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강남역 살인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에 의한 사건으로 판단한 경찰과 ‘정신질환과 범죄행위’의 위험성에만 집중 보도하는 언론에 제동을 걸었다. “일상의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로 한 범죄”라는 규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은 31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확산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된다”며 <사회적 약자 대상 혐오 및 범죄 발생에 대한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나라키움 저동빌동 국가인권위원회 새 청사에서 열린 제16차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성호 위원장은 강남역과 부산에서 발생한 길거리 폭행사건과 관련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 및 강력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발생한 사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면식이 없고, 일상의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과 생명에 대한 여성의 불안감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특정 성(性)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표현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돼 왔고, 비하 또는 혐오 표현들은 일부 방송 및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호 위원장은 “경찰은 이번 강남역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에 의한 사건으로 판단하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 및 행정입원 등의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며 “이후, 많은 언론은 정신질환과 범죄행위의 위험성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당수 국민이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존재, 격리의 대상으로 예단해 이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인터넷상에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비하들이 난무하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 조성이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성호 위원장은 “해외에서는 인종, 장애인, 여성 등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 및 혐오 등이 실제 범죄 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혐오표현과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및 법적 근거 마련 등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각각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에 관한 법안>과 <형법> 제130조 ‘혐오 선동 및 폭력 행위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제·개정했다는 얘기다.

이성호 위원장은 “인권위도 이러한 비하 및 혐오 실태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올해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온·오프라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 혐오 문제뿐만 아니라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비하 및 혐오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와 이에 대한 국민 의식을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하고,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정책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성호 위원장은 “이번 사건이 참혹한 사건인 만큼 그 원인과 대책에 따른 사회적 논의와 예방책 마련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나, 이러한 논의가 특정 성(性)에 대한 혐오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배제로 확대되는 점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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