진)

8회 기아가 추가점을 뽑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도 안 되는 주루 실책이 흐름을 끊었다. 나지완을 대신해 대주자로 나선 윤정우가 무사 2루 상황에서 타자가 이범호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리하게 주루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윤정우는 다시 한 번 깊은 리드를 하며 견제사로 흐름을 망치고 말았다.

올 시즌 끊임없이 나오는 이 황당한 상황은 답답할 정도다. 오준혁도 그렇고 윤정우도, 팀의 핵심 타자가 타석에 있는 상황에서 발 빠른 주자들이 무리하게 리드를 할 이유가 없음에도 팀 공격의 흐름을 망치는, 센스 없는 주루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단순히 선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기아의 주루 코치의 무능이 다시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경기는 기아의 5-1 승리로 끝났다. 최영필이 1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고 1이닝을 틀어막아주었고, 위기 상황에 약한 심동섭이 불안한 투구를 보이기는 했지만 추가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하며 기아는 귀중한 승리를 거뒀다.

흔하게 나왔던 수비실책이 없었고, 선발이 무너진 상황에서 헥터는 진정한 에이스로서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팀 상황을 이해하고 에이스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헥터의 호투는 기아에게 다음 경기를 대비할 수 있는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이번 경기에서 헥터만큼이나 주목받아야 할 선수들은 바로 신인들인 우익수 이진영과 포수 한승택이었다. 기아도 이제는 화수분 야구를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인들의 뛰어난 실력은 기아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신인들이 서로 경쟁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아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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