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최근 클리셰가 되다시피 한, 사회정의에 눈을 뜬 영웅적 주인공이 우리 사회 권력의 카르텔인 재벌과 검찰, 법무법인을 상대로 정의를 실현하는 '카타르시스' 넘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기왕의 이야기들과 다른 점이 있다. 검찰에서 버림받은 변호사 조들호의 활약상을 주로 다루지만, 그 갈등의 변곡점에 존재론적 고민에 휩싸인 검찰과 법무법인의 상속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속자들의 딜레마

KBS 2TV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현실은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원서에 당당하게 자신의 친인척이 '법조계'에 있다는 걸 '스펙'으로 내세우는 세상이라지만, 현실의 불온함을 홍길동 같은 조들호의 판타지로 다룬 <동네변호사> 속 상속자-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신영일(김갑수 분)의 아들 신지욱(류수영 분)과 법무법인 금산의 대표 변호사 장신우(강신일 분)의 딸 장해경(박솔미 분)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도덕한 유산으로 인해 고뇌한다.

신지욱은 아버지가 대화그룹 정회장(정원중 분)과의 커넥션으로 차기 검찰총장 선발 과정에 흠집이 생기자 아버지를 설득하여 대화그룹과 결별 수순을 밟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장해경은 어린 딸이 금산의 자신보다도 아빠 조들호를 더 자랑스러워하자 마음이 변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한다. 재벌그룹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금산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진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법인으로 거듭날 기회를 얻자고. 16회, 큰형님처럼 생각했었다는 조들호의 표현이나 회상 장면에서 보여지듯, 이제는 변심한(?) 조들호도 신영일의 정신적 상속자였다.

하지만 이런 상속자들의 '도덕성 회복'을 통한 거듭남은 쉽지 않다. 드라마 속 악의 축은 '대화'라는 재벌에서, 이제 그런 재벌조차 손아귀에 쥐고 쥐락펴락하는 검찰과 법무범인이라는 숨은 실세로 옮겨간다. 아들조차 속이며 대화 회장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신영일과, 딸을 보호하려 애쓰지만 자신이 손에 쥔 대화라는 패를 포기할 수 없는 장신우는 그저 이익을 넘어 ‘내면화된 부도덕’의 주체이다. 그저 재벌에 이용당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들, 하지만 사건이 드러날수록 '몸통'이 되어가는 그 유산에 자식들은 우유부단하게 고뇌한다. 그들의 고뇌는 그저 부자, 부녀 사이의 혈연 문제만이 아니다. 대를 이거 '가업'을 계승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기득권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만화 같은 해결방식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드리워진 권력의 카르텔, 그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이 준 '대화'라는 패를 포기하지 않는, 아니 포기할 생각조차 없는 '법' 권력의 민낯은 이제는 구조화된 우리 사회 '갑'의 실체이다. 그들은 결코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모면하려 머리를 쓸 뿐.

푸치오 일가의 가업, '납치’

영화 <클랜> 스틸 이미지

이런 <동네변호사 조들호> 속 권력의 얼굴은 영화 <클랜> 속 아버지의 얼굴에 겹쳐진다. 씨족, 한패거리라는 뜻의 'CLAN'을 제목으로 한 파블로 트라베로 감독의 아르헨티나 영화 <클랜>은 '납치'를 업으로 삼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직에 있는 부인과의 사이에 3남 2녀를 둔 아르키메데스 푸치오(길예르모 푸란셀라 분)는 겉보기엔 자영업자이지만, 사실 군사정권시절부터 비밀경찰로 활약해(?) 왔으며 이제 군사 정권이 종식된 이후 자신의 일을 '사영화'하여 가업화시킨 인물이다.

그가 가업으로 삼은 일은, 1976년 군사정권이 시작되고 1983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이 패배하기까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3만 여명에 달했던 '납치, 감금, 고문, 살해'의 그 업이다. 푸치오는 두 명의 조력자와 거기에 자신의 아들을 합류시켜 이제 지역 유지나 그 자제를 납치해 돈벌이를 한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뉴질랜드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가업' 때문에 가출한 듯 보인다. 잘나가는 럭비 선수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친구가 아버지의 납치로 인해 살해당하자 잠시 방황하지만 아버지가 제공한 부에 곧 죄의식이 마비된다. 막내아들은 가업을 눈치 채고 큰형처럼 뉴질랜드로 도망가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듯 돌아와 기꺼이 가업에 합류한다. 선생인 아내도 두 딸들도 눈치 채고 자책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결국 진실을 외면한 채 일상에 매몰된다.

결국 푸치오 일가의 가업은, 경찰이 그들이 납치한 여성을 찾아 그들 집에 들이닥칠 때까지 계속된다. 푸치오 일가의 무시무시한 범죄는 결국 군사정권이 남긴 정신적 유산 혹은 후유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유행하던 킹크스(The Kinks)의 ‘써니 애프터눈(Sunny Afternoon)’,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톰스톤 새도우(Tombstone Shadow)’ 등의 경쾌한 팝송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범죄는 그 일상성으로 인한 잔혹감을 부각시킨다.

부도덕의 상속

영화 <클랜> 포스터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과도한 카페인 음료를 만들어 팔고 그 음료의 판매를 방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무차별적 대중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비해, <클랜> 속 푸치오 일가의 가업은 직접적이며 잔인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였든 살해를 방조했든 결국 <클랜> 속 푸치오 일가의 범죄나 <동네변호사 조들호> 속 법과 재벌간이 카르텔은 모두,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이 성장해온 왜곡된 현대사로부터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요인을 납치하는 비밀경찰로부터 시작하여 이제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납치를 한 푸치오나,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검찰과 법무법인의 대표적 인물이 '법' 위에 자기 권력의 성채를 쌓아가는 모습은 그저 정도의 차이일 뿐 사회의 도덕적 아노미를 상징한다. 더구나, 아버지에 협조하지 않는 아들의 뺨을 때리며 니가 무슨 돈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아느냐며 기세등등한 아버지 푸치오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과 딸조차 기만하는 신영일이나 장신우나 부도덕한 권력을 내면화, 신념화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클랜>에서 암묵적으로 아버지의 등에 기대어 살아왔던 아들 알렉스(피터 란자니 분)는 결국 파렴치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앞에서 보란듯이 몸을 날린다. 비록 그의 자살은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거기서 끝나고 만 것이다.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했지만, 알렉스는 그제야 자신 역시 그 가업의 공범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과연 <동네변호사 조들호> 속 아들과 딸은 그저 재벌의 '개'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결국 우리 사회 어두운 권력의 주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의 귀추가, 조들호의 슈퍼맨 같은 활약상만큼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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