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를 바라보는 안팎의 간극은 여전했다.

이병순 사장 체제 6개월을 맞은 KBS에 대한 거센 비판이 안팎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쪽은 KBS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고, 또 다른 한 쪽은 수신료를 거론하며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주장했다. 굳이 따지자면 전자는 시민사회단체·학자를 포함한 ‘외부’였고, 후자는 KBS ‘내부’ 구성원이었다.

▲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국제방송센터(IBC) 5층에서 KBS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한나라당 방송재편의 실체와 KBS’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송선영
한나라당이 신문법, 방송법을 비롯한 언론관계법과 공영방송법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공영방송인 KBS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KBS 보도에 대해 언론의 “최소한의 기능인 비판과 견제도 없다”는 등 공영방송의 역할론과 관련한 거센 문제 제기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국제방송센터(IBC) 5층에서 열린 KBS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 ‘한나라당 방송재편의 실체와 KBS’ 토론회에서는 언론관계법의 문제점과 공영방송에 주는 영향, 공영방송의 역할 등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공영방송으로서의 KBS 역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했지만, KBS의 아킬레스건인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 문제와 수신료 등을 포함한 재원 구조에 대해선 외부와 내부 구성원 사이 큰 이견을 보였다.

KBS 안팎의 큰 이견은 토론 후 이어진 KBS 내부 구성원들의 질의에서 잘 드러났는데, 구성원들의 주장을 크게 요약하자면 △KBS노조에 대한 비판을 이해할 수 없고 △KBS의 안정적 재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거였다.

한 KBS 노조원은 토론자로 참석한 박진형 한국PD연합회 정책국장의 정연주 전 사장 해임 과정 등을 포함한 과거·현재 KBS 노조 행보에 대한 비판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 토론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노조에 대한) 문제점만 늘어놓았는데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생각인지 그것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KBS 노조의 행보는 노조원 다수가 그렇게 하기를 원했고,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었다.

“직장, 임금 안정되지 않는다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어”

대전 KBS 노조 관계자는 정연주 전 사장 해임에 대한 속내를 다음과 같이 드러내며, KBS의 안정적 재원 구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연주 전 사장은 대한민국 역사에 묻혔던 진실에 접근하려 했고, 그런 부분을 KBS를 통해 보여줬다고 본다. 하지만 노조원들이 경영을 우려했던 것은 사실이다. 노조가 언론 노동자로서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직장과 임금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KBS는 사회 의제 설정에서 중요한 기제이지만 수신료 부분 등 재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분열될 수밖에 없다. 수신료를 가지고 정권과 한나라당이 장난치지 않을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에서 그야말로 진정성을 보이려는 노력을 모색한다면 어떤 게 있을지 말해 달라.”

“수신료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인상좀 주길”

▲ 김승수 전북대 교수. ⓒ송선영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 공영방송 노조 입장을 봐도 ‘시청자 우선주의’ 인데 KBS노조는 ‘내가 살아남겠다’는 KBS 지상주의인 것 같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수신료 없으면 어떻게 하냐’ 하지 말고, 공익을 수행함에 있어 KBS 역량을 생각하고, 먼저 국민을 생각하는 인상을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KBS노조가 사회 민주주의, 방송 민주주의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과 달리 지난 몇 년간 노조가 보여준 것은 ‘복지대박’이었다”며 “노조가 스스로 보수화되어 현 KBS 체제를 유지하는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냉정하게 판단해서 (KBS노조는) 삼성 이건희 회장 못지않은 파워를 가지고 있다”며 “역사적 책무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 기능과 가치, 사회의 공공성을 세우는 역할을 노조가 극명하게 떠맡아야 하지 않나. (그렇지 못하다면) 수신료가 무슨 필요 있겠냐”며 KBS노조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도 “KBS 노조원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 부분 공감하는 부분 있다”면서도 “여권의 추진 의도가 분명한 상황에서 정 전 사장의 해임 과정은 다른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 구성원들의 정 전 사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일련의 해임 과정을 보면 KBS 내부 문제가 아닌 정권의 노골적인 의도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KBS 구성원으로서 자괴감 섞인 성토의 목소리도 나왔다. 입사 13년차라고 밝힌 한 라디오PD는 “요즘만큼 KBS 구성원으로서 자괴감을 느낄 때가 없는 것 같다”며 첫 말문을 열었다.

“이병순 체제 후 진행되는 모든 의사 전달 체계와 보도·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도 그렇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드러났지만 외부에서 KBS와 노조를 보는 시각에 정말 마음이 착잡하다. KBS 안에서도 공영방송으로서의 언론노동자 위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본다. 시민들에게 이런 것들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언론노동자로서 13년 넘게, 노동자보다는 ‘언론’에 더 방점을 뒀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위치를 지킨다는 점에서 굉장히 부러움을 샀던 것 같은데 요즘 못 지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조직 안에서 언론보다는 ‘노동자’에 방점 두는 조직원도 있는 것 같다.”

▲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왼쪽)이 말하고 있다. ⓒ송선영

KBS 내부의 여전함과 간극

‘한나라당의 방송 재편이 이미 이뤄졌다’고 KBS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에서조차, KBS노조를 향한 비판을 이해할 수 없고, 시민사회단체가 정권과 한나라당이 수신료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모색할 수 있는지에 대해 되묻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KBS 내부의 ‘여전함’과 ‘간극’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은 “KBS 노조가 지닌 역사적 책무를 각인하고 있다”며 언론노조 및 시민사회단체와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언론관계법 등이) 보수언론과 공영방송 사수 노동자의 대립이기에 반드시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강구해 나갈 것이고 방법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 전 사장 해임과 이병순 사장 취임 과정에서 KBS노조는 불필요할 정도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수의 사원행동 구성원들만이 힘겹게 싸웠을 뿐이고, KBS노조와 대다수 구성원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귀에 따가울 정도로 구성원들의 ‘복지’와 ‘안위’만을 주장했다. 이러한 행보에 대한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 KBS 구성원의 말은, 지금 KBS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많은 이들이 KBS의 보도에 대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선 상황에서, KBS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를 향해 ‘수신료’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주문하는 구성원의 ‘떳떳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수신료 인상 등을 포함한 안정적 재원 구조를 논하기에, 적어도 지금 KBS의 모습은 부족함이 많다. 공영방송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못한 채 관영방송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제기된 상황에서, 안정적 재원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KBS의 주인인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1월 공식 출범한 현 KBS노조가 시민사회단체와 손을 잡고 공식적인 토론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여전히 KBS노조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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