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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 이주민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것 같다”[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뉴욕에서 만난 수많은 이민자들, 그리고 민권센터 인터뷰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6.05.30 10:12

5월2일부터 5월 16일까지 대략 2주간 미국 뉴욕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휴가겸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큰 목적은 힘들게 암투병을 하고 있는 중학교 시절 친구의 병문안이었지만 내심 그동안 노조활동하면서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 위한 이유도 컸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영어라고는 인터넷강의로 출퇴근할 때 반쯤은 귀로 흘려들으며 들었던게 전부라 걱정반 설렘반의 여행이었지만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정말 가야할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2주간 센트럴파크나 자연사박물관처럼 유명한 관광명소도 많이 둘러봤지만 그간 이주노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지 뉴욕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는 이민자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브루클린에서 택시를 탄 기사 분은 네팔 카트만두에서 온 이주노동자였고 일본라면을 먹으러간 식당에서는 일본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나이든 일본인 아주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네일아트나 마사지샵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민자 출신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일본, 중국, 네팔, 한국,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뉴욕은 여러 가지 야채가 어우러진 샐러드볼(SALAD BOWLS)이라는 별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짧게 나누는 대화로 뉴욕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고 지인의 소개로 뉴욕 퀸즈 플러싱지역에 위치한 민권센터라는 NGO단체를 여행 마지막 날 방문했다. 급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한시간 가량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차주범 민권센터 교육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민권센터의 역사, 활동, 쟁점, 한국이주운동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를 짧게 요약해 담아보려고 한다.

   
▲민권센터 입구

Q. 민권센터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 좀 궁금하다.

민권센터의 역사에서 故 합수 윤한봉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단체의 설립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5.18 최후의 수배자”로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전역을 순회하며 1984년 “재미한국청년연합”을 결성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 통일 국제연대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일구는데 헌신을 다하셨기 때문이다. 1984년에 선생님이 뉴욕에서 민권센터의 전신인 “뉴욕청년교육봉사원(이후 청년학교로 개칭)”을 설립했다. 2009년 설립 25주년을 맞이해 현재의 단체명인 민권센터로 개칭했고 현재 상근직원이 20여명에 1년 재정규모가 170만 달러에 달하며 커뮤니티 권익증진과 정치력 신장을 위한 활동, 교육, 청소년프로젝트, 문화 활동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1992년 LA폭동이나 반이민 정서로 인한 이민법 개악이 있을 때마다 민권센터는 교육활동과 간행물 발간, 캠페인, 신문광고등을 통해 반이민 논리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Q. 한국의 이주운동은 고용허가제 문제나 출입국관리법, 단속문제 등에 집중해온 측면이 큰데 미국에서의 이주운동은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지 궁금하다.

크게 네 가지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헌법적 권리를 포함해 이주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권리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같은 연장선상에서 평등한 기회의 균등이 주어지는가, 세 번째는 정부 정책이나 혜택으로부터 충분한 접근성이 주어지는가, 네 번째는 이를 위한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어 있는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쟁점을 살펴보면 연방, 주, 시 단위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방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민법이다. 최근 가장 중요한 이민법 개정이 1965년과 1986년 두 차례 있었다. 1965년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이민법 개정은 아시아국가의 쿼터제 폐지와 가족초청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1986년도의 이민법 개정은 서류미비자(Undocumented people)중 자격조건이 되는 절반 정도를 합법화하면서 서류미비자를 채용하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조항이 생겼다. 1990년대 NAFTA가 체결되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오면서 이민법개정에 대한 초당적인 합의가 있었지만 2001년 9.11이 발발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이민법 개정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이 국회에서 무산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 안에 이민법을 개혁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밝혔지만 실제로 강력히 추진을 하진 못했다. 미국의 경제가 상당히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류미비자 뿐만이 아니라 전체 복지시스템의 개혁과 경제구조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이민개혁이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을 해왔다. 실리콘밸리의 50%가 아시안계일정도로 이민노동력이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Q. 그렇다면 연장선상에서 오바마 정부의 드림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궁금하다.

