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길을 막고 있던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입장과 관련, 박태환이 이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하자 대한체육회가 이 사안이 CAS 중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통합 대한체육회 정관 조항이 박태환을 리우 올림픽에 보내지 않기 위해 급조된 조항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태환의 항소에 대해 CAS는 대한체육회에 공문을 보내 이 안건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대한체육회는 지난 17일 밤 "박태환으로부터 그 규정을 개정해달라는 공식적인 의견을 받은 바 없으며,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참가에 대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바 없다. 따라서 박태환 선수의 중재 신청서는 이와 관련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중재 대상이 될 수가 없다고 본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때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근거는 대한체육회 정관 제 65조인데, 이 조항이 급조됐다는 것이 SBS의 취재 결과 확인된 것. 특히 놀라운 점은 문제의 조항이 만들어진 시점이 박태환의 CAS 제소가 온전히 이뤄질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던 시점이라는 점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통합체육회 정관의 분쟁 해결 관련 조항인 제65조 제1항에는 '체육회 내부 또는 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 등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포츠 또는 제도와 관련된 분쟁은 체육회의 관할 기구 또는 별도의 규정에 따라 체육회에 설립된 조정·중재 기구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제2항에는 '제1항에 따른 관할 기구에 의한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항소하려는 경우에는 스포츠 관련 중재규정에 따라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할 수 있는 CAS에만 항소할 수 있다. 다만, 항소는 항소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21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 가운데 65조 2항이 대한체육회가 CAS에 ‘박태환의 요청이 없어 규정 개정 논의를 하지 않았고, 때문에 최종적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므로 이 문제는 CAS 중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었던 근거였다.

그런데 23일 SBS에 따르면 대한체육회가 CAS에 근거로 제시한 이 조항은 만든 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급조된 조항임이 확인됐다.

기사를 작성한 SBS의 권종오 기자는 보도에서 “나는 이 조항이 오래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지돼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지난달에 급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지난 3월7일 발기인총회를 개최해 정관을 확정했는데 이때 정관을 보면 보칙 제64조 이후에 바로 부칙으로 넘어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65조는 없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지난 4월5일 대한체육회는 창립총회를 열어 수정된 새 정관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정관에는 박태환의 사안이 CAS 중재대상이 아니라는 대한체육회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제65조를 포함해 제66조까지가 새로 포함됐다.

박태환(27)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대체 발기인 총회에서 새 정관을 확정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조항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갈등 현안이 워낙 많아 솔직히 박태환 건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박태환이 3월3일에 징계가 풀리면서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큰 이슈가 됐다. 그래서 이미 만든 정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스포츠분쟁에 관한 조항이 없었다. 박태환이 CAS에 항소할 경우 대한체육회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65조를 급히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한 선수의 명예회복의 꿈과 희망이 걸린 올림픽 출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민감한 시점에서 해당 선수에게 명백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항을 아무도 몰래 만들었다는 것.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어떤 법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어느 곳에서건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고, 특정 사안에 대해 적용할 조항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새로운 조항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당사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거나 그럴 수 있는 자의적인 해석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의 사안에 적용할 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새로운 조항을 만들면서 명백히 박태환에게는 불리하고 대한체육회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만들었다. 문제의 조항은 향후 박태환 외에 다른 선수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도 원천 봉쇄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가 많은 조항이다.

박태환(27)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체육회가 만든 조항대로라면 결국 대한체육회의 눈 밖에 난 선수가 중요한 국제대회나 거취 결정을 앞두고 CAS 제소를 위해 그 전 단계로 대한체육회의 결정을 구하는 요청을 했을 때 대한체육회의 입맛에 따라 최종결정을 차일피일 미룰 경우 해당 선수는 대항할 길이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대한체육회 정관 65조는 조항이 만들어진 시기나 내용을 볼 때 ‘박태환 죽이기’라는 진짜 의도를 지닌 조항이며, 더 나아가 선수 개인의 인권 내지 기본권을 부당하게 박탈할 가능성이 높은 위헌적 소지가 있는 조항이다.

그동안 박태환이 이런저런 문제로 대한수영연맹은 물론 대한체육회에도 미운털이 박혔다는 말은 정설로 통한다.

박태환의 사안을 다루는 대한체육회의 행태를 종합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관련된 스포츠 관련 분쟁을 다루는 데 있어 국제적 원칙이나 판례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 분쟁을 다룰 CAS와 같은 기구의 심사를 받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모쪼록 대한체육회를 위시한 대한민국 체육계가 이제라도 ‘염치’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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