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9일 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다며 한 청년이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부턴가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은 기자들을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병역거부자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씩 보는 자리로 변해 있었다. 은국의 기자회견 역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혹은 은국을 잘 모르더라도 은국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재미있고 발랄한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은국이는 의외로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자칫 필요 이상으로 근엄해 보이거나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정장을 입고 병역거부를 선언한 병역거부자들이 그동안 없었기도 했지만, 평소의 은국의 옷차림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정장을 입은 은국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국이는 평소에 그를 어디에 데려다놔도 눈에 확 띄는 독특한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회견에서 지지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첫마디를 은국의 첫인상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는 펑퍼짐한 천조가리같은 바지나 아니면 치마를 입고 있었고, 땡땡이 무늬의 착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있기도 했고, 삭발하다시피 한 뒤통수에 ‘No War’를 염색해서 다니기도 했었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은국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앞에 나서서 요란하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이 맨 앞에 서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느 순간 스윽 몸을 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의 질서에 자신을 맞춰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해 바그다드에 가는 은국이를 보면서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 친구 참 나대고 다니는 거 좋아한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좀 더 고백해보자면 부러움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주목을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병역거부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의 은국이 인터뷰를 보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열린 병역거부운동의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는 은국이를 보면서 같은 예비병역거부자로서 묘한 질투심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었다. 은국이는 그렇게 이라크에 다녀오고 팔레스타인에 다녀오고 내가 해보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 후 은국이가 병역거부를 그만 둘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과 싸운 사진이 채증되어 잡혀가서 한동안 갇혀 있었는데, 그 경험으로 감옥가는 것이 너무도 싫다는 이유였다. 그 자유분방한 성격이 감옥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쓰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럼 그렇지 한의사라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니 결국 쉽게 포기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은국이는 잊혀져갔고 나는 그동안 병역거부로 감옥을 갔다오게 되었다. 여러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역거부를 대하는 나의 느낌은 서서히 귀찮음으로 변해갔다. 병역거부자들은 나에게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고객이 되어버렸다. 감옥에 가야 하는, 혹은 감옥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고도의 감정노동이었고 감정노동에 익숙지 않은 나는 이내 지쳐버렸던 것이다. 친구라며 기꺼이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안된다면 철저하게 적정한 거리를 두며 그의 마음고생에 무관심하고자 했다. 나도 잘 살고 나왔는데 다들 알아서 자기인생 잘 살겠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 은국이가 찾아왔다. 다시 병역거부를 하고 싶다고. 그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했었고, 은국이 또한 과거에 한차례 자신의 병역거부 선언을 번복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은국이는 예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비록 여전히 눈에 띄는 옷차림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은 그대로였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예전처럼 그렇게 휙 선언했다가 휙 접어버리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지난 2월 19일, '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는 없다'는 양심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은국씨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은국이의 병역거부 소견서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주었던 감동과는 살짝 다른 충격을 주었다. 망각. 은국이가 부여잡고 있던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을 나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집단적으로 그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때, 그리고 도둑놈처럼 몰래 떠나버린 자이툰 부대. 전쟁을 반대하고 내가 속한 국가가 침략전쟁에 파병한다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마음들은 어느새 시들어갔다.

나는 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사실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리고 전쟁 중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일상은 변한 것이 없다. 목이 아프게 이라크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떠들었지만,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었던 것이다. 지구 저쪽 편에서의 슬픔을 우리도 느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슬퍼하되 나는 나의 위협받지 않는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누리고 지내왔다.

자신이 도망쳐 나온 곳에서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과 도망칠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은국이의 나지막한 말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아무도 학살을 막을 수 없었고, 한국군 파병마저도 막을 수 없었던 무력감이 부끄러웠다는 은국이의 말이 내 기억 저편에 버려져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운다. 나는 어느덧 감옥에 갔다온 후 내가 병역거부를 해야 했던 이유들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은국이는 남들이 이제 다 잊어가고 있는 이라크의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파병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것이다.

마치 전쟁이 일어나면 세상이 지옥이 될 것처럼 호들갑 떨었던, 파병을 하고 나면 전범국가의 국민으로 창피해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결국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침략전쟁의 파병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6년이나 지났고, 전쟁을 일으켰던 부시마저 떠났고, 자이툰 부대도 돌아와 버린 마당에 이미 이라크파병은 철지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라크 사람들은 지난 전쟁의 참혹함을 삶의 모든 곳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을 테고, 은국이처럼 한국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차마 지워버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냥 지나간 일로 치부해버리고 이라크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도 모두가 잘살면 되는 거지 하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제라도 다시 물어봐야겠다. 나는 파병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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