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씀이 있다. '더 살면 뭐 하누. 그저 오늘 밤이라도 자다가 조용히 가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말씀을 하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당신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커져 가는 듯 보인다. 끼니마다 밥보다 더 많은 양의 약을 한 움큼씩 드시고, 행여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긴다싶으면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가신다. 그렇게 말씀과 다르게 '건강 염려증'으로 삶에 대한 열렬한 욕구를 표출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나이 듦이 무서워진다. 그 무서워짐의 내면에는 '뭐 저 나이 돼서도 저렇게 삶에 연연하나?'라는 선입견이 있다.

완의 내레이션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가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았음에도 극의 내레이션을 난희(고두심 분)의 딸 완(고현정 분)에게 맡긴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보는 바로 저 선입견에서 비롯된다.

급격한 노인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초고속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와 달리, 우리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다. 농경사회 속 '어르신'이었던 노인은 어느 틈에 산업사회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가, 이즈음에는 빈곤 노인과 어버이 연합으로 상징되는 소통 불능의 꼰대들로 취급받을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노인들은 누군가의 엄마 혹은 집안 어른으로, 주로 맡는 역할이 '하드 캐리'한 '안티'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목소리 높은 악독 시어머니의 대명사였던 박원숙처럼 말이다. 그런 그들을 노희경 작가는 '인생'이 있는 노년으로 불러온다. 그래서 박원숙은 경우 없는 시어머니에서 돌아온 거울 앞의 국화 같은, 배포 있고 그 배포만큼이나 아량도 넓은 동창생 영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악독한 시어머니가 넉넉한 마음을 가진 노년의 멋쟁이로 되살아나는 이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희경 작가는 난희의 골칫덩어리 노처녀 딸 완이를 개입시켜,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정을 마음껏 풀어낸다. 완이는 엄마 난희를 비롯하여, 엄마의 동창생 이모들이 갖가지 해프닝을 벌일 때마다 시청자 그리고 우리 사회 속 시선에 따라 한껏 '욕'을 해댄다.

그렇게 완은 외진 시골 도로에서 더 이상 운전을 못하겠다며 자신을 불러낸 희자(김혜자 분) 이모와 정아(나문희 분)이모에게, 노인네들이 집에나 있을 것이 오밤중에 운전을 하느냐부터 시작하여 온갖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해댄다. 말은 완이의 입에서 나오지만, 사실 그들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도 그리 다른 건 아닐 터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죽기에 좋은 날이라며 빌딩 옥상에 올라간 희자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도 그럴 만도 하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쓸쓸한 노년의 삶이다. 그들의 여전한 악다구니와 해프닝이 '뭐 나이 들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어 더 씁쓸해진다.

그 지점에 희자와 정아의 교통사고가 있다. 한밤중 도로에서 <델마와 루이스> 기분을 내던 정아와 희자는 운전 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만다. 그리고 너무 놀라 뺑소니를 친다. 운전도 못하는 노인네들의 주책맞은 한밤중 드라이브라는 상황을 뛰어넘은 이 사고를 통해, 작가 노희경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을 역설적으로 정의해 낸다.

빌딩 옥상에 올라 떨어져 죽으려다 떨어지는 자신 때문에 거리의 행인이 다칠까 걱정돼 한강 다리로 자리를 옮겼다가 경찰에 잡혀간 희자는 여전히 삶에 미련이 없다. 하지만 정작 정아와 함께 사고를 낸 순간, 그녀는 아직 자신이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아의 역설은 다른 지점에서 온다. 뺑소니를 친 사실을 안 완이 자수를 권하자 자신이 친 피해자가 늙어서 다행이라며 어깃장을 놓던 그녀. 하지만 완의 차 룸미러에 비친, 역시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자의 아직 끝나지 않은 노년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리고 노희경 작가는 이런 죽음의 역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징그러워해 마지않는 노년의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공감을 제시한다. 하지만 단지 공감에 그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여전한 열망을 깨달은 두 노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 자신을 깨달은 희자, 그녀가 선택한 다음 행보는 친구 정아 대신 교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로 자수하는 것이다. 아직 죽지 않은 남편과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세 딸이 있는 정아와 달리, 막상 자식들에게 유서 한 장을 적으려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걸리적거릴 것이 없는 자신의 삶을 핑계 대며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에 가려 한다. 정아 역시 다르지 않다.

늙은 두 친구가 손을 꼭 잡고 함께한 경찰서행은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아닌, 나이가 들어도 '이타적'일 수 있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어른인 그들의 여전한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후회하며 쫓아온 완이를 통해, 우리 역시 그 선입관과 편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만든다.

이제 4회이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년은 훈계나 하며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인정 투쟁'을 하는 뒷방 세대가 아니다. 얼굴의 주름은 자글자글할지언정 '내일 밭농사가 더 걱정인' 오쌍분(김영옥 분) 여사처럼 오늘의 삶에 펄떡이는 당대성이다. 완이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귀추가 주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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