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귀신과 관련된 괴담이 많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은? 유럽에서 귀신이 출몰하는 흉가를 꼽으라고 할 때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영국의 볼리 목사관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표적인 흉가다. 한밤중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수녀 귀신이 출몰하는 흉가가 볼리 목사관.

그런데 흉가로 악명 높은 볼리 목사관에 도전장을 내미는 흉가가 <컨저링2>의 배경이 되는 영국 엔필드 흉가이다. 엔필드 흉가 사건은 영화 속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창궐한 사건이다. 단순히 장난감이 저절로 움직이는 차원을 넘어서서 침대가 통째로 공중부양하는, 영국 최악의 흉가 가운데 하나가 엔필드 흉가다.

영화 <컨저링 2> 스틸 이미지

엔필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영화에서는 집에 거주하는 두 딸이 위저보드를 가지고 논 것을 단초로 삼고 있다. 귀신이 저절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분신사바 놀이처럼 서양에서 귀신을 부르는 위저보드로 귀신을 초대하고는 위저보드를 침대 밑에 내버려둔 일이 귀신을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을 한 셈이다.

<컨저링2>에 나타난 귀신을 심령학으로 분류한다면 '지박령(地縛靈)'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이가 이승을 떠나야 하는데 저승으로 가지 않고 자신이 숨을 거둔 장소에 머무르는 지박령은, <디 아더스>에서 이미 죽은 사람인 니콜 키드먼이 살아있는 사람을 침입자로 간주하는 것처럼, 엔필드 가옥에 거주하는 가족들을 침입자로 간주하고 한밤중에 ‘내 집에서 나가라’고 고함을 치면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한편으로 <컨저링2>는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와 일부 접점을 갖는다. <컨저링2>에서 괴이한 심령 현상을 겪는 가족에겐 남편 또는 아버지가 없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나는 바람에 이혼한 집안이다.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의 에피소드 ‘기계령’에서 홍은희가 연기하는 예선 역시 남편이 없거나 없다시피 한 존재로 묘사된다. 두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겪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컨저링 2> 스틸 이미지

아니, 어쩌면 공포영화에서 아버지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곡성>의 종구(곽도원 분)는 아픈 딸을 낫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딸을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무위(無爲)로 돌아가지 않던가. <컨저링2> 또는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가 아버지가 부재해서 공포를 겪는 공포라면, <곡성>은 아버지가 있음에도 아버지가 공포를 극복하는 데 있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 공포영화에서는 여성이 공포를 극복하거나 <컨저링2>의 에드, 로레인 부부처럼 타자가 개입하면 개입되었지, 공포를 극복하는 데 있어 아버지가 설 자리는 없다. 최근 공포물에서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있다고 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묘사되는 점은 요즘 설 자리가 점점 위축되어가는 아버지의 위상을 오버랩하기에 충분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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