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게 목소리는 지문과도 같다. 버리려야 버릴 수 없고,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어쩌면 가수에게 있어 성공이란 1위 횟수나 음반 판매 실적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에 지장을 찍을 수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김경호는 지문이 아주 뚜렷한 가수 중 하나다. 아무리 목소리를 변조해도, 노래 부르는 스타일을 달리해도, 지문을 바꿀 수는 없다. MBC <복면가왕>에 출연한 그가 1라운드 때부터 정체를 들킨(?)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귀로 듣는 ‘소리’가 비슷할 순 있어도, 마음으로 느끼는 ‘울림’까지 똑같을 순 없다. 세상에 김경호는 한 명이기 때문이다.

MBC <일밤-복면가왕>

김경호의 <복면가왕> 출연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그 이유다. 몇몇 시청자들의 경우는 김경호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면서 변해버린 그의 창법에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는가 하면, 무너진 전설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득보다 실이 더 많았을 그의 도전은 결국 ‘가왕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패배에서도 빛난 김경호의 도전정신

<복면가왕>의 가장 큰 재미가 반전에 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틀림없이 가수라고 생각했던 출연자가 알고 보니 배우였다던가,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아이돌로 정체가 밝혀지면 그 충격은 배가 된다. 외모만 예쁜 줄 알았던 가수의 진심어린 노래 한 자락, 강한 이미지의 래퍼가 선사하는 감성 짙은 멜로디에 시청자는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개성이 뚜렷한 가수가 무대에 오를 경우 김이 빠지는 경우도 생겨난다.

하지만 <복면가왕>은 단순한 ‘추리쇼’가 아니다. 반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복면개그’나 ‘복면드라마’가 아닌 ‘복면가왕’이지 않은가. 비록 목소리를 숨길 수 없거나 정체가 금방 들통 나더라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꾸민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청자 또한 많이 있다.

MBC <일밤-복면가왕>

22일 방영된 <복면가왕>에서 김구라가 남긴 한마디는 이런 시청자의 마음을 잘 대변한다. 김구라는 ‘램프의 요정’의 정체가 김경호로 좁혀지자 “저런 유명한 가수가 나와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경호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맞다. 김경호에게 있어 <복면가왕> 출연은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성대 결절 이후 달라진 그의 창법은 김경호의 전성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대중의 마음을 100%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그가 도전자 입장에서 <복면가왕>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김경호는 “가장 부담이 되는 건 '식상함'”이라며, “'맨날 저 친구는..' 이런 소리 듣는 게 싫다. 계속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도전하지 못했던 노래들 계속하면서 앨범이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밝혔다.

MBC <일밤-복면가왕>

덧붙여 김경호는 “속이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준비한 3곡 다 부르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목소리만으로 세 번째 무대까지 세워주시고 점수를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복면가왕'의 소중한 경험을 발판 삼아 계속해서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겸손함을 내비쳤다.

잘하는 것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늘 변신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의 진심 앞에서 과연 누가 “예전만 못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속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 김경호. 그는 비록 가왕에 오르지 못했지만, 시청자의 마음한 구석에 자신의 지장을 ‘꾹’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도전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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