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언론계를 발칵 뒤집었던 ‘KBS 보도개입 사태’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길환영 전 KBS 사장의 보도개입 사실을 폭로하고 받은 정직 4개월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 결과가 나온 까닭이다.

재판부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 내용 일부를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정당한 공표행위를 벗어난 악의적인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전까지 길환영 전 사장의 부당한 지시·개입에 저항하기보다는 흐름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방송 독립성과 제작자율성을 침해한 것으로 보이고, 자신에게 가해진 사퇴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가 폭로의 주목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졌다’.

그런데 오히려 난처해진 것은 길환영 전 사장 쪽이다. 결국 본인의 ‘보도개입 사실’이 재판부 판결문을 통해 인정됐기 때문이다. ‘대통령 소식은 최대한 늘리거나 앞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등 민감한 소식은 축소 보도하라고 지시했고, 박정희 시대 미화 논란을 일으킨 <다큐극장>을 편성하고 친박 평론가를 기용하려고 애쓰며, 대통령 방중 일정에 맞춰 없던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정부여당이 보시기 불편하지 않은 방송’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한 것으로 느껴진다.

연이어 불리한 판결을 받고 있다는 점은 길환영 전 사장을 더 곤란하고 있다. 길환영 사장은 해임된 이후 이명박 정부 원년 해임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정연주 사장 사례를 떠올린 듯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KBS이사회가 해임제청안 의결 당시 들었던 △직무능력 상실 △세월호 오보 책임 △재정적자 중 재정적자를 제외한 2가지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해임무효소송에서 진 데 이어, 김시곤 전 국장 소송에서도 본인의 보도개입이 인정돼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6월 28일, 중국 국가올림픽체육중심체육관서 열린 <2013 한중 우정콘서트>를 방문해 한류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 길환영 전 KBS 사장 모습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길환영 전 사장이 해임무효소송에서 진 이후에도 여전히 변치 않는 권력지향적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입당 및 총선 출마를 발표하고 ‘천안을’ 지역구 공천을 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는 끝내 ‘부름’ 받지 못했다. ‘오전에는 보도국 문화부장’이었다가 ‘오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고 최근 총선에서 의원자리까지 따낸 민경욱 전 KBS <뉴스9> 앵커의 사례와는 아주 달랐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간절’했던 길환영 전 사장에게 대통령은 이미 냉정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길환영 전 사장은 세월호 관련 편향 보도로 유가족들이 KBS에 항의 방문하자, 청와대 뜻에 따라 유가족들 앞에서 고개 숙이며 사과했고 김시곤 전 국장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정국의 흐름을 감안할 때 그의 이런 약한(?) 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이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았을 수 있다.

보도개입 사태가 불거져 언론계 안팎으로 사퇴 요구가 거셀 때도 그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KBS이사회의 해임제청안을 보고 받은 지 하루 만에 그를 해임했다. MB정부 언론장악의 신호탄으로 평가되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불법 해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해임제청안을 재가하는 데 3일이 걸린 것과 비교해도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 관련기사 : [속보]박근혜 대통령, 길환영 KBS 사장 해임 결정) 그렇잖아도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에도 결실을 거두지 못한 셈이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에 나섰다. 필리버스터 초반 10시간 18분이라는 기록을 세워 주목 받았던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그렇게 한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말했다.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KBS 보도개입 사태’를 보고 있자니, 엉뚱하게 진작 저 말을 해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다고 공천 못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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