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장이 록의 대선배 김경호마저 꺾고 복면가왕 수성에 성공하며 9연승을 달렸다. 그것도 음악대장의 강점인 폭발적인 고음 없이 거둔 성과라는 점이 놀랍다. 어떻게 보면 9연승보다 더 중요한 음악적 성과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복면가왕을 비롯해 모든 음악예능은 기승전고음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가수들은 승리를 위해서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엔 고음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음악대장은 지금까지 이끈 원동력 역시 지붕을 뚫을 기세로 끝도 없이 치솟는 드라마틱한 고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악대장이 가왕 결정전에 들고 나온 노래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였다.

MBC <일밤-복면가왕>

음악대장이 이제 길고 길었던 복면가왕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분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김연우의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대장이 부르는 잔잔한 <백만송이 장미>에 좀 더 집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심정을 대변한 것은 김현철이었다.

음악대장의 노래하는 태도, 가사 등에서 “무거웠던 짐을 다 내려놓는 듯한”이라는 말로 음악대장의 선곡을 해석했다. 그것이 김현철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 엠씨 김성주 외에는 누구도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분명 음악대장의 노래를 듣는 순간에는 뭔가 강력한 이별의 정서가 전달됐었다.

MBC <일밤-복면가왕>

그러나 정작 음악대장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 음악대장의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그 대답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복면가왕을 계속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겉으로 연승의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혹시 모를 새로운 가왕에 대한 배려와 예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특히나 가왕 결정전에서 만난 상대가 선대 김경호인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후자에 무게를 더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속내는 물론 음악대장 본인밖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음악대장이 어떤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든지 간에 대중은 아니 적어도 복면가왕 판정단들은 아직 음악대장을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음악대장은 이제 스스로 떠나려고 하더라도 대중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 강제 연승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쓸데없는 가정이겠지만 음악대장이 아닌 다른 낯선 복면가수가 이 노래를 똑같이 불렀다면 김경호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 영지를 이긴 김경호의 <해야>는 비록 음악대장을 넘지 못했지만 분명 강력하고 매력적인 무대였기 때문이다.

MBC <일밤-복면가왕>

어쨌든 결과적으로 음악대장은 그동안 보였던 그만의 강력한 무기 대신에 감성이라는 불확실한 도구로도 가왕의 자리를 지켜냈다. 그의 말대로 이 노래를 부르는 음악대장의 감성은 듣는 이를 빠져들게 하는 강인한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번 곡 역시 원곡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새롭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편곡의 힘 역시 완강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음악대장의 9연승은 기록적인 측면보다도 음악예능 혹은 경연에서의 고음 대결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경향을 적어도 이번 한 번이라도 깼다는 점에 있다. 마치 예전 나가수에서 이소라가 홀로 감성 외길을 걷던 그 묵묵한 발걸음이 음악대장에게 오버랩되기도 했다. 물론 음악대장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경향을 흔들었다는 것은 9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할 기록만큼이나 중요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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