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발간됐다. 70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이 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각종 ‘기관’들이 생산해 낸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큰 반향 속에 방송됐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에 많은 빚을 진 결과물이었다. 숨겨져 있던 진실의 조각들을 맞춘 이들은 박다영, 박현진 씨, 박수빈 변호사 등 ‘진실의 힘’이라는 시민단체와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였다.

“2년 간 세월호를 취재한 거의 유일한 기자”로서, 그 누구보다 지치지 않고 묵묵히 ‘세월호 참사’를 취재해 온 정은주 기자는 그럼에도 ‘언론의 반성’을 먼저 이야기했다. 28일 오후 4시, 안산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열린 <2016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세월호 참사 2주기 특별섹션 ‘세월호, 그리고 멈추어 버린 시간에 대한 기록>에서 그는 “언론 스스로 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작업 자체는 언론인으로서 굉장히 뼈아프다”고 고백했다.

28일 오후 4시, 안산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2016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2주기 특별섹션 ‘세월호, 그리고 멈추어 버린 시간에 대한 기록>에서 정은주 기자(맨 왼쪽)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정은주 기자는 “세월호 참사 초기 3일을 본 기자와 보지 않은 기자는 참사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다르다. 3일 간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구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구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을 취재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도 굉장했다. 현장에 가면 (구조세력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정부가 500여명을 투입한다는 보도가 나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저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경계선’(2014년 4월 19일)에 딱 도착했다. 이미 아무도 인터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라는 걸 밝히는 순간 욕설이 나오는 상태였기 때문”이라며 “월요일 아침에 차를 타고 서울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기자 생활한 게 12년인데 난 뭔가. 이 어마어마한 사건 현장에서 정말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나는 뭔가. 나는 기록하는 자(기자)인가’… 이런 고민이 굉장히 뇌리에 깊게 남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 보고도 ‘어떤 것도 취재할 수 없었던’ 무력함을 느꼈지만, 정은주 기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수사와 재판을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재판을 꼬박꼬박 가서 보도하겠다는 한겨레21의 원칙도 있었다. 물론 처음 생각대로 완벽히 된 것은 아니었지만, 세월호 재판에 대한 보도가 지속되는 몇 안 되는 언론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진행한 ‘도보 순례’에 한겨레21이 ‘초대’ 받았던 이유다. 정은주 기자는 그 당시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으로 꼽았다.

정은주 기자는 “2년 간 세월호를 취재한 거의 유일한 기자일 텐데 그럴 수 있었던 힘은 ‘처음 (진도에) 내려갔을 때의 반성과, 그 길(도보 순례)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덕”이라며 “새벽 5시에 이름 모를 주유소 앞에서 모여 걸을 때조차도 함께 하는 분들이 있었다. 전혀 외롭지 않았다. 전국에서 (참사를 기억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이 작업을 붙잡고 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세월호 진실에 대해 조금 더 추적하고 기록해 보자는 결정은 한겨레21이 했지만, 사실상 우리 언론은 팀을 만들어서 그걸 전폭적으로 지지할 만큼의 역량이 없는 거다. 기록이 너무 많아 풀어내기 위해서는 한 팀이 필요한데 언론은 이런 팀을 구성할 수 있는 의지도 역량도 없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헤매고 있을 때 ‘진실의 힘’이라는 시민사회단체가 기꺼이 자금, 사람, 지식을 다 제공하면서 이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스스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이 작업 자체는 언론인으로서 굉장히 뼈아픈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과 이를 만든 진실의 힘과 박수빈 변호사는 칭찬받아야 하지만 이것을 언론이 (스스로) 하지 못했다는 건 굉장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직도 세월호는 진행 중이고 여전히 진실을 밝혀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 언론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깊은 반성을, 한 사람의 기자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고 있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사진=연합뉴스)

“막 변호사가 된 새내기 변호사”였던 박수빈 변호사는 ‘시간도 많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 유익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세월호, 그날의 기록>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험생이었던 그는 자연히 사고 당시 관련기사를 거의 읽지 못한 채로 참사를 사후적으로 돌아보게 됐다.

박수빈 변호사는 “2015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세월호 문제가 안 끝나고 있다는 거다. 기사는 분명히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는 거였다”며 “각 기관들은 각자의 목적에 기여하는 기록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빈 공간이 많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밝히기 쉽지 않다. 그동안 언론이 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법률가가 개입해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기록을 분석하고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살을 덧대주는 게 언론이 할 수 있는 취재 역량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할 때 소위 ‘기억하자’, ‘잊지 말자’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추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