드림법안의 경우는 부모님을 따라서 미국에 온 서류미비학생들을 구제하자는 지극히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 드림법안이 통과되지 않았고 2012년6월 15일 서류미비학생 추방유예 행정명령(Daca)을 실행했고 당시 기준으로 5년 이상 거주했고 16세 이전에 미국에 들어왔고 만30세가 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간 유효한 추방유예와 노동허가를 부여했다. 전국적으로 120만명의 잠재수요자가 있었고 그중 70만명이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4년 11월 20일에 제2차 행정명령 Daca plus를 발표하면서 만30세라는 나이제한을 풀고 신청자의 입국범위도 2014년까지 확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합법적인 시민권을 가진 자녀의 부모도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해서 전체 대상자가 49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 행정명령은 실행되지 못했는데 공화당이 포괄하고 있는 텍사스 주를 포함한 26개주에서 헌법소원을 냈고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드림법안은 시작은 매우 창대했으나 120만명 정도를 구제한 1차 행정명령으로 끝이 났고 다음 행정부 출범하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이민개혁의제를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서 동력을 확보하는 고비처가 될 것이라 본다.

Q. 그렇다면 연방차원의 드림법안 외에 주차원이나 시차원에서는 어떤 이슈가 있는지 알고 싶다.

뉴욕주 차원에서 이민자 학생들의 낙제율이 3배 이상인데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는 요구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뉴욕시의 경우 이민자 대학생들의 경우 재정지원을 거의 못 받고 있는 문제나 이민자 법률서비스, 영어교실, 이민자 성인을 위한 직업교육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시 전체 인구 중 이민자가정이 67%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예산에서 이민자들을 위한 이민자 기회증진예산(IOI) 재원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주요한 이민운동의 현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역량을 투여한 분야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정치적강화이다. 뉴욕시의 아시안 인구가 15%인데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평등한 재정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것으로 APA VOICE라고 해서 18개 아시아(네팔·중국·인도·한국 등) 단체를 모으고 선거국면의 투표격려운동, 정치적 집단화, 권리옹호 운동 등을 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이주운동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린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말 긴 호흡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처음 이민자운동이 시작할 때 미국노총(AFO-CIO)에서도 반대가 심했었지만 지금은 여러 노조에서 이민자들을 조직하려고 한다. 뉴욕 같은 도시에서는 이민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미국이 다인종사회라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민이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공감대로 만들어낼것인가 라는 것이 관건이다. 허울뿐인 단일민족사회라는 것을 극복하고 이민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제도적 변화를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 제 막연한 추측이다. 스스로 미국에서 이민자운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출입국정책을 보면 정말 부끄럽고 법무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주민들에 대해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덧붙여서 현장활동도 매우 중요하고 누군가는 해야될 일이지만 앞으로 실력대결이 될 수밖에 없고 연구나 정책활동을 통한 양적, 질적 확대를 이루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의 이주운동도 인프라를 더욱 확대해서 현장 노동자들과 호흡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처럼 한국에도 대학교에 이민과 관련된 학과가 생기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주범 교육부장과 함께 찍은 사진, 민권센터 글씨는 故 신영복 선생님께서 써주신 것이라고 한다.

나눈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담지는 못했지만 사전예약없이 방문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신 차주범 교육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면서 오늘 추천할 노래는 뉴욕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노래! Jay-Z & Alicia Keys - Empire State of Mind 이다. 제목은 생소하더라도 후렴구에 나오는 뉴욕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이 노래! 하고 따라 부르게 될 것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pjww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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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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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주범 2016-05-31 11:29:30

    잘 읽었습니다. 박진우 사무차장님 만나뵙게 되어 저도 많이 반가웠습니다. 뉴욕에서 차주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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