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관련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나열해도 ‘객관성’ 위반이 아니라는 말일까. 또, 야권 인사에 대한 맥락 없는 비난도 ‘공인에 대한 비판’이므로 괜찮은 것일까. 방통심의위의 TV조선 등 종편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는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솜방망이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7일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2월 14일자)이 북한의 핵실험과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등의 문제와 관련해 대담을 나눈 방송에 대해 심의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송영전 전 의원은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가져가는 돈 70%가 노동당으로 흘러간다’는 발언을 두고 “김대중·노무현 때처럼 정권에서 바로 가져다 준 돈이 아니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이라는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북한 실상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객관성’ 위반을 말하는 건 잘못”

하지만 TV조선 측 의견진술자는 “송영선 전 의원의 증거제시 부분이 미흡했다”며 “송영선 전 의원의 말이 프로그램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패널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돈을 줬다’는 발언은 증거제시가 부족했기에 문제라는 해석이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2월 14일 방송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도 TV조선을 두둔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통일부 장관이 70%를 이야기했지만 제가 다른 통로를 통해 들은 정보에 의하면 개성공단에서 일한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의 10~15%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노동당으로 유입됐다는 주장들도 있다”며 “북한 정권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객관성 위반이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해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이런 정보의 비판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토론의 진행만 문제”라면서 행정지도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의견제시’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 또한 “대상이 (정보가 불명확한)북한”이라며 “송영선 전 의원은 자기주장의 근거를 대려고 노력한 점이 있다”고 ‘의견제시’에 동조했다.

반면, 야당 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70%가 노동당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사실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통일부 장관의 한 말이기는 했지만 확인도지 않은 사실이다. 그리고 대북 송금 등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어떻게 전용됐는가와는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룬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해 법정제재 ‘주의’ 의견을 냈다. 또 다른 야당 추천 윤훈열 심의위원 또한 “TV조선은 저품격 방송이 논란이 된다”며 “이영작 석좌교수를 출연정지 시키는 등 과거보다 좋아지고 있는 건 알겠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 대해선 여야 추천 심의위원들 간 입장이 크게 갈렸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과 함께 ‘의견제시’를 주장했다. 결국, 이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은 다수결에 따라 행정지도 ‘의견제시’가 의결됐다.

개성공단 폐쇄 논란, TV조선 “박근혜 대통령은 왜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

TV조선 <엄성섭, 정혜전의 뉴스를 쏘다>(2월 15일)에서 진행자 엄성섭 씨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개성공단 폐쇄를 둘러싸고 SNS를 통해 ‘전쟁 하자는 건가’라는 게시글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냐”라고 비난했다. 엄성섭 씨는 “(야당은)왜 항상 김정은과 북한은 보호해주고 이해해주고 포용해줘야 할 집단이라고 보면서 정작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며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는 북한이고 북핵과 미사일로 도발하는 것도 북한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에 대응하는)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TV조선 '엄성섭, 정혜전의 뉴스를 쏘다' 2월 15일 방송

또, “(일각에서는)더불어민주당이 안보와 관련해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에잇 저거 아닐거야’라고 했는데, 결국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에서 금지하고 있는 ‘진행자의 공정성 유지 의무’를 위반한 대목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이영작 한양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기다리고 있다”며 “북핵 실험해도 좋다고 악수하고 던 퍼주고 하니. 노무현 아바타 같은 사람이 차기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엄성섭 씨의 발언을 돕기도 했다. TV조선은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의 SNS를 놓고 ‘북 핵실험했는데도, 문재인 선거 안보용이었나’ 등의 자막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 심의위원은 “문재인 의원의 SNS는 적절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문화일보와 한국경제 등에서 ‘집주인 나무란다’는 등의 사설이 실리기도 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건 북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함귀용 심의위원은 TV조선 <엄성섭, 정혜전의 뉴스를 쏘다> 제재와 관련해 행정지도 ‘권고’를 주장했다.

또 다른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주제나 이슈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며 “그리고 TV조선은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걸로 이해한다. 그런 노력을 높이 사서 행정지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동조했다.

반면, 야당 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문재인 의원의 SNS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와 ‘전쟁불사’ 등의 발언을 두고 한 얘기”라며 “그런데, 그 부분만 떼어내어 그것도 프로그램 진행자가 ‘왜 정부를 비판하느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청자들을 오도할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윤훈열 심의위원은 “TV조선은 객관성,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정치인들을 비판할 수 있고, 그런 다양한 비판이 사회를 건전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은 객관적이며 사실에 입각해 그런 시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야 입장이 팽팽히 맞서자 김성묵 소위원장은 TV조선 <엄성섭, 정혜전의 뉴스를 쏘다>와 관련해 “진행자와 객관성이 약간 부족하고 자막이 악의적 해석이 있었다”고 법정제재 ‘주의’ 의견을 냈다. 결국, ‘주의’ 3인(김성묵·장낙인·운훈열)의 의견에 따라 해당 건은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제재수위는 추후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를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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