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관련, 정부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20대 국회 개원 즉시 ‘통합방송법안’ 논의를 시작해 정부의 심사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4일 “(방송통신기업들은 그 동안) 공존하기보다 일방의 이윤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하는 식으로 (인수합병을) 해왔다”며 “정부가 20대 국회에 정부입법안을 제출하면 정책질의를 통해 심사를 막아내거나 대체입법안을 제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또한 국회가 통합방송법안을 논의한 뒤 정부가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SK는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그해 12월 정부에 인수합병 심사를 요청했다. SK텔레콤을 통해 CJ오쇼핑이 보유한 CJ헬로비전 주식을 인수하고,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겠다는 것이 SK 계획이다. 그러나 첫 관문인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는 6개월이 가깝게 지나도록 ‘합병 이후 통신에서 방송으로의 시장지배력 전이’와 ‘경쟁제한성’에 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SBS, KT, LG유플러스의 반대에 청와대와 공정위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정위는 빠르면 5월 말, 늦어도 6월 10일 전후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정위가 SK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문제는 그 이후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가 심사에 착수하고,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자료 검토를 시작하는 시기는 20대 국회가 개원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소야대 국회가 현재 규제공백 상태로 제출된 통합방송법안 논의를 시작한다면 이는 정부가 심사를 멈춰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된다. SK와 CJ가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는 현행 방송 관련 법령에 IPTV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상호 겸영과 소유규제가 ‘시장점유율 33% 제한’뿐이기 때문이다.

반대입장에 서 있는 진영에서는 그 동안 “국회가 통합방송법안 내 소유규제를 논의한 뒤 정부가 인수합병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언론‧노동‧사회운동단체들이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을 계기로 구성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공동대표 김환균 전규찬 이해관, 이하 방송통신실천행동)의 집행위원장인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24일 노회찬 원내대표와 면담에서 “통합방송법안에는 소유규제가 시행령으로 위임돼 있는데, 이는 국회가 논의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루 빨리 논의해서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방송법의 기본철학인 공공성은 그 동안 끊임없이 훼손됐지만 여전히 방송법의 기본철학은 ‘방송은 공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인수합병 심사를 끝낸다면, 그 결과로 통합방송법안과 시행령이 만들어지는데 (국회가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은 채로 정부가 인수합병을 승인하면) 방송의 공공성을 완벽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사업자가 살아남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공론장에 대한 문제다. 언론과 방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지 않고 산업의 영역에 넘겨주는 것”이라며 국회 논의를 촉구했다.

이 같은 요청에 노회찬 원내대표는 “시장에는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도 있다. 그런데 공존보다는 일방의 이윤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하는 식으로 (사업자들이 사업과 인수합병을) 해왔다”며 “통합방송법안이 폐기되고, 정부가 법안을 내놓으면 입법을 둘러싼 활동이 있을 것이다. 정책질의나 대체입법을 통해 심사 중인 상황을 막아내는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원포인트 입법 발의 등 다양한 경우를 상정하고 반대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사진=미디어스)

추혜선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장(20대 비례대표 당선자)는 “입법공백 상태에서 진행되는 행정절차를 막을 현실적인 방법이 중요하다”며 “이번 인수합병은 그 동안 방송통신 영역에서 있었던 것 중 가장 폭력적이다. SK가 어떤 입장과 사업계획을 갖고 있는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부가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고 행정부에만 심사를 맡긴다면 그것은 중대한 과실이라고 생각한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면 정의당이 책임 있게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CJ헬로비전 23개 권역의 원‧하청 노동자들과 같은 권역의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우려한다. 김진억 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국장은 “방송통신 쪽 기업들은 상당수 업무를 외주화, 다단계하도급으로 한다. 방송통신의 공공성은 노동의 권리적 측면에서, 좋은 일자리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대성 대외협력국장은 “23개 권역에 있는 CJ헬로비전 협력업체 노동자는 2300여명이고, SK브로드밴드에는 4천명이 넘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있다”며 “원청인 SK는 ‘우리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다’라며 발을 빼고 있다. 이제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고용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인수합병 이후, SK가 케이블을 버리고 IPTV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케이블의 ‘지역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춘일 변호사(법무법인 유림)는 “케이블은 지역에 기반한 방송이다. SK는 IPTV를 위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 합병되면서 지역채널의 지역성과 언론의 다양성은 줄어들었다. 지금 지역채널은 획일적으로 가고 있다. 지역과 세대 간 정보격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관련 법제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부 소관이지 국회가 건드릴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번 합병 건은 재벌과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심사를 통해 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공백 속에 사업자들 주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선택권도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령만 고려하면 SK와 KT는 이동통신 결합상품 등을 활용해 국내 유료방송가입가구(2786만)의 3분의 2(1857만)까지 점유할 수 있다. 2천만에 가까운 가입자들이 KT 또는 SK가 편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15년 말 기준 KT, KT스카이라이프, SK브로드밴드, CJ헬로비전의 시장점유율 합은 55.10%다.

▲24일 국회 본관 정의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노회찬 원내대표와 방송통신실천행동 면담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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