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방송 80년 KBS 대기획 <남자의 몸> 세번째 '제2의 사춘기, 갱년기'편의 한장면이다.

'비장애인복지론'이나 '영화 속 비장애인 이야기', '나는 나쁜 비장애인이고싶다' 는 식의 책 제목을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연구하거나 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말하는 책은 있어도,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을 연구하거나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책은 '아직' 없다. 동성애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통계상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소외받는 집단에 대해 입을 열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성에 관한 연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지난 몇년 동안 남성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TV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남자의 몸>은 KBS가 방송80년 대기획으로 마련한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이다. 1부 '남자의 증거'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정확히 어떤 조건들을 갖췄을 때 한 사람을 '남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2부 '아담의 본능, 리비도'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의 남성들이 나와 남성에게 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조명했다. 마지막회 30일 방송에서는 남성 갱년기의 정확한 원인과 증상을 설명하고, 중년남성 8명이 갱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번 <남자의 몸> 기획에서 우리가 몰랐던 뭔가 대단한 의학적 지식들을 알려준 것은 아니다. 생물시간에 배웠던 지식이나 최근 신문에서 접했던 과학기사들을 재확인하는 정도였다. 2부에서 진행된 남성의 성욕을 알아보는 몇몇의 실험은 진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치는 따로 있다. 비나 권상우 같은 근육질 남성의 몸이 아니라 평범한 남성들의 몸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런 경험이 설명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남성도 여성만큼 '섹시한 몸', '위협적인 몸'에 대한 억압이나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나이대의 남성들이 속내를 드러내는 풍경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냥 '꼴통'들로만 보이는 느끼한 아저씨들도 속마음을 들어보니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렇게 남성들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입을 열때, 여성들의 말을 듣는 귀도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정희진 박사는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TV가 이렇게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를 끌어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